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R.J. 커틀러 R.J. Cutler

안나 윈투어

[셉템버 이슈]라는 영화의 제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평소에 패션에 관심이 많고 8월 말이 되면 자기가 무엇을 하는 지 인식하고 2킬로그램이 넘는 종이로 만든 묵직한 흉기를 구입하는 부류일 겁니다. 그 사람들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나오기 전에도 안나 윈투어가 누군지 알고 있었을 겁니다. 물론 그들은 이 영화에 나오는 그레이스 코딩턴이나 앙드레 레온 탈리와 같은 인물들이 누군지도 잘 알겠죠. 그래도 그들만을 위해 극장용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는 없는 법. 역시 이 영화가 나온 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흥행성공으로 안나 윈투어라는 인물의 존재가 대중에게 각인되었기 때문이겠죠.

이 영화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멜로드라마를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영화는 그 영화/소설의 거울상으로 기획되었어요. 영화는 안나 윈투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비난하거나 숭상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영화는 2007년 9월호 제작이라는 구체적인 무대를 펼쳐 미국판 [보그]와 그 잡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패션계라는 전문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는 보여주는 것 뿐입니다. 영화 속의 안나 윈투어도 영화 속의 메릴 스트립처럼 화려하게 튀는 인물은 아닙니다. 단지 자기 일을 잘 하고 회사를 제대로 이끄는 관리자일 뿐이죠. 물론 카메라의 시선 밖에서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습니다. 윈투어는 자신의 캐릭터를 과시할 생각이 없고 결국 일과 사업이라는 실체는 여전히 남으니까요.

국외자들에게 [셉템버 이슈]가 그리는 패션 세계는 여전히 괴상해보입니다. 그것은 관심없는 사람들에겐 전혀 구별이 안 되거나 무의미해 보이는 자잘한 요소들과 선입견에 의해 이 세계의 흐름이 좌우되기 때문이지요. 윈투어와 그 무리들은 자신들이 그 흐름을 인식하고 있으니 믿고 따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권위에 익숙하지 않은 국외자들에게 그것은 논리적 설명이 배제된 일종의 계시처럼 보이죠. 패션계의 외면적 화려함과 과시성 때문에 그런 느낌은 더 강합니다. 하지만 모든 전문분야에는 괴상한 면이 있고 윈투어 일당들은 수십 년 동안 엄청난 돈이 오가는 자신의 세계에서 그 능력을 입증해왔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패션계를 벗어난 전체 세계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의미있고 중요한 인물들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인간 관계가 대부분 프로페셔널한 면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셉템버 이슈]의 인간 드라마는 건조한 편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스타일리스트 그레이스 코딩턴과 안나 윈투어의 관계는 재미있습니다. 코딩턴과 윈투어는 오랫동안 같이 일해온 친구이고 직장 내에서도 일종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코딩턴이 상상력 풍부하고 거침없는 예술가라면 윈투어는 현실과 타협하며 코딩턴의 질주를 막는 관리자죠. 둘의 관계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더욱 재미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셉템버 이슈]는 화려하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대단한 가십거리도 없고요. 영화는 그냥 화려해 보이는 패션 세계도 다른 어떤 곳과 마찬가지로 힘든 곳이고 열심히 일하고 재능있는 전문가들만이 대접받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뿐입니다. (10/01/13)

DJUNA

기타등등

위에서도 말했지만 윈투어와 코딩턴은 오랜 지기이고 사실 코딩턴이 윈투어보다 훨씬 나이가 위죠. 우리말 자막은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한 상하관계로 정리했는데, 전 그게 걸리더군요. 물론 그걸 우리 식으로 딱딱 정리해서 '언니 동생'으로 번역했다고 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