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주연
진 해크먼....로열 테넌바움
Gene Hackman....Royal Tenenbaum
안젤리카 휴스턴....에셀라인 테넌바움
Anjelica Huston....Etheline Tenenbaum
벤 스틸러....채스 테넌바움
Ben Stiller....Chas Tenenbaum
기네스 팰트로....마고 테넌바움
Gwyneth Paltrow....Margot Tenenbaum
루크 윌슨....리치 테넌바움
Luke Wilson....Richie Tenenbaum
오웬 윌슨.....일라이 캐쉬
Owen Wilson....Eli Cash
대니 글로버....헨리 셔먼
Danny Glover....Henry Sherman
빌 머레이.....랄리 세인트 클레어
Bill Murray....Raleigh St. Clair
세이모어 카셀....더스티
Seymour Cassel....Dusty
쿠마르 팔라나....파고다
Kumar Pallana....Pagoda
그랜트 로젠마이어....아리 테넌바움
Grant Rosenmeyer....Ari Tenenbaum
조나 마이어슨....우지 테넌바움
Jonah Meyerson....Uzi Tenenbaum
알렉 볼드윈....나레이터
Alec Baldwin....Narrator

테넌바움 가족, 헨리, 파고다

[로열 테넌바움]은 중부 유럽의 왕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로열'이라는 딱지가 붙을만큼 화려한 집안이긴 하지만요. 테넌바움 집안의 세 아이들은 모두 어렸을 때 천재로 명성을 떨쳤던 사람들입니다. 채스는 십대 초반부터 천재적인 사업가로 이름을 떨쳤고, 입양아인 마고는 9살때 첫 희곡을 쓴 극작가이며, 리치는 날리던 테니스 선수입니다. 일찍 꽃 핀 신동들이 대부분 그렇듯 지금은 다들 조금씩 맥빠진 삶을 살고 있지만요.

이들의 삶을 바꾸어놓은 것은 아버지 로열의 등장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 전직 악덕 변호사는 별거 중인 고고학자 아내 에셀라인의 재혼을 막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으로 치사한 음모를 꾸밉니다. 자기가 6주밖에 살지 못하는 말기 암환자라고 주장하며 아내 집에 턱 주저앉은 거예요. 어쩔 수 없이 테넌바움 집안 사람들은 신경도 쓰기 싫은 이 짜증나는 인간과 며칠을 함께 보내야 합니다.

설정만 보면 [로열 테넌바움]은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가족 영화처럼 보입니다. 오랫동안 소원했던 사이인 가족 멤버들이 모여 서로에 대한 애정을 되살리고 몇몇은 도덕적인 갱생 과정을 밟기도 한다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이며 작가인 웨스 앤더슨과 공동 각본가인 오웬 윌슨은 결코 눈물샘 짜는 감상적인 가족 영화의 클리셰를 남발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바틀 로켓]이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와 같은 그들의 전작들을 통해 그들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지 알고 있죠. 진지한 감정과 무덤덤하고 괴팍한 스타일을 접합해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상한 코미디 말이에요.

[로열 테넌바움]도 그런 이상한 이중성으로 가득합니다. 우선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존중받아 마땅한 진지한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앤더슨과 윌슨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뻔뻔스러운 카드보드 캐리커쳐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들은 옷도 갈아입지 않습니다. 대부분 마치 텔레비전 만화 시리즈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의상 하나로 일관하고 있죠.) 영화는 상실과 단절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비극을 묘사하는 방법은 경박한 코미디입니다. 영화는 정말로 우리가 로열의 개심을 받아주길 바라지만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관객들에게 그의 마음을 열어보이지 않죠.

그 결과는? 우린 가장 행렬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이상한 캐릭터들이 심각한 갈등과 고민을 하며 맨하탄과 아주 닮았지만 사실은 아닌 가상의 도시를 쏘다니는 걸 보게 됩니다. 관객들은 그런 어릿광대들을 구경하며 종종 킬킬거리며 웃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편하게 웃지는 않을 겁니다. 맘 편하게 웃기엔 뭔가 잘못되었으니까요.

영화의 스타일은 앤더슨의 이중적인 '삼가 말하기'를 더욱 강조합니다. 영화는 마치 [로열 테넌바움]이라는 가상의 소설을 각색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습니다. 책 커버가 제목을 대신하고 책의 장으로 영화가 구분되어 있으며 알렉 볼드윈이 상당한 비중의 무덤덤한 나레이션을 읊는 식이죠. 영화 음악은 대부분 기존곡을 재활용한 것들인데, 굉장히 적절하긴 하지만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에서 늘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영화 대부분을 차분한 대칭 구도로 일관하는 화면 역시 의도적으로 감정 이입을 몰아내는 것 같고요.

그러나 이런 의도적인 냉담함이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로열 테넌바움]은 결코 감정이 철철 넘쳐흐르는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수줍고 무표정하게 털어내는 감정은 우스꽝스럽지만 진실합니다. 그들이 우리한테 애정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몰라요.

배우들은 굉장히 좋습니다. 너무나도 뻔뻔스럽고 넉살좋게 로열을 연기한 진 해크먼이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지 못한 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기네스 팰트로의 냉담한 얼음공주 연기나 루크 윌슨의 무덤덤함도 기대 이상으로 영화와 잘 어울리고요. 전체적인 앙상블은 최고이며, 각각의 배우들은 모두 건조한 각본에 자기만의 무언가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로열 테넌바움]은 성공한 영화일까요? 이 작품은 [바틀 로켓]이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만큼 직접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은근히 기억에 오래 남는 매력적인 작품임은 부인할 수 없을 듯 해요. 정확히 이 영화의 어디 때문에 그런지는 도대체 알 수 없지만요. (02/03/07)

DJUNA

기타등등

테넌바움이라는 독특한 성은 웨스 앤더슨과 윌슨 형제의 대학 친구인 브라이언 테넌바움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브라이언 테넌바움의 집안 이야기는 아니라고 해요. 앤더슨이 그냥 이름이 맘에 들어서 빌렸다나요. 테넌바움은 이 영화에 응급실 요원으로 카메오 출연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