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한재림

주연
송강호 ... 강인구
박지영 ... 허미령
김소은 ... 강희순
오달수 ... 현수
최일화 ... 노회장
윤제문 ... 노상무
민도기 ... 진호
이종관 ... 기태
이장훈 ... 용석
이용이 ... 고장집할머니

미령과 인구

[우아한 세계]의 주인공 강인구는 40대 초반의 남편이고 가장입니다. 아들은 캐나다로 조기 유학을 보냈고 딸도 유학 보내달라고 보채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집은 수돗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헐어빠진 아파트여서 당장 이사를 가야 하는데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어서 코피가 나도록 뛰어야 간신히 현상유지가 가능하죠. 게다가 지난 20년동안 몸 담았던 직장의 분위기가 영 좋지 않고 몸도 이전 같지 않은 데다가 아내는 당장 일을 그만두라고 보채고 딸은 아빠가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죠.

여기에서 빠진 정보가 있다면 강인구가 별을 주렁주렁 단 조직폭력배라는 것입니다.

조직폭력배를 주인공으로 다루면서 그를 한 명의 생활인으로 묘사하는 수법은 국내에서도 이미 [넘버 3]에서 시도된 적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마피아 가족을 다룬 HBO 시리즈 [소프라노스]가 있었고요. 조폭 영화가 인기를 끌고 이 장르의 스펙트럼이 조금씩 넓어진 지금 이런 시도가 나오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우아한 세계]의 차별점이 있다면 그건 조폭 세계에 대한 인류학적인 관심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아한 세계]는 조폭들의 세계에 대해 특별히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인구가 몸담고 있는 들개파의 묘사는 상당히 관습적이죠. '생활인 조폭'의 묘사를 위해 오히려 거세되고 지워진 부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세계]가 엄청나게 사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 영화가 굉장히 얄미운 사기를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조폭은 구체적인 직업이 아니라 보편적인 상징입니다. 어차피 대한민국 땅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들은 조폭이 아니라고 해도 조폭이나 다름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영화가 집중해서 묘사하는 것도 조폭 세계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조폭스러움입니다.

영화의 디테일 역시 섬세하게 조작되었습니다. [연애의 목적]에서 한재림이 보여준 적 있는 일상 묘사의 실력이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활용됩니다. 이 영화의 조폭들은 거의 밤에 다니지 않습니다. 사건들은 대부분 햇빛 쨍쨍한 여름날 대낮에 벌어지고 드라마나 액션 역시 학교 교무실이나 편의점과 같은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일어나지요.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와 생활공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린 쉽게 그들을 타자화 시킬 수가 없습니다. 송강호 특유의 사실적인 연기 역시 이런 친근함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기자인터뷰에서 작곡가 칸노 요코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원래 기획에서는 주인공 인구가 훨씬 '나쁜 놈'이었다고 하더군요. 송강호의 캐스팅 이후 진행 방향이 조금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이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아한 세계]가 인구를 지금처럼 순한 인물로 묘사하지 않고 그의 폭력성이 어떻게 그의 가족에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정직하게 묘사했다면 이 영화는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듬직한 관객 친화력을 얻지도 못했을 거고 보기도 불편했겠죠. 역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07/03/26)

DJUNA

기타등등

[연애의 목적]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아한 세계]도 음악이 무척 효과적입니다. 작곡가를 잘 만나기도 했지만 감독이 음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고 어디에 넣어야 할 지 잘 알아요. 요샌 이것도 중요한 재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없어요. 이젠 화면에 나오는 걸 그대로 어설프게 옮겨대는 '받아쓰기 음악'에는 진력이 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