감독
보리스 새갈 Boris Sagal

주연
찰턴 헤스턴....로버트 네빌
Charlton Heston....Robert Neville
안소니 저브....마사이어스
Anthony Zerbe....Matthias
로잘린드 캐쉬....리사
Rosalind Cash....Lisa
폴 코슬로....더치
Paul Koslo....Dutch
에릭 라노빌....리치
Eric Laneuville....Richie
링컨 킬패트릭....재커리
Lincoln Kilpatrick....Zachary

리치와 네빌

60년대까지만 해도 [벤허]나 [엘 시드] 같은 대형 사극 전문 배우였던 찰턴 헤스턴의 경력은 1968년 [혹성탈출]이 대성공을 거둔 뒤 갑자기 방향전환을 하게 됩니다. 70년대에 헤스턴이 찍은 대표작 두 편은 모두 SF였지요. [오메가 맨]과 [소일렌트 그린]말입니다. 하긴 대형 사극은 슬슬 멸종하는 중이었으니 헤스턴도 다른 길을 찾을 때가 되긴 했었지요.

헤스턴의 SF 영화들은 모두 분위기가 비슷했습니다. 암담하고 컴컴했고 종말론적이었지요. [오메가 맨]에선 세균전으로 인류가 거의 멸망했고 [혹성탈출]에서는 유인원들에게 인류가 정복당했으며 그나마 조금 밝은 [소일렌트 그린]에서는...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죠. 유명한 반전이지만 그래도 반전을 건드리게 되니까요. 하여간 이런 영화들에서 헤스턴은 꽤 그럴 듯 했습니다. 그의 거창한 목소리와 연기는 이런 영화들의 클라이막스에 튀어나오는 유명한 대사들을 멋지게 살렸었지요. ("It's a madhouse!... a madhouse!" "Soylent Green is ******!")

[오메가 맨]의 원작은 리처드 매서슨의 SF 소설 [나는 전설이다]입니다. 이전에 같은 소설을 각색한 빈센트 프라이스 주연의 [지상 최후의 남자]가 있었으니 두번째로 영화화된 작품이죠. 프라이스의 영화가 원작에 조금 더 충실합니다. [나는 전설이다]의 각색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입니다.

도입부의 설정은 비슷합니다. 세균전으로 지구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었지요. 살아남은 감염자들은 햇빛을 두려워하는 백변종 괴물로 변했고요. 자신이 만든 백신을 맞고 간신히 정상인으로 살아가는 찰턴 헤스턴의 캐릭터 로버트 네빌은 밤마다 그를 공격해오는 감염자들과 전쟁을 벌입니다.

세균전 이야기만 빼면 거의 같은 이야기가 아니냐고요? 하지만 영화는 감염자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슬슬 원작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일단 영화의 감염자들은 흡혈귀들이 아닙니다. 그냥 햇빛에 민감한 환자들에 불과해요. 영화는 그들이 마사이어스라는 리더의 지도 아래 결성한 '패밀리'라는 반문명/반기술 단체에 대해 꽤 자세히 이야기하는데, 이 역시 원작에는 없었지요. 결정적으로 네빌은 지구 최후의 정상인이 아닙니다. 나중에 정상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거든요.

이 차이점들은 70년대의 미래를 무대로 한 50년대 SF 소설을 70년대 사람들이 다시 현대의 이야기로 다시 각색하는 동안 그들의 관점과 이야기를 첨가하면서 발생한 것들입니다. 원작의 재난이 지구 최후의 인간인 주인공이 흡혈귀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겪는 고독과 고통을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였다면, 영화의 재난은 70년대 사람들이 온몸으로 겪고 있었던 사회적 현상의 은유였습니다. 마지막 문명인인 네빌과 반문명 세력인 '패밀리'의 충돌은 당시 히피 운동에 대한 은유로 읽힐 수 있습니다. 백변종인 감염자들과 네빌의 대결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은유가 됩니다. 감염자들은 네빌의 기관총에 학살당할 때는 인종차별의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그 비정상적으로 하얀 피부와 다인종으로 구성된 정상인 생존자들과의 대립이 드러날 때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영화는 은유없이 스크린 위에 직접적으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메가 맨]은 흑인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몇 안되는 할리우드 주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리사와 네빌의 섹스 신과 같은 건 더욱 드물었고요.

영화의 변형은 로버트 네빌이라는 캐릭터에 원작과는 다른 변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의 네빌은 원작의 네빌보다 훨씬 냉정하고 시니컬하고 잔인한 인물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기관총을 들고 툭하면 감염자들을 쏘아대는 네빌의 모습에서 현재 NRA의 회장인 헤스턴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에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성자이며 구원자입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영화는 네빌을 뻔뻔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인 예수 상징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유명한 라스트신도 그렇고, 그의 피가 혈청이 되어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설정도 그렇고요. 이 두 요소의 결합은 원작과는 다른 의미에서 캐릭터에 흥미로운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이 수많은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렇게까지 성공적인 편이 아닙니다. 우선 영화는 주제가 요구하는 절실한 고독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엔 사람들이 너무 많지요. 리사와 친구들과 같은 정상인들도 무더기로 넘쳐나고, 감염자들도 외모가 바뀌고 정치적 의견이 바뀌었을 뿐 보통 사람에 불과하고요. 그러다보니 영화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텅 빈 LA의 풍경도 힘을 잃는답니다.

공포물 악역으로서 힘이 떨어지는 것 이외에도, 감염자들에겐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그들이 입고 있는 중세 수도사 유니폼부터 설득력이 떨어져요. 결정적으로 그들의 반문명 감정은 재미도 없고 너무 손쉬운 선택입니다. 일부가 그렇다면 이해가 가지만, 전체 감염자들이 그 생각을 받아들인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어색하잖아요.

네빌이라는 캐릭터 역시 충분한 깊이를 가진 인물은 아닙니다. 비틀린 인물 묘사는 흥미롭지만 그 역시 외부에서 주어진 설정에 불과할뿐, 정작 성격 자체는 얄팍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헤스턴이라는 배우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는 그렇게까지 깊이 있는 배우는 아니잖아요. 그의 특기인 허세와 폼은 영화의 노골적인 센세이셔널리즘엔 어울렸지만 깊이있는 심리묘사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오메가 맨]은 정말 괜찮은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원작이 좋았고 야심도 컸으며 추가된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 결합은 평범한 편입니다. 아무리 봐도 이 각자의 요소들은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는 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70년대 할리우드 대중 영화의 요란하고 촌스러운 분위기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 되어가고요. (03/08/25)

DJUNA

기타등등

몇 년째 리메이크 소문이 돌고 있는 영화죠. 이전 영화들의 성과가 그저그런 편이니 다시 한 번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