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나히드 페르손 Nahid Persson

주연
파라 왕비....자기 자신
Empress Farah....Herself
지나트 S. 로이드....나레이터
Zinat S. Lloyd....Narrator
나히드 페르손....자기 자신
Nahid Persson....Herself

파라와 나히드

스웨덴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이란인 다큐멘터리 작가 나히드 페르손은 문득 파라 왕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번에 찍은 영화(아마 이란의 매춘산업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Prostitution: Behind the Veil]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란 당국과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동안 그 쪽에서 "그 따위 영화를 찍다니 넌 왕당파냐?"라는 말을 들었나봅니다. 젊었을 때 팔레비 정권에 맞섰던 공산주의자였던 페르손에겐 정말 어이가 없는 말이었겠죠.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파라 팔레비가 요새 뭐하고 있나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지금 보니 자신과 파라 왕비는 공통점이 꽤 많아요. 둘다 지금의 이슬람 신정정부가 싫어 죽겠고 모두 혁명 때문에 가족을 잃었으며 지금은 유럽에서 망명생활 중이지요.

페르손은 용하게 지금은 파리의 호사스러운 아파트에서 우아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파라 왕비와 접촉합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인터뷰를 해요. 그러는 동안 대단한 내용을 챙겼냐고요? 아뇨. 이 영화 내내 파라 팔레비는 그런 위치에 있는 망명 왕족이 할 법한 이야기만 골라서 합니다. 팔레비 정권의 잘못에 대해 깊이 뉘우치는 것 같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좌파지식인인 상대방의 마음도 해치지 않는 그런 수준의 입발린 말만 하죠. 페르손의 목표만 본다면 이 영화는 그냥 실패작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다보면 그 과정 역시 결과에 반영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렇죠. [왕비와 나]도 목표나 메시지보다는 그 만드는 과정이 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처음에 페르손은 엄청난 장애에 부딪힙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파라 왕비가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는다면 만들어질 수가 없는데, 이 사람은 조금만 예민한 질문을 던져도 촬영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단 말이죠. 다시 말해 페르손은 촬영 내내 왕비 앞에서 거의 시녀처럼 조심하며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두 번이나 촬영이 중단될 뻔했고요. 그 때문에 영화는 파라 팔레비라는 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를 떠나, 지독하게 섬세한 주인공을 졸졸 따라다니며 영화를 완성시키려는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한 서스펜스 넘치는 드라마로 변형됩니다.

그러는 동안 둘 사이에서는 묘한 유대관계가 생겨납니다. 그 관계가 평등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게임은 철저하게 파라 팔레비에게 유리하거든요. 파라 왕비는 거의 평생을 상류사회의 유명인사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줄도 알고 자신의 매력을 이용하는 방법도 알죠. 나히드 페르손은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지만 파라 팔레비의 세계에서는 거의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페르손은 그냥 왕비의 매력에 넘어가버립니다. 보다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페르손이 눈이 확 멀어서 파라 왕비의 팬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로 막나가는 영화는 아니에요. 페르손은 왕비에 대해 관대해지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까지 바꾸지는 않아요. 왕비를 제대로 건드리지 못해서 짜증이 났는지, 그 야유는 주로 왕비 주변을 뱅뱅 도는 이란계 왕당파 망명객들에게 향합니다. 하긴 그들은 놀림받아도 쌉니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서구의 지원을 받아 팔레비 정권을 무너뜨렸다고 믿지는 않을 테니 말이죠.

페르손은 원래 계획했던 목표는 거의 달성하지 못한 채 영화를 끝냅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재미있는 구경도 많이 했고 잠시 맺었던 왕비와의 관계도 아주 허망한 것은 아니었죠. 적어도 그 동안 파라 팔레비와 나히드 페르손이 주고받았던 감정은 진짜였고 영화를 통해 우리가 전해들은 그들의 서글픈 과거사도 진짜였습니다. 결국 둘은 끝까지 상대방의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문명인답게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작별합니다. 그들이 떠난 조국에서는 아직 불가능한 일이죠. (09/10/06)

DJUNA

기타등등

자막 중간에 보면 이 영화에 반영된 의견이 자신의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파라 팔레비의 선언이 섞여 있더군요. 끝까지 걱정되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