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제프 머피 Geoff Murphy

주연
브루스 로렌스....잭 홉슨
Bruno Lawrence....Zac Hobson
앨리슨 러틀리지....조안
Alison Routledge....Joanne
피터 스미스....아피
Peter Smith....Api
앤작 월래스....아피의 친구
Anzac Wallace....Api's Mate
노만 플레처....페린
Norman Fletcher....Perrin
톰 하이드....과학자
Tom Hyde....Scientist

1.

'지상 최후의 인간'은 SF 팬이라면 한번쯤 꾸어볼 백일몽입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서 지구인들이 몽땅 전멸하고 몇 명만 살아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끔찍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혼자 고립 되었으니 끔찍하지만, 몇 십억을 먹여 살리던 행성 하나가 통째로 주인공의 소유가 되었으니 재미있죠. 절박하긴 해도 꽤 여유있는 판타지인 셈입니다.

[조용한 지구]에서는 정체불명의 과학 연구가 인류 말살의 원인입니다. 제작비 탓이겠죠. 전염병이나 핵전쟁을 다루려면 돈이 상당히 듭니다. 일단 시체 동원하는 것부터가 장난이 아니죠. 그러나 정체불명의 과학 연구로 인류가 '사라졌다'라고 우기는 소설을 골라 각색하면 이런 귀찮은 일들을 안해도 됩니다.

이런 트릭 때문에 영화는 꽤 형이상학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깊이있는 형이상학은 아니에요. 충분한 과학적 기반과 연역이 부족하니까요. 그래도 메리 셸리가 창안한 뒤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된 전염병 클리셰보다 여러 면에서 유리합니다. 게다가 후반부의 그럴싸한 결말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2.

영화는 대충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처음엔 주인공 잭이 혼자 뛰어 다니면서 고독과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며, 두번째 부분에서는 잭이 두 생존자 조안과 아피를 만나 셋이라는 그 아슬아슬한 숫자 속에서 갈등합니다. 정말 사람이란 있어도 골칫거리고 없어도 골칫거리에요.

사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최후의 인간' 물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서부극에 총질이 빠지면 이상한 것처럼 '최후의 인간' 물에서 이런 이야기가 빠져도 이상하죠. 중요한 건 '얼마나 잘 하느냐'입니다.

[조용한 지구]는 꽤 능란하게 이야기를 해치웁니다. 전반부는 조금 뻔하지만 후반부의 삼각 관계는 경제적이면서도 효율적입니다. 조안을 사이에 둔 성적 긴장감, 마오리 족인 아피와 백인인 잭과의 대립, 유일한 '책임자'인 잭과 다른 일행의 대립... 모두 잘 얽혀있고 그럴싸합니다.

문제는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해도 여러 번 되풀이한 이야기만으로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없다는 것이겠죠.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합니다. [조용한 지구]엔 그 '새로움'이 있을까요?

영화는 '인류의 종말'에 책임을 느낀 잭이 두번째 재앙을 막기 위해 뛰다가 초현실적인 결말로 떨어지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아마 이 결말이 영화를 구제해주는 '새로움'일 겁니다. 이 명확한 해석이 불가능한 초현실적인 결말은 분명 영화를 진부함에서 구제해주는 요소입니다. 새롭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해요. 뭔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3.

[조용한 지구]는 슬슬 이 장르 안에서 꽤 굳건한 위치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꽤 잘 만든 영화니까 불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고 모험심이 부족하군요. 제 취향에는 조금 더 자극적인 영화가 맞나 봅니다. (99/07/22)

DJUNA

기타등등

그래도 꽤 믿음직한 장르 고전을 찍어대던 제프 머피지만 미국에서는 어정쩡한 액션물이나 찍고 있죠. 헐리웃이 잡아먹은 또다른 외국 감독? 아니, 그것보다는 헐리웃이란 동네의 경쟁이 그렇게 심하다는 뜻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