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렌스 올리비에 Laurence Olivier

주연
마릴린 먼로....엘시 마리나
Marilyn Monroe....Elsie Marina
로렌스 올리비에....섭정 황태자 찰스
Laurence Olivier....Charles, the Prince Regent
시빌 손다이크....태후
Sybil Thorndike....The Queen Dowager
리처드 와티스....노스브룩
Richard Wattis....Northbrook
제레미 스펜서....니콜라스 왕
Jeremy Spenser....King Nicolas
에스몬드 나이트....호프먼
Esmond Knight....Hoffman
폴 하드윅....집사
Paul Hardwick....Major Domo
로자먼드 그린우드....모드
Rosamund Greenwood....Maud
오브리 덱스터....대사
Aubrey Dexter....The Ambassador
맥신 오들리....레이디 서닝데일
Maxine Audley....Lady Sunningdale
진 켄트...메이시 스프링필드
Jean Kent....Masie Springfield

엘시와 찰스

다들 마릴린 먼로와 아서 밀러 커플이 어색하다지만 저한테 진짜 어색한 건 마릴린 먼로와 로렌스 올리비에의 콤비입니다. 영국 무대의 정통 연기파 배우와 할리우드의 섹스 심볼이 함께 나와서가 아니에요. 둘의 분위기나 연기 스타일이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거죠. 그 둘이 공연한 [왕자와 무희]가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흥행 성적을 거둔 것도 관객들이 그들 커플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어색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마릴린 먼로 영화들 중에서 [왕자와 무희]는 조금 튀어보입니다. 테렌스 래티건의 희곡 [잠자는 왕자]를 작가 자신이 직접 각색한 이 영화는 마릴린 먼로가 출연한 다른 할리우드 작품들만큼 적극적으로 먼로의 기존 이미지를 활용하지 않습니다. 하긴 활용하기 어렵기도 해요. 이 영화의 배경은 1911년의 영국이니까요. 아무리 먼로가 맹해보이는 미국인 쇼걸을 연기한다고 해도 동시대를 무대로 한 다른 영화에서처럼 헤픈 이미지를 남발할 수는 없는 거죠. 할리우드 사람이 아니었던 올리비에 역시 또다른 먼로 상품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을 겁니다.

[왕자와 무희]는 상대적으로 꽤 건전한 신데렐라 스토리입니다. 발칸 반도의 소국인 카르파티아의 섭정 찰스는 조지 5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위해 런던에 왔다가 극장에서 만난 미국인 쇼걸 엘시를 저녁에 초대합니다. 하지만 예쁜 쇼걸과 하루 밤을 즐긴 뒤 내쫓을 생각이었던 찰스의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하고, 엘시는 카르파티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운명과 관련된 정치적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맙니다. 그러는 동안 찰스가 엘시에게 서서히 빠져든다는 건 말할 필요 없겠지요?

이 작품에서 마릴린 먼로는 예상외로 썩 괜찮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아니에요. 처음에 백치미를 폴폴 풍기는 맹한 금발 미녀로 등장하는 건 맞지만, 먼로가 연기하는 엘시는 기대 이상으로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입니다. 아뇨, 로렐라이 리식으로 똑똑한 게 아니에요. 그냥 정상적인 방식으로 똑똑한 거죠. 엘시는 교육은 충분히 받지 못했지만 사태가 어떻게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고 상대방의 의중을 쉽게 뚫어보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며 명확한 현실 인식 역시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로는 예상외로 그 야무짐을 잘 소화해내고 있어요. 비교적 덜 먼로답지만 그렇다고 덜 효과적인 연기는 아니라는 거죠.

영화의 이야기도 꽤 그럴싸합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이 영화는 왕자와 결혼해 무작정 신분상승을 이루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엘시는 신분상승에 그렇게 절실한 편이 아니고 엘시와 찰스의 관계는 점점 평등하고 꽤 현실적인 방향으로 발전해가죠.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려는 엘시를 끝도 없이 카르파티아의 국내 정치 속에 가두는 플롯도 나쁘지 않은 편이며 살짝 아쉬운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결말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습니다. 엘시와 찰스 사이에 진짜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죠. 이건 각본 탓일 수도 있고 배우들 탓일 수도 있습니다. 먼로보다는 로렌스 올리비에 쪽 말이에요. 알아요, 올리비에는 기술적으로 먼로보다 더 훌륭한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종류의 코미디에선 그렇게 설득력 있는 편이 아닙니다. 그는 영화 대부분을 전형적인 유럽 귀족 캐리커처를 일관하고 있는데, 그게 너무 가식적이라 캐릭터에 별로 정이 안가고 후반부의 로맨스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감독으로서도 그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연출은 이 달콤씁쓸한 로맨틱 코미디와는 맞지 않아요. 너무 뻣뻣하고 건조하거든요.

아마 이 모든 게 영화와 연극 사이의 갭 때문인지도 모르죠. 로렌스 올리비에의 과장된 연기는 연극 무대에서는 어울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실제로 그는 래티건의 원작 연극에서도 찰스 역을 연기했지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특히 마릴린 먼로를 상대로 했을 때는 보다 유연하고 열린 해석이 더 잘 맞았을 거예요. (04/03/11)

DJUNA

기타등등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했던 [잠자는 왕자] 무대에서 엘시 역을 한 배우는 당시 아내였던 비비안 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