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베르 라모리스 Albert Lamorisse

주연
파스칼 라모리스
Pascal Lamorisse
사빈느 라모리스
Sabine Lamorisse
르네 마리옹
Renee Marion
블라디미르 포포프
Vladimir Popov
조르즈 셀리에
Georges Sellier

1.

의료+건강 채널의 [영화로 읽는 세계 문학]은 상상 외로 알찬 프로그램입니다. [피그말리온], [신성한 것은 없다], [찻잔 속의 폭풍]과 같이 볼 기회가 드문 영화들로 가득해요. 구 교육 방송 특유의 낯간지러운 위선과 종종 터무니없을 정도로 형편 없어지는 화질을 무시하면 이 프로그램은 상당히 쏠쏠합니다.

알베르 라모리스의 고전 [빨간 풍선]도 이 프로그램이 아니면 보기 힘든 영화입니다. 34분 짜리밖에 안되는 단편이니 EBS 같은 곳에서도 틀어주기 힘든 영화죠. 결코 '영화로 읽는 세계 문학'은 아니지만, 아마 그 사람들은 알베르 라모리스가 나중에 이 영화의 스틸들로 만든 그림책을 '책' 취급 해주었나 봅니다. 하긴 상관 없죠. 핑계야 어떻건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니까요.

2.

내용은 많이들 아시겠지요. 파리에 사는 한 소년이 가로등에 걸려 있던 빨간 풍선과 친구가 됩니다. 빨간 풍선은 마치 살아있는 강아지처럼 소년을 따라다녀요. 종종 장난도 치고 다른 풍선들이 지나가면 쫓아가기도 하면서요. 하지만 소년의 짓궂은 친구들이 소년한테서 풍선을 빼앗고...

참 간결한 이야기에요. 제대로 된 대사도 하나 없고 사용되는 특수 효과도 소박하기 짝이 없고요. 하지만 이 작은 영화는 디지탈 특수 효과로 도배된 헐리웃 블록 버스터들 여러 편을 모아도 도달하지 못할 진짜 마술을 부리고 있습니다. 진정한 영화적 시에 도달한 것이죠.

사용된 어휘는 너무나도 기초적인 것입니다. 하얀 줄이 달린 빨간 구체지요. 라모리스는 이 간단하고도 간단한 물체를 위아래로 움직여 이 기가 막힌 시적 아름다움을 창조해 낸 것입니다.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엄청나게 풍요롭기도 합니다. 영화는 어린이 영화식 귀여움에서 짓궂은 유머, 절망적인 슬픔, 마지막에 도달하는 마술적 환희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감정으로 넘쳐 흐릅니다.

3.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것은 소년에게서 풍선을 빼앗으려는 아이들의 추격전입니다. 사실 전 이 장면이 무척 무섭습니다. 전 모든 종류의 떼거리 행위들이 무서워요. 그게 아이들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아이들의 집단이 어른만큼이나 추해질 수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종종 어른들보다 더 추해지지요. 아이들에게는 사회적 제어 능력이 없으니까.

라모리스가 의식적으로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모든 종류의 정치적, 종교적 광기에 대해 떠올리지 않으면서 이 장면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탓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4.

이 영화의 주연인 파스칼 라모리스는 알베르 라모리스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사빈느 라모리스는 누굴까요? 저도 모르겠군요.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받았습니다. 대사 하나 없는 프랑스 단편 영화인데도 말이에요. :-) (99/10/04)

DJUNA

기타등등

[빨간 풍선] 그림책은 국내에 소개된 적 있습니다. 아직까지 서점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