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변혁

주연
한석규....기훈
이은주....가희
성현아....경희
엄지원....수현

(시사회에서는 스포일러를 감추어달라고 부탁하는데, 솔직히 알아도 감상엔 별 지장 없습니다. 그렇게 눈치채기 어려운 비밀도 아니고요. 그리고 여러분이 이 영화의 원작인 김영하의 [거울에 대한 명상]과 [사진관 살인사건]을 읽었다면 영화가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여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희와 기훈

형사인 기훈은 남편이 상전이라도 되는 양 존댓말을 딱딱 올려붙이는 임신한 첼리스트 아내 수현을 놔두고 재즈 가수인 가희와 놀아나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는 사진관 주인이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데, 아무리 봐도 피해자의 아내 경희가 범인이거나 주모자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는 여자 둘 사이를 오가느라 사건에 집중할 여력이 없죠. 관객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요.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에서 제목을 따왔지만, 영화는 호손의 각색물이 아닙니다. 위에 언급한 김영하의 두 단편이 원작이죠. 불륜에 빠진 남자 주인공의 설정은 [거울에 대한 명상]에서, 그가 다루는 사건은 [사진관 살인사건]에서 빌려온 겁니다. 뭐, 후반부에 [주홍글씨]의 언급이 조금 나오기도 합니다. 불륜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 두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연결 안됩니다. 사진관 살인사건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훈이 해결해야 할 미스터리로 남을 뿐 그의 사생활에 간섭하지는 않습니다. 하긴 기훈은 여자 둘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쁩니다. 사진관 마나님까지 건드릴 여유가 없어요.

덕택에 영화는 지루해집니다. 두 스토리가 모두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서로의 이야기를 뒤로 잡아 끄는 것이죠. 덕택에 기훈의 삼각 관계 이야기도 재미없어지고 살인사건의 서스펜스나 미스터리도 사라집니다.

반전을 숨긴 미스터리는 어떠냐고요? 다를 게 없습니다. 삼각 관계의 축을 옮기는 반전은 원작을 읽지 않아도 처음부터 예측할 수 있는 것이고 영화는 이 반전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어떤 복선도 깔아두지 않거든요. 반전은 그냥 싱겁게 등장했다가 제대로 된 존재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밤이 기울면]을 어색하게 표절한 베드신만 남겨놓고요.

배우들 역시 낭비되거나 이름값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한심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건 아니에요. 문제는 이들에게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죠. 이 영화의 캐릭터들이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호감가는 인물들로 설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도 말을 바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특히 정도가 심한 한석규의 경우엔 말이죠. 매저키스트들을 위한 포르노를 찍는 게 아니라면 관객들의 시선을 화면에 잡아 둘 정도의 매력은 남겨두는 게 배우로서의 예의입니다. 이 영화의 한석규에겐 그런 게 없습니다.

한석규가 그처럼 재미없게 나오는 건 영화 자체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주홍글씨]의 문제점은 기술부족이 아닙니다. 그냥 재미가 없고 매력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죠. 모든 게 있어야 할 것 같은 위치에 무리없이 놓여 있지만 호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게 배우들의 연기건, 영화적 스타일이건, 이야기건 말이에요. 감독은 분명히 영화를 변호하고 의미를 설명할 논리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겠지만 그래도 이 무시무시한 사실은 바뀌지 않아요. 아무리 관점을 바꾸고 의미를 뒤집어도 [주홍글씨]는 여전히 매력없는 영화입니다. (04/10/20)

DJUNA

기타등등

언젠가 [주홍글씨]라는 번역 제목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The Scarlet Letter]는 [진홍글자]이지 [주홍글씨]가 아니잖아요. 번역제가 꼭 원제의 의미를 살려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 경우는 제목의 의미 자체를 왜곡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이 영화도 갈팡질팡하고 있죠. 오프닝 크레딧의 주홍색 배경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