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라이오넬 제프리스 Lionel Jeffries

주연
제니 애거터....바비 워터버리
Jenny Agutter....Bobbie Waterbury
샐리 톰세트....필리스 워터버리
Sally Thomsett....Phyllis Waterbury
게리 워렌....피터 워터버리
Gary Warren....Peter Waterbury
다이나 셰리던....워터버리 부인
Dinah Sheridan....Mrs. Waterbury
버나드 크리빈스....앨버트 퍼크스
Bernard Cribbins....Albert Perks
윌리엄 머빈....노신사
William Mervyn....Old Gentleman
이안....커스버트슨....찰스 워터버리
Iain Cuthbertson....Charles Waterbury
피터 브로밀로우....의사
Peter Bromilow....Doctor
고든 위팅....러시아인
Gordon Whiting....Russian

워터버리 가족

[철길 위의 아이들]은 E. 네스빗의 최고 걸작은 아닙니다. 적어도 비평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죠.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철길 위의 아이들]의 워터버리 가족을 전작인 [보물 찾는 아이들]에 나오는 바스터블 가족의 생기없는 복사판쯤으로 생각합니다. 하긴 워터버리 집안의 아이들이 겪었던 일들은 모두 바스터블 집안 애들이 한참 전에 겪었던 일들입니다. 평범한 중산 계급의 가족이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경제적 위기에 몰리고 이상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아이들이 그 상황 속에서 온갖 자잘한 모험을 벌이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고 워터버리 아이들에게 바스터블 아이들을 능가할만한 개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소망성취 환상과 현실을 뒤섞는 네스빗의 재능이 특별히 더 발휘된 것도 아닙니다. 오스왈드 바스터블과 같은 흥미로운 서술 도구도 없고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E. 네스빗하면 [철길 위의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왜일까요? 비평가들은 심드렁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아, 맞아. 영화 때문이지."

우선 제가 그 비평가들에 그렇게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습니다. 전 사실 [보물 찾는 아이들]보다 [철길 위의 아이들]이 더 좋습니다. 기교면에서 바스터블 시리즈보다 떨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책에는 바스터블 시리즈에는 없는 흐뭇하고 푸근한 정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비평가들의 비난을 받는 감상주의와 우연의 일치의 지나친 남발도 요새는 에드워드 왕조 시대의 의상처럼 독특한 구식 매력을 풍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때문이지..."라는 설명은 대충 맞습니다. 라이오넬 제프리스가 각색/감독한 영화 버전 [철길 위의 아이들]의 인기가 이 작품의 명성을 드높여 준 것도 사실이니까요. 제가 [철길 위의 아이들]에 애착을 품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영화 때문입니다. 저 역시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먼저 보았어요. 하긴 번역되지도 않은 책이니 그게 당연한 순서일 수도 있겠지만요.

줄거리는 위에 반쯤 소개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다시 한 번 요약하겠습니다. [철길 위의 아이들]은 런던의 주택가에 사는 워터버리라는 중산 계급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던 가족은 아이들이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갑자기 아빠가 사라지면서 곤경에 빠지죠. 엄마와 세 아이들은 요크셔에 있는 철로 변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엄마는 거기서 소설을 써서 팔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철로 주변을 아지트로 삼아 전형적인 E. 네스빗 풍의 모험을 벌입니다.

영화는 비교적 소설의 자잘한 모험담들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물론 가끔 삭제된 부분도 있지만 그 정도야 이해해 줄 수 있죠. 무척 안전한 각색이지만 여기에 불만을 품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E. 네스빗의 이미지와 영화의 이미지는 상당히 다릅니다. 전 네스빗의 동화를 현실적이고 밝고 화사한 색조로 상상합니다. 아무리 바스터블 애들이 집안이 몰락한다고 떠들어대도 전 걔들 때문에 대단한 걱정을 하진 않아요. 여전히 걔들은 하녀를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살림이 넉넉하고 애들도 활달하기 그지 없으니까요. 상황이 조금 더 심란하긴 하지만 워터버리 아이들 역시 크게 다를 건 없죠.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들을 누르고 있을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그들의 모험담은 밝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상당히 어둡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이야기들을 침울하게 묘사한 것도 아닌 데도 그래요. 아마 기본적으로 어두운 색조의 침침한 촬영과 세 주연 배우들의 가라앉은 연기 때문이겠지요. 영화 속의 워터버리 아이들은 책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기가 죽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컴컴한 느낌은 영화에서 오히려 매력으로 기능합니다. 이런 느낌이 시효가 지난 70년대 초의 영화 스타일, 요크셔의 풍광과 결합하자 독특한 회고적 정서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회고 정서는 [철길 위의 아이들]이 가진 고유의 스토리에 썩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마치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크리스마스 성찬을 접한 듯한 느낌입니다.

언젠가 말한 것 같은데, [철길 위의 아이들]은 제 '추억의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이제 나도 슬슬 추억의 영화를 챙기며 늙은이 티를 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IMDb에 가보니 19살짜리 사용자가 저랑 똑같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더란 말입니다. 70년대에 이 영화를 접했던 관객들도 그런 느낌을 품고 극장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철길 위의 아이들]은 시작부터 추억의 영화였는지도 몰라요. (02/01/07)

DJUNA

기타등등

1. 이 작품은 제작년에 텔레비전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큰 딸 바비 역을 했던 제니 애거터는 리메이크 버전에서 엄마 역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아마 이벤트 채널에서 방영되었을 겁니다.

2. 다시 보니 전엔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엄마 역의 배우가 다이나 셰리던이었네요!

3. 소설은 10살 안팎의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이 영화의 배우들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지요. 제니 애거터는 아마 17살 쯤이었을 겁니다. 동생 필리스 역의 샐리 톰세트는 애거터보다 두 살이나 더 나이가 많았고요!

4. 보면서 왜 제가 제니 애거터에 대해 그처럼 불쾌한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의심이 들더군요. 생각해보면 제가 본 이 사람 영화 중 이미지가 맘에 안 들었던 건 [도망자 로건]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성우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많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