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클 앤더슨 Michael Anderson

주연
조지 시걸....퀼러
George Segal....Quiller
알렉 기네스....폴
Alec Guinness....Pol
막스 폰 시도....옥토버
Max von Sydow....Oktober
센타 베르거....잉에 린트
Senta Berger....Inge Lindt
조지 샌더스....깁스
George Sanders....Gibbs
로버트 헬프먼....웽
Robert Helpmann....Weng
로버트 플레밍....러싱턴
Robert Flemyng....Rushington
피터 카슨....헹겔
Peter Carsten....Hengel
에디트 슈나이더....교장
Edith Schneider....Headmistress

퀼러와 폴

[퀼러 메모랜덤]은 서베를린에서 신나찌주의자들을 추적하는 미국인 스파이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을 맡았던 두 명의 영국 스파이들은 모두 살해당했고 그 역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죠.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적의 스파이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가 접촉하려는 신나찌주의자들 역시 그의 생명 연장엔 대단한 관심이 없죠. 무지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상황인 겁니다.

하지만 애덤 홀의 소설을 해롤드 핀터가 각색한 마이클 앤더슨의 이 영화에는 우리가 이런 설정의 영화에서 기대할만한 서스펜스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무척 잘 짜여진 카 체이스 장면도 초반에 하나 있고 폭탄도 한 번 터지고 고문과 폭력 장면도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퀼러 메모랜덤]은 원래 설정이 가지고 있었던 서스펜스를 일부러 밟아 죽이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핀터의 각본 때문이겠죠. 핀터는 퀼러의 임무에 어떤 디테일도 넣어주지 않습니다. 옥토버라는 인물이 이끄는 신나찌주의자들이 뭔가를 하고 있긴 한데, 그게 뭔지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아요. 그들은 신나찌주의자들이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심지어 영화는 그들에게 주인공과 마지막으로 맞설 기회도 주지 않아요. 이 영화의 악당들은 그냥 건너편 사무실에서 도장이 찍혀 서류철에 들어간 파일처럼 화면밖에서 퇴장당합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해롤드 핀터의 연극처럼 되어버립니다. 뭔가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중요한 일이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고 있기는 한데, 캐릭터들이 나누는 대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무의미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정보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 거죠. 끊임없이 반복되며 등장하는 스파이들의 담배 암구호처럼, 이 무의미함은 스토리와 임무의 의미를 먹어버립니다. 부조리해도 이렇게 부조리할 수가 없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퀼러 메모랜덤]은 모범적인 냉전시대 스파이 영화입니다. 사실성은 중요하지 않아요. 아무리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장르는 늘 추상적인 관습에 빠지기 마련이고 바로 그 관습이야말로 장르를 지탱해주는 기반이니까요. 중요한 건 영화가 그 관습을 다루는 방식이 실제 세계를 보는 당시 사람들의 관점을 얼마나 적절하게 보여주었는가입니다. [퀼러 메모랜덤]이 차가운 냉소주의를 통해 그려보인 이 부조리한 모험담은 비현실적이고 부조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사실적이고 정곡을 찔렀던 거예요. (07/01/09)

DJUNA

기타등등

애덤 홀의 [퀼러] 시리즈에서 퀼러는 영국인이에요. 왜 조지 시걸이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에도 왜 미국인인 그가 영국 스파이 조직에서 일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