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만희

주연
윤정희....현주
신성일....태일
남궁원....상국
허장강....미스터 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현주와 태일

[여섯개의 그림자]는 굉장히 전형적인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수상쩍은 괴한이 밤길을 가는 여자 주인공을 위협하자 갑자기 정의의 싸나이가 등장해 그 괴한을 쫓아내고 여자 주인공의 애정까지 얻는 거죠. 너무 뻔하다고요? 그렇긴하군요. 그 괴한이 허장강이고 정의의 싸나이가 신성일이니 캐스팅부터 그래요.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이야기는 슬슬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일단 여자주인공 현주의 전남편(이라곤 하지만 그냥 옛 동거남이죠)인 상국이 싸나이 태일에게 둘 사이의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현주를 협박해요. 참다 못한 현주는 상국을 미행해 살해하지만 알고 봤더니 태일 역시 상국과 공범자였네요. 둘이 짜고 현주가 물려받은 유산을 뜯어낼 계획이었던 거예요. 물론 허장강이 연기한 깡패 미스터 박도 한 패였고.

이것으로 끝이냐고요? 아뇨, 더 남았어요. 알고 봤더니 상국은 죽은 게 아니었고, 태일은 이번엔 진짜로 현주와 사랑에 빠지고, 미스터 박은 주변을 빙빙 돌면서 한 몫 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고요. 결국 영화가 끝날 무렵엔 서로를 협박하고 속이고 죽이고... 뭐, 그렇게 끝납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이야기죠? 전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서스펜스 영화들이 생각나더군요. [샤레이드]와 [어두워질 때까지]요. 둘다 수상쩍고 도덕관념 부족한 악당들에 둘러싸인 여자의 이야기들이죠. 분명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그렇다고 이 작품을 단순한 아류로 볼 수는 없어요. 일단 영화는 훨씬 거칠고 막 나가거든요. 오드리 헵번은 언제나 결백하기 그지 없었죠. 하지만 현주는 진짜 살인도 할 수 있는 여자예요. 대단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순진결백한 장식용 여자주인공은 아니죠. 구성 역시 꽤 그럴싸해요. 중간중간에 중간급 반전들이 튀어나오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거의 [와일드 씽]을 연상시킬 정도지요.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그렇게까지 똑똑하지는 않아요. 하긴 당시에 만들어진 한국 장르 영화들 중 치밀한 각본을 갖춘 작품은 별로 없었죠. 이 영화도 마찬가지라, 스토리엔 구멍이 많고 음모는 헐렁하기 짝이 없으며 캐릭터들의 행동도 흐릿합니다. 관객들을 다룰 줄 아는 전문가가 노련하게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치밀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해서는 안 돼요. 물론 당시 관객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었던 많은 장면들이 그냥 웃기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되고요.

배우들은 은근히 효과적이에요. 전 윤정희를 좋아한 적 없고 이 영화에서도 그냥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세 남자배우들은 비교적 잘 활용되었죠. 신성일과 남궁원은 모두 저에게 엄청난 비호감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네들 캐릭터 자체가 비호감인 걸요. 꽤 어울려요. 어느 쪽이 더 재수 없냐고요? 당연히 신성일이죠. 괜히 중간에 남자주인공인 척 하며 혼자 자기연민에 빠지는 게 엄청 밥맛이 없어요. 근데 그건 신성일이 연기하는 정통파 남자주인공과 크게 다를 게 없는 행동이거든요. 허장강은? 가장 재미있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상식적인 캐스팅인데, 그 때문에 노련한 악역 전문 배우가 자기 기량을 발휘할 백지 공간이 마련되는 거죠. 다른 남자들은 재미있게 활용된 정도지, 연기는 그냥 그렇거든요. (06/05/24)

DJUNA

기타등등

1. 미스터박이 코에 넣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감기약인가?

2. 그리고 왜 [여섯개의 그림자]죠? 현주까지 넣어도 두 명이 비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