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엘 슈마처 Joel Schumacher

주연
제라드 버틀러....팬텀
Gerard Butler....The Phantom
에미 로섬....크리스틴
Emmy Rossum....Christine
패트릭 윌슨....라울
Patrick Wilson....Raoul
미란다 리처드슨....마담 지리
Miranda Richardson....Madame Giry
미니 드라이버....카를로타
Minnie Driver....Carlotta
키아란 힌즈....피르망
Ciarán Hinds....Firmin
사이먼 캘로우....앙드레
Simon Callow....Andre
빅터 맥과이어...피안지
Victor McGuire....Piangi
제니퍼 엘리슨....멕 지리
Jennifer Ellison....Meg Giry

크리스틴과 팬텀

단 한 번도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 완벽한 걸작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라면 반대죠. [오페라의 유령]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그 어색함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툰 위장이었습니다. 오페라를 흉내내는 뮤지컬이었고 19세기 고전음악을 흉내내는 20세기 대중음악이었지요. 모사의 시도가 너무 노골적이고 두 스타일의 충돌이 너무나도 날카로워서, 이 작품엔 처음부터 끝까지 독특한 신경질적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20세기 웨스트엔드 뮤지컬식으로 오케스트레이션 된 가짜 오페라 아리아의 싸고 날카로운 음악이 사라 브라이트먼과 마이클 크로포드의 사나운 목소리에 담겨 터져나왔을 때 관객들이 느꼈던 흥분은 그 인위적인 긴장감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습니다.

전세계를 빙빙 돌며 세기의 뮤지컬로 군림했던 이 작품이 드디어 영화화되었습니다. 원래 사라 브라이트먼과 마이클 크로포드 주연으로 90년대에 영화화될 예정이었죠.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브라이트먼과 이혼하는 통에 그 계획은 백지화되었지만요. 많이들 실망했을 겁니다. 브라이트먼의 팬들도 그랬겠지만 크로포드의 팬들은 더 그랬겠죠. 조엘 슈마처의 영화가 기획될 때까지만 해도 크로포드 팬들은 캐스팅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라드 버틀러에게 팬텀의 역할이 돌아갔고 슈마처는 그 때문에 한 동안 끝도 없는 변명을 늘어 놓아야 했지만요. 아마 지금도 하고 있을 걸요.

영화는 어떠냐고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레이션을 다시 하고 추가된 장면에 새 스코어가 덧붙여지긴 했지만 음악은 거의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엔드 크레딧 맨 앞에 나오는 생기없는 노래를 제외하면 추가된 노래는 없고요. 옛날을 회상하는 1917년의 라울이 중간중간에 나오고 팬텀의 어린 시절이 밝혀지며 몇몇 액션 장면이 추가된 걸 제외한다면 영화는 비교적 충실하게 원작의 스토리와 대사들을 따라갑니다. 영화에서 엄청나게 새로운 시도를 기대하시진 마세요. 팬들에겐 이게 어느 정도 안심되는 뉴스일 수도 있겠군요.

슈마처의 연출은 앨런 파커의 [에비타] 연출보다 덜 어색하고 더 잘 어울립니다. 파커처럼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느라 리얼리즘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그렇게까지 편하게 몸을 묻은 것 같지 않습니다. 종종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화의 음악적 흐름에 짜증을 내는 것 같고 영화의 연극적 장치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란한 영화적 장난감이면서도 뮤지컬의 무대적 특성을 잘 잡아낸 [물랑 루즈]에 비하면 [오페라의 유령]의 스펙터클은 상대적으로 싱겁고 어색합니다. 슈마처가 가지고 있지 못한 바즈 루어만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무대 경력이 아닌가 싶어요. 아직도 남은 무대의 감이 비교적 연극적 장르인 뮤지컬을 영화화할 때 도움이 되었던 거겠죠. 슈마처에겐 그 감이 부족합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좀 떠 보입니다.

그렇다면 배우들은 어떨까요? 그들은 사라 브라이트먼과 마이클 크로포드만큼 했을까요?

우선 전 에미 로섬의 크리스틴 다에가 좋았습니다. 로섬은 브라이트먼이 가지고 있었던 프리마돈나적인 과시를 어느 정도 지워냈는데, 덕택에 카리스마가 조금 줄어들긴 했어도 더 원작의 캐릭터와 맞아 보입니다. 패트릭 윌슨의 라울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완벽합니다. 발성부터 동작까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그냥 따온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심심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바로 라울이 그런 캐릭터이니 불평할 필요는 없겠죠. 미니 드라이버의 과장된 이탈리아 프리마돈나의 캐리커처나 사이몬 캘로우와 키아란 힌즈의 코믹한 프로듀서들, 미란다 리처드슨의 마담 지리도 비교적 잘 자리잡은 편입니다.

팬텀 역의 제라드 버틀러는 그들만큼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는 허우대도 멀끔하고 목소리도 좋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노래를 부를 때는 편하게 느껴지지가 않아요. 보긴 근사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모델을 보는 기분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배우의 잘생긴 얼굴이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는 거죠. 가면 밖으로 드러난 잘생긴 얼굴이 팬텀의 과시적인 성격을 묘사하거나 표정 연기의 클로즈업을 할 때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끝도 없이 등장하는 팬텀의 흉물스러움에 대한 표현을 정당화하기엔 그는 너무 멀끔합니다. 심지어 팬텀의 얼굴이 모두 드러나는 장면에도 충격이나 연민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가 엄청난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것도 아니고요. 등장하지 않을 때도 연극 전체를 지배하는 연극의 팬텀과는 달리 버틀러의 팬텀은 카메라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그냥 기억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마이클 크로포드 팬들이라면 '쌤통이다!'라고 하겠죠. 하지만 과연 크로포드가 영화에서도 무대의 카리스마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그는 영화 속에선 비교적 이미지가 흐릿한 배우이니 말이죠. 벌써 환갑을 넘기기도 했고요.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영화의 개별 연기가 아니라 그 개별 연기들이 제대로 통제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슈마처는 배우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 같습니다. 감정선이 흐르지 못하고 끊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배우들의 호흡은 중간에 툭툭 갈라집니다. 배우들의 음악적 능력도 충분히 조율된 것 같지 않아요. 어쩔 수 없이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빌린 미니 드라이버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의 노래는 모두 중반에 이르기 전까지 조금씩 덜컹거리는데, 무대 공연도 아니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오페라의 유령]은 우리가 예측 가능한 오락물입니다. 우리가 십 여년 동안 보아오면서 익숙해진 무대 뮤지컬의 호사스럽고 멜로드라마틱한 매력이 영화에도 많이 남아있지요. 아니, 호사스러움만 따진다면 어쩔 수 없이 간소한 무대 속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원작을 능가합니다. 그러나 원작 뮤지컬의 팬들이 이 작품을 영화판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마이 페어 레이디]와 같은 무대 뮤지컬의 결정판으로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엔 뭔가 모자라요. 정서적인 무언가가 공연에서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넘어가는 동안 증발되어 버렸나 봐요. (04/11/30)

DJUNA

기타등등

로섬과 윌슨이 'All I Ask Of You'를 부르는 동안 앞좌석의 아저씨가 드르륵거리며 코를 골더군요.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