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동오

주연
김태희....소화
정우성....이곽
허준호....반추
소이현....효
박상욱....여위
김광일....웅귀
유하준....웅걸
박정학....창부신

1. 줄거리

이곽과 소화

시대배경은 통일 신라 말기. 주인공 이곽은 처용대라는 퇴마부대 출신의 무사인데, 원귀의 반란으로 깨진 결계를 통해 죽은 자들의 세계인 중천으로 들어갑니다. 중천은 사람이 죽으면 환생하기 전까지 49일 동안 머무는 곳이지요. 그곳에서 이곽은 옛날 여자친구를 만나는데, 그 여자친구는 지상에서 겪었던 모든 기억을 잃고 소화라는 이름의 천인으로 다시 태어났던 거예요. 하필이면 그 때 반란을 일으킨 원귀들이 소화를 쫓아오는데, 소화가 걸고 있는 영체 목걸이가 반란을 일으킬 때 꼭 필요했기 때문이죠. 더 재수없는 것은 그 반란을 일으킨 원귀들의 두목이 이곽의 옛날 상사인 처용대 대장 반추라는 것이고요. 물론 이곽은 반추와 부하들로부터 소화를 지키기 위해 발에 땀나도록 뛰어야 합니다.

2. 각본

[중천]의 각본은 그냥 나쁩니다. 이렇게 말을 쉽게 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어쩌겠어요. 나쁜데.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단점은 대사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은 그냥 현대인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것도 생각이 깊고 말을 잘하는 현대인처럼 말하는 게 아니라, 육두문자가 금지된 채팅방에서 짧은 어휘를 어떻게 놀려야할줄 몰라 쩔쩔 매는 틴에이저들처럼 말하고 있지요. 대사는 경박하고 내용은 빈약하며 결정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엄청나게 진부합니다.

이들의 대사가 진부한 건 인간과 인간 관계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연애, 삼각관계, 배반, 갈등은 모두 극단적인 장르 클리셰에요. 인간적인 느낌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캐릭터들은 설정집에서 뛰어나온 것처럼 행동하고 거기에서 벗어난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해요. 특히 소화-이곽-효의 삼각 관계는 영화를 보기도 전에 하품이 날 지경입니다. 영화가 정면으로 내세우는 '주제'라는 것도 장르 관습에 불과하고.

저는 언제나 장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일단 장르에 충실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될 재료를 장르에서만 끄집어내서는 안 되는 거죠. 전에 본 [무영검]도 그랬지만, [중천]의 각본도 무협지와 판타지만 죽어라 읽은 사람이 쓴 티가 팍팍 나요. 제발 다른 영화도 좀 보고 다른 책도 좀 읽으면서 시야를 넓히라고 외치고 싶군요. 톨킨이나 어슐러 르 귄과 같은 판타지의 거장들이 장르의 걸작들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머리가 판타지 장르에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요.

3. 배우

정우성과 허준호는 건너 뛰죠. 여러분은 그 사람들이 이런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 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 영화 시작하기 전부터 악명 높았던 김태희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죠. 전 이 영화에서 이 사람이 30초 이상 연기를 하는 걸 처음 봤습니다. 적어도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래요.

그렇게 나빴나? 그건 아니에요. 일단 이 사람 발성은 무척 정확한 편이더군요. 내용 전달 분명하고 호흡도 좋았고요. 표현 자체가 진부해진 '국어책 읽는 연기'보다는 나아요. 그리고 무척 예뻐요. 클로즈업 할 때마다 "예쁘구나!"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이건 무조건 장점이죠.

전 이 사람의 캐릭터 이해도 나름대로 정확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서 소화는 입사시험 만점 맞고 좋은 부서에 배정되었지만 세상물정을 잘 몰라 어리버리한 신입사원과 비슷한 캐릭터예요. 김태희는 최종 편집본에 나온 것보다 훨씬 코믹한 인물로 이 사람을 연기했을 것이고 영화에서도 그 흔적이 이곳저곳 보입니다. 영화가 차라리 작정하고 코미디를 강조했다면 모두가 혜택을 입었을 거예요. 영화도 덜 썰렁해보였을 거고. 아마 이건 재편집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 겁니다.

김태희는 정통파 연기를 할 때 무너집니다. 일단 이 사람은 연기 어휘가 무척 딸려요. 좋은 배우라면 A-B-C-B-A-D쯤으로 흐를 부분에서 이 사람은 A에서 D로 후닥닥 달려간 뒤 나머지 시간 동안 얼음땡이라도 당한 것처럼 딱 정지해버리죠. 이런 얼굴에 클로즈업을 확 들이대면, 아무리 예뻐도 관객들은 불편해지기 마련입니다. 내면 갈등을 드러내야 하는 부분에서도 이 배우는 얼굴 근육의 긴장으로 모든 걸 해치우려 해요.

그렇다고 이 모든 걸 김태희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느냐. 아뇨. 그렇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가끔 등장하는 조연이나 단역들의 연기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감독의 연기 지도가 형편없어요. 개별 연기들은 전혀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고 리듬도 엉망이죠. 한 마디로 말해, 이 영화의 감독인 조동오는 배우가 대사를 읊고 지도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정우성이나 허준호처럼 이미 이미지가 고정된 스타라면, 이런 환경에서도 중간치기는 할 수 있지만, 풋내기나 조역들은 그냥 무너질 수밖에 없지요. 김태희 연기가 나쁘게 보이긴 하지만 경쟁자로 나오는 소이현도 만만치 않거든요. 물론 돌이 씹히는 것과 같은 대사들과 재미없는 갈등은 아무리 연기가 좋아도 살릴 수 없는 것이긴 하죠.

4. 액션과 특수효과

이 영화의 가장 분명한 장점은 액션과 특수효과입니다. 그렇다고 이 부분에서 영화가 날고 긴다는 건 아니에요. 특수효과가 잔뜩 쓰인 장면에서 해상도와 화질이 뚝 떨어지는 부분들이 은근히 많고 몇몇 특수효과들은 거의 게임수준으로 싼 티가 나죠. 후자는 전적으로 기술 부족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안목의 문제가 더 크죠.

하지만 작정하고 덤벼든 장면들에서는 은근히 좋게 나온 부분도 많아요. 특히 이곽이 3만명의 원귀들과 싸우는 장면은 괜찮아요. 영혼들이 종이처럼 타버리는 특수효과는 썩 괜찮고 끈 달린 자작검을 던지고 휘두르며 만들어내는 이곽의 액션은 아이디어도 많고 리듬감도 괜찮습니다. 디지털 배우들도 비교적 잘 쓰인 편이고요. 물론 티는 나요.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액션 스타일처럼 보이더라고요.

5. 그렇다면?

뭐가 '그렇다면'이에요? [중천]은 성공한 영화가 아닙니다. 성공한 영화가 되기엔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이 지나치게 짧고 경험도 부족하지요. 통일신라시대를 무대로 하고 '처용대'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부대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거의 전적으로 중국 영화나 무협에 종속되어 있는 것도 문제고. 특수효과나 미술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거두기는 했어도 최종 결과를 보면 들인 수업료가 너무 비싸군요. 중간에 누군가 생각 있는 사람이, 결점이 너무나도 노골적인 각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건 뭐가 이래?"라고 말했어도 그 돈은 낼 필요가 없었죠. (06/12/15)

DJUNA

기타등등

전에 "김태희에겐 무슨 역을 줄까?"라는 내용의 잡담을 한 적 있는데... 전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코미디를 해요, 태희씨. 그렇다고 얼굴 근육 많이 쓰는 노골적인 코미디 말고 적당히 피식피식 웃을 수 있는 싱거운 것으로. 싸이언 광고 시리즈 정도가 딱 좋겠군요. 그 시리즈는 연예인 김태희의 시스티나 성당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