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롤란드 에머리히 Roland Emmerich

주연
멜 깁슨....벤자민 마틴
Mel Gibson....Benjamin Martin
히스 레저....가브리엘 마틴
Heath Ledger....Gabriel Martin
조엘리 리처드슨....샬롯 셀턴
Joely Richardson....Charlotte Selton
제이슨 아이작스....윌리엄 태빙턴 대령
Jason Isaacs....Col. William Tavington
크리스 쿠퍼....해리 버웰 대령
Chris Cooper....Col. Harry Burwell
테키 카리오....장 빌레뇌브
Tchéky Karyo....Jean Villeneuve
르네 오브조느와....올리버 목사
Rene Auberjonois....Rev. Oliver
리사 브레너....앤 하워드
Lisa Brenner....Anne Howard
톰 윌킨슨....콘월리스 장군
Tom Wilkinson....Gen. Cornwallis

"1770년 미국 독립 전쟁과 우리가 무슨 상관?" [프리미어]지의 국내판 기자가 여름 영화들에 대해 언급하며 흘리듯 쓴 말입니다. 흠... 그런데 정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게 국내 흥행의 장애일까요?

정반대입니다.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는 쉽습니다. 여러분은 트로이의 전쟁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신경이 거슬리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랑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니까요. 전쟁의 잔혹함 때문에 불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역사적 해석 때문에 짜증이 나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미국의 역사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게 아닙니다. 미국은 우리와 오래 전부터 미묘한 관계를 유지해온 중요한 나라입니다. 세계사적인 측면으로 봐도 미국의 독립은 지난 밀레니엄 동안 일어났던 가장 중대한 사건들 중 하나입니다.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트로이 전쟁처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화의 역사 해석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해석이 맘에 안들면 짜증을 냅니다. 미국인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건, 그건 결국 우리와도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를 보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좋아요. 그렇다면 [패트리어트]는 미국 독립 전쟁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말하기 쑥쓰러운데, 열거하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군은 천인공노할 학살범들이며 악당이다, 미국인들은 모두 용감무쌍하고 정의로웠다, 독립전쟁은 선과 악의 대결이다, 독립 전쟁이 끝나고 미국인들은 신대륙에 모든 이들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를 세웠다...

정말? 꼭 그렇게 이야기해던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 나오는 사악한 영국군은 태빙턴밖에 없죠. 하지만 비중있는 영국 장교도 태빙턴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태빙턴이라는 친구는 부상병들을 총살하고 교회에 가둔 민간인들을 불에 태워 죽이는 악당입니다. 이런 친구와 싸우는 이야기이니 영화가 선악의 대결이 되지요.

정말 영화는 노예 제도라는 것이 19세기 중엽까지 버텼고 그 뒤에도 인종 차별이라는 끔찍한 유산을 남겼다는 걸 잊었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영화는 흑인들에 대해 뭔가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년 복무를 마치고 자유를 얻으려는 흑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나중에 그는 자유를 얻은 뒤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투에 가담하고 동료들은 그에게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

알아요, 지독하게 위선적입니다. 게다가 그가 자유인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후반부는 거의 역사 왜곡의 냄새까지 납니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그 동네가 영국이나 스페인 식민지로 남았다면 노예 해방은 훨씬 더 빨랐을 걸요.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합니다. 종종 영화는 애국심에 대한 장엄한 연설로 스토리를 끊어먹는데, 각본가인 로버트 로다트는 정말 이런 걸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에겐 거의 역사 교과서를 억지로 다시 읽는 느낌이 들죠. 특히 미국 관객들에게는요. 멜 깁슨 액션 영화인데도 겨우 첫 주 흥행이 2위인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단순무식함에는 나름대로 숨은 이유가 있습니다. :-) 로버트 로다트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미국 독립 전쟁이라는 특정한 역사에 대한 것이 아니거든요. 이 이야기는 미국 독립 전쟁이 아닌 다른 어떤 곳에 끼워 맞추어도 그럴싸하게 잘 맞습니다. 심지어 한국전이나 트로이 전쟁 같은 것에 끼워 맞추어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질 거예요.

[패트리어트]는 개인적인 복수담입니다. 가족을 잃은 남자가 살인범에게 처절한 복수를 한다는 거죠. 역사적인 사실은 배경에 불과합니다.

복수담 뒤에는 로빈 훗이나 조로식인 신출귀몰 영웅담도 삽입됩니다. 정말 이 영화는 로빈 훗과 닮았어요. 사악한 태빙턴 대령은 노팅검의 치안관과 그대로 닮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주인공 마틴도 태평스럽게 로빈 훗 흉내를 낼 때가 있습니다. 영국군 마차 앞에 서서 물러나라고 허풍을 떠는 마틴의 모습을 보세요. 로빈 훗 모습 그대로가 아닙니까?

[패트리어트]는 복수담으로서는 잘 되어 있을까요? 결코 독창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관객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지 영화를 보기 전부터 한 절반 정도는 그대로 맞힐 수 있어요. 남은 스토리도 중간중간에 알아맞힐 수 있고요. 잘 만든 복수물로 보기엔 너무나도 뻔하지요.

그러나 그 뻔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패트리어트]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2시간 40분이나 되는 기나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따분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 액션 영화로서 대단한 미덕을 갖춘 영화죠. 전투 장면은 인상적이고 좀 과하다 싶은 폭력 장면도 강한 인상을 줍니다. 에머리히의 연출 때문이라기보다는 카일렙 드샤넬의 촬영이나 존 윌리엄즈의 음악, 멜 깁슨과 히스 레저의 힘있는 연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말입니다. 하여간 이런 '적당한 재미'는 앞에 열거한 수많은 단점들을 상당수 커버할 수 있을만큼 중요한 장점입니다. 아마 제가 전쟁 영화 팬이었다면 더 즐겁게 봤을지도 모르겠군요. 사실 이런 영화는 제 취향은 아니거든요. (00/07/11)

DJUNA

기타등등

애국심을 내세우는 영화 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다국적인 팀이 만든 영화죠. 주연 남자 배우는 모두 호주 출신이고 (멜 깁슨은 미국에서 태어났다지만 그래도 호주 영화계가 배출한 스타니까요) 여자 주인공은 영국인, 게다가 감독은 독일인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