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The Shining (1980) * * * *

감독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

주연
잭 니콜슨....잭 토랜스
Jack Nicholson....Jack Torrance
셜리 듀발....웬디 토랜스
Shelley Duvall....Wendy Torrance
대니 로이드....대니 토랜스
Danny Lloyd....Danny Torrance
스캣맨 크로더즈....딕 할로랜
Scatman Crothers....Dick Hallorann
필립 스톤....델버트 그레이디
Philip Stone....Delbert Grady
배리 넬슨....스튜어트 울먼
Barry Nelson....Stuart Ullman

1.

저흰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귀신들린 집' 영화를 다루어 왔습니다. 클래식 헐리웃 시대의 고전인 [언인바이티드], 헨리 제임스 원작의 [공포의 대저택], 유령 선장과 젊은 과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로맨틱 코미디 [유령과 뮤어 부인], 로버트 와이즈의 루튼 식 유령 영화 [더 헌팅], 윌리엄 캐슬의 싸구려 클래식 [저주받은 언덕의 집], 캐나다 추리 호러물인 [체인즐링], 에드워드 왕조식 멜로드라마 [에드브룩의 비밀], 귀신들린 집 영화의 80년대 버전인 [가브린]까지. 아직 [폴터가이스트]나 [아미티빌] 시리즈, [헬 하우스의 전설], [검은 옷의 여인]과 같은 영화들이 빠져 있지만, 그래도 영어권의 귀신들린 집 영화들을 거의 총망라했다고 저희가 우겨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그러나 이 리스트는 뭔가 부족합니다. 꼭 다루어야 할 영화 하나를 지금까지 늑장부리며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네, 바로 [샤이닝] 말입니다.

2.

[샤이닝]을 귀신들린 집 영화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적어도 이 영화가 위에 언급한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낸 트릭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스티븐 킹의 원작이 셜리 잭슨이나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추정컨대 아마 기 드 모파상도)가 쌓아올린 성과를 디디고 위에 올라선 것처럼, 스탠리 큐브릭의 이 영화도 지금까지 만들어진 귀신 영화들이 없었다면 이런 모양새를 갖추지 못했겠지요.

그러나 '결정판'이라고 말하기엔 이 영화는 너무 독특합니다. 큐브릭의 개성이 지나치게 강하지요. 아마 그래서 저희가 계속 이 영화를 까먹고 있었나 봐요. 장르 영화라는 느낌이 별로 없으니 말입니다.

3.

다들 아는 이야기일테니 지나치게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줄거리를 한 번 이야기 해보기로 하죠. 겨울 관리인으로 취직한 전직 교사인 잭 토랜스는 아내 웬디와 아들 대니를 데리고 텅 빈 오버룩 호텔에 머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고립된 생활 속에서 그는 점점 미쳐가고 초능력이 있는 아들 대니는 호텔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있다는 걸 눈치챕니다. 마침내 완전히 미쳐버린 잭은 아내와 아들을 죽이려고 도끼를 휘둘러대지요.

이미 소문이 나 있는 것처럼, 이 영화의 내용은 자서전적입니다. [캐리]가 히트하기 전까지, 스티븐 킹은 꼭 잭 토랜스와 같은 삶을 살았으니까요. 소설 속에서 잭이 겪는 불안함과 폭력적 성향은 스티븐 킹의 실제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설 [샤이닝]은 지극히 인간적인 작품입니다. 잭이나 웬디, 대니가 겪는 모든 위난들은 허공 중에서 떨어진 초자연적인 폭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캐릭터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결점과 불안, 공포가 증폭된 결과지요. 힐하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오버룩 호텔도 원래의 문제점을 확장시키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 점에서 킹은 셜리 잭슨한테서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는 킹과는 꽤 다른 오버룩 호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큐브릭 영화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도 비인간적입니다. 아니, 비인간적이라기보다는 인간과 무관하다고 해야겠지요. 이 영화에서 공포와 폭력의 근원은 인간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건 오버룩 호텔의 텅 빈 복도나 미로와 같은 기하학적인 공간에서 나옵니다.

그 결과 원작의 성격을 규정했던 피와 살이 튀는 듯한 살아있는 느낌은 사라졌습니다. 영화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그랬던 것처럼 차갑고 냉랭하며 건조합니다. 스티븐 킹이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당연하죠. 큐브릭은 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4.

이런 냉정함은 일반적인 귀신들린 집 영화의 수법과도 완전히 반대입니다. 모범적인 귀신들린 집 영화는 빈 집이나 휠체어 같은 무생물도 살아있는 것처럼 다룹니다. 하지만 [샤이닝]은 살아있는 것도 시체처럼 다루지요. 잭 니콜슨과 셜리 듀발은 좋은 배우이고 연기도 훌륭하지만, 그들이 연기하는 것은 원작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아닙니다. 성격에서 행동까지 모든 것들이 사전에 고정된 꼭두각시들이지요. 너무나도 대조가 강렬한 외모부터가 그들의 연기를 가두어 버립니다. 발전시킬 기회가 처음부터 없어요. 각색도 인간적인 드라마를 잘라버렸습니다. 할로랜의 역할은 축소되었고 웬디의 성숙 과정도 사라졌으니까요.

남은 것은? 호텔 그 자체입니다. 정확히 말해 호텔의 빈 공간이지요.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이 텅비고 생명없는 존재가 한 인간의 정신을 먹어버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큐브릭은 이 무생물적인 느낌을 의식적으로 과장하지요. 호텔 내부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청결하고 어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딜 가도 깨끗하고 청결하고 밝아요. 어두컴컴하고 비틀린 힐하우스 구석구석엔 유령들이 숨어 있지만, 청결하고 완벽하게 질서잡힌 오버룩 호텔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텅 비었어요. 스티븐 킹의 원래 스토리가 뭐라고 말하건 간에요.

영화는 사람들을 이런 무생물적인 공간에 밀어 넣습니다. 고정된 카메라가 완벽한 구도로 잡아낸 화면 속에서 캐릭터들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감금된 상태지요. 특히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주 나오는 좌우대칭의 구도는 관객들을 숨막히게 할 지경입니다. 이런 구도는 거의 최면술과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하죠. 관객들은 디테일만 살짝 다른 비슷한 대칭 구도의 한 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끝도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요.

이 정도만 해도 끔찍한데, 큐브릭은 여기에 극도의 폐소공포증까지 추가합니다. 이 역시 일반적인 폐소공포증 영화와 반대입니다. 보통은 공간을 좁게 만드는 게 일반적인 트릭이잖아요. 하지만 큐브릭은 공간을 끝도 없이 늘립니다. 의식적으로 과장된 원근법과 막 발명되었던 스태디 캠이 만들어내는 운동감 때문에 호텔 복도는 실제 이상으로 길고 깊습니다.

그 결과 폐소공포증의 지옥이 탄생합니다. 적어도 닫힌 공간 너머에는 열린 공간이 있기 마련이죠. 문만 부수면 탈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없이 넓은 공간에서 탈출할 수는 없습니다. 희망 자체를 지워버린 거죠.

이 생명 없는 공간 속에서 주인공 잭은 서서히 무생물화 되어 버립니다. 유명한 '놀지 않고 일만 하는 잭은 바보 된다'라는 문장으로 빽빽하게 가득 찬 원고들은 그가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는 징표입니다. 일단 그의 광기가 본 궤도에 오르면 그는 고정된 말밖에 하지 못하죠. "여보, 나왔어!"나 "자니가 왔다!"라는 말들은 모두 텔레비전 쇼의 대사들입니다. 심지어 그의 분노까지도 더이상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의 감정에 모든 걸 던질 만큼 단순한 동물이 아닙니다. 그의 광기는 인간적이 아니라 기계적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많은 인기있는 해석들, 특히 영화를 가부장제 가족의 알력의 은유로 읽으려 하는 시도와 같은 것들이 영화보다는 소설에 더 잘 맞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영화는 인간엔 그렇게 관심이 없거든요. 바흐의 푸가가 인간과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요.

[샤이닝]에 위대한 구석이 있다면 그건 바흐적일 겁니다. 큐브릭은 완벽하고 비인간적인 질서가 보여주는 냉랭한 아름다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었던 거죠.

5.

[샤이닝]은 유명도에 비해 국내에서는 이상하게 소개가 안 된 영화여서 말들이 많죠. 출시되었다가 수거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정작 씨네21에 나온 기사에서는 그게 헛소문이라더군요. 만약 그렇다면 캐치원의 이번 방송이 최초의 정식 소개라는 것이겠네요. 기분이 이상한 걸요.

이 영화를 좋아한 적이 없었던 스티븐 킹은 나중에 자기가 직접 각색한 각본으로 [샤이닝]의 미니 시리즈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평은 그렇게 좋지 못했어요. (00/01/22)

D&P


기타등등

캐치원의 자막 번역은 '레드럼'의 정체를 처음부터 밝혀버리더군요. 도대체 왜 그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