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배용균

주연
전규수....ㅎ
김미진....ㅍ
민병인....경비원
고인배....장님
송의헌....탈옥수
김해남....세탁소주인
박상근....최면술사
권해림....여자어린이
권일선....새댁
손희자....여인1

ㅎ와 ㅍ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한국 영화계에 선사한 주목할만 성과에도 불구하고, 배용균은 한국 영화계에서 여전히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일단 그 뒤로 영화를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단 한 편밖에 만들지 못했죠. 그 영화는 [달마...]보다 훨씬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영화이고 그 뒤로 제대로 공개된 적도 없습니다. 물론 DVD도 나오지 않았고요. 결정적으로 그 뒤에 일어난 한국 영화의 부흥과 배용균 사이엔 어떤 관계도 없죠. 시스템면에서도 그렇고 인맥을 따져도 그렇고. 이 모든 건 그 사람이 거의 개인전 준비하는 화가처럼 제작, 감독, 각본, 편집, 미술을 혼자 다 해치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만요. 언제 봐도 배용균 영화의 엔드 크레딧은 참 짧습니다.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은 한국전쟁 때 고아가 되어 미군에 입양되었던 알렉스 카우프먼이라는 남자가 고향으로 추정되는 해천이라는 가상 도시를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의 기억 속에 새겨진 얼마 안 되는 공간인 감나무 밑의 우물을 찾아 헤매요. 영화가 끝날 무렵엔 그 우물을 찾는냐고요? 그건 "[고도를 기다리며]에 고도가 나오나요?"와 같은 질문이군요. 우물의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우물을 찾는 액션과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에는 분명한 줄거리가 없습니다. 영화는 카우프먼의 여정을 이어지는 일련의 대사들에 핑계를 제공해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틀로 사용하고 있지요. 영화 내내 카우프먼은 해천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여관 주인, 자전거 타는 아저씨, 눈먼 할아버지, 탈주범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참 할 말이 많고 그만큼이나 상대방의 말을 성실하게 들어줍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결코 일상적으로 흐르지 않아요. "지금 몇 시예요?"라고 묻는다고 "7시 30분입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대신 "밤이 다가오고 있군요."라고 대답한 뒤 인간과 기억과 자아와 감각에 대한 추상적이고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겁니다. 비전문 배우들의 비중이 높고 직업 성우에 의해 더빙된 영화라 그 양식성은 더 노골적입니다.

이 대사들에 어떤 구체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계엄령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해천의 어두운 분위기나 미국에 입양되었다가 돌아온 카우프먼과 같은 캐릭터, 그의 잃어버린 이름과 같은 것들을 엮어 하나의 의미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배용균 자신도 원하고 있을 거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구체적이고 일관된 하나의 메시지를 찾는 건 의미없는 일입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기억과 감각에 대한 다소 뻔한 상념들이 아니라 그것들이 흐르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는 건 알렉스 카우프먼의 대사들이죠. 카우프먼은 한국어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대사는 문법에 얽히지 않고 강물처럼 그냥 줄줄 흐릅니다. 배용균 자신도 이 대사들을 쓰면서 무척 즐거웠을 거예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과 마찬가지로,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역시 굉장히 집중력 높은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최면이라도 거는 것 같은 장황한 독백들의 연속체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지루하지 않아요. 따분한 장광설에 지칠 때가 되어도 거의 완벽하게 짜여진 이미지들이 관객들의 멱살을 잡는 것이죠. 스탠리 큐브릭의 관객들이 그런 것처럼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의 관객들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스크린을 노려 봐야 합니다. 물론 먼저 몸상태가 좋아야겠지만.

이 영화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의 명성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아뇨,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분명한 의미와 줄거리를 대중에게 전달했던 전편과는 달리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은 지나칠 정도로 아트 하우스 영화의 자의식에 빠져 있습니다. 여전히 꽤 재미있고 아름다운 영화이며 그 스노비시한 자의식도 취향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래도 소통의 한계는 영화의 한계로 연결될 수밖에 없겠어요. (06/08/08)

DJUNA

기타등등

ㅎ과 ㅍ는 카우프먼과 여관 주인입니다. 이유는 묻지 마시길. 그냥 그렇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