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티븐 돌드리 Stephen Daldry

주연
케이트 윈슬렛....한나 슈미츠
Kate Winslet....Hanna Schmitz
레이프 파인즈....미하엘 베르크
Ralph Fiennes....Michael Berg
데이빗 크로스....젊은 미하엘 베르크
David Kross....Young Michael Berg
한나 헤르츠스프룽....율리아
Hannah Herzsprung....Julia
레나 올린....로즈 마터/일라나 마터
Lena Olin....Rose Mather / Ilana Mather
브루노 간츠....롤 교수
Bruno Ganz....Professor Rohl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젊은 일라나 마터
Alexandra Maria Lara....Young Ilana Mather

한나와 미하엘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는 오래 전 제 독일인 친구의 권유로 읽었던 책이죠. 그 때 번역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제가 전혀 모르는 언어로 쓰인 문학작품에 대해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과 그처럼 편하게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 당연한 일인데도.

이 소설을 각색한 스티븐 돌드리의 영화를 보면서도 자꾸 번역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요. 이 영화는 여전히 독일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내용상 절대로 바꿀 수 없지요!) 기본적으로 영어로 제작된 할리우드영화잖아요. 그 때문에 종종 괴상한 타협도 보입니다. 거리의 간판이나 안내문 같은 건 여전히 독일어지만 주인공이 읽고 쓰는 책이나 노트에는 영어이니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전 여전히 이 작품이 독일 영화로 만들어지는 게 더 좋았을 거라고 하지만 이 괴상한 혼란이 재미있기는 합니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하나는 첫 사랑에 빠진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미하엘 베르크는 열다섯 살 때 스무 살이나 연상인 전차 차장 한나 슈미츠와 사랑에 빠집니다. 이들의 관계는 철저하게 육체적인데다 한 쪽이 한참 미성년이니 결코 권장하거나 칭찬할만한 사례는 아니죠. 하지만 열다섯 살짜리 남자아이에겐 이런 일이 평생을 좌우하는 엄청난 경험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들 관계에서 특이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한나의 집착입니다. 한나는 책을 읽는 미하엘에게 매료당한 것처럼 보이고 그에게 계속 책을 읽게 시키죠. 마침내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읽는 행위가 섹스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나는 갑자기 미하엘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리는데, 여기에는 그녀만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영화는 중반 이후 같은 주인공들을 내세워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알고 봤더니 한나 슈미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했던 친위대원이었고 교회에 갇혀 불타죽은 유태인 300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지요. 법대생으로 우연히 한나의 재판을 참관하게 된 미하엘은 그에게 그처럼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있던 ‘책 읽기’가 이 재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역사와, 죄와 죄책감이라는 보편적인 사유 대상을 철저하게 개인적 차원에서 분석합니다. 한나 슈미츠가 지은 거대한 죄는 사실 수치심과 같은 사적인 결점으로 인한 행동이 누적되어 통제불능이 된 상태에서 발생한 결과입니다. 미하엘은 법률가로서 이 경우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그녀와 맺은 사적 관계를 통해 그 상황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보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어 더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적 차원의 이해와는 별도로 그는 여전히 한나에 대한 그의 감정과 한나가 지은 죄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암담한 이야기지만 죄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거랍니까. 아무리 우리가 죄인을 이해한다고 해도요.

케이트 윈슬렛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이 영화로 윈슬렛은 드디어 아카데미상을 탔습니다. 이 영화가 윈슬렛의 최고 걸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우 윈슬렛다운 연기이며 그것이 [더 리더]라는 영화의 질에 엄청나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죠. 단지 윈슬렛이 연기한 한나의 캐릭터는 제가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한나의 캐릭터와는 조금 다릅니다. 외모는 소설 속의 묘사와 많이 비슷해요. 하지만 윈슬렛은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자신의 캐릭터를 조금씩 로맨틱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이 영화에도 그런 점이 반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어요.

스티븐 돌드리와 데이빗 헤어의 각색은 모범적입니다. 너무 모범적이어서 [디 아워스]에서도 어느 정도 느꼈던 할리우드 문학 각색물의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 남아 있어요. 그 때문에 충실한 각색에도 불구하고 주제나 이야기가 조금 단순해졌다는 느낌도 들고요. 아마 그건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번역물’이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09/03/26)

DJUNA

기타등등

제작자인 안소니 밍겔라와 시드니 폴락은 모두 고인이 되었더군요. 다시 한 번 명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