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드가 G. 울머 Edgar G. Ulmer

주연
헤디 라마....제니 헤이거
Hedy Lamarr....Jenny Hager
조지 샌더스....존 에버레드
George Sanders....John Evered
루이스 헤이워드....이프레임 포스터
Louis Hayward....Ephraim Poster
진 록하트....아이사야 포스터
Gene Lockhart....Isaiah Poster
힐러리 브룩....멕 샐러다인
Hillary Brooke....Meg Saladine
리스 윌리엄스....디콘 애덤스
Rhys Williams....Deacon Adams
준 스토리....레나 템페스트
June Storey....Lena Tempest
모로니 올슨....새처 목사
Moroni Olsen....Rev. Thatcher
올리브 블레이크니....홀리스 부인
Olive Blakeney....Mrs. Hollis
캐슬린 록하트....패트리지 부인
Kathleen Lockhart....Mrs. Partridge
앨런 네이피어...헨리 샐러다인 판사
Alan Napier....Judge Henry Saladine
데이스 호이....팀 헤이거
Dennis Hoey....Tim Hager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니

[낯선 여인]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잠언] 5장의 "For the lips of a strange woman are sweet as honey, and her mouth is smoother than oil; but her end is bitter as wormwood, and sharp as a two-edged sword"라는 협박에서 따온 것입니다. 제가 가진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그냥 '탕녀'라고 번역하고 있더군요. 이 제목만 봐도 이 영화가 성서적인 교훈극이라는 걸 눈치채실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영화의 형식은 그 교훈을 따르고 있죠.

이 영화의 주인공 '탕녀'는 제니 헤이거입니다. 굉장한 미인이고 남자들을 조종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죠. 그리고 그 재능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19세기 초 메인 주의 작은 도시 뱅고어에서 생존해 나가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란 제니는 남자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데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 결과 제니 주변의 남자들은 한 명씩 처참한 최후를 맞아요. 제니의 아빠, 제니의 첫 남편인 부유한 사업가인 아이사야 포스터, 제니를 사랑하는 그의 아들인 이프레임... 제니는 이들 모두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옛날 영화인지라, 제니가 친구 멕의 약혼자인 존 에버레드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 흐름은 깨지고 맙니다만.

[그녀를 천국으로]의 원작자인 벤 에임스 윌리엄스(이 사람, 혹시 여성공포증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의 소설에 바탕을 둔 영화의 스토리는 어떻게든 제니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처형하려 합니다. 떠돌이 전도사의 설교에 제니가 충격을 받아 모든 진실을 두 번째 남편 존에게 고백하고 나중에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죽는 결말은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너무나도 인공적이라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울머가 제니를 다루는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이 영화에서 헤디 라마의 육체를 빌린 제니는 인간적인 감정과 무관한 아름다운 필름 느와르 괴물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늘 주변 세계와 무관한 자기 페이스로 움직이고 옆의 남자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건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둠과 빛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중간 지대에 서 있지요.

하지만 여기에 재미있는 갈등이 숨어 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나 형식이 뭐라고 말하건, 제니가 그렇게까지 혐오스럽거나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제니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이 사람이 생존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습니다. 제니가 의붓아들 이프레임을 협박해 남편을 죽이라고 부추긴 건 사실이지만, 그 사람이 며칠 전까지 밤을 세워가며 남편을 정성껏 간호한 것도 사실이죠. 제니가 친구의 애인을 빼앗은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의 일은 보통 사람들의 세상에선 늘 일어나지 않습니까? 제니가 멕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요. 결정적으로 제니는 평생 동안 뱅고어의 어떤 사람들보다 많은 선을 행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제니의 애정은 암만 봐도 위선이 아니에요. 위선자들은 적당히 돈만 내고 가끔 행사에 얼굴만 들이미는 것으로 자기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제니는 거의 모든 여가 시간을 그들에게 바칩니다. 마을 사람들이 경멸하고 '탕녀'로 모는 친구 레나를 끝까지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제니뿐이죠. 제가 뱅고어의 시민이었다면 진심으로 제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날개 없는 천사로 기억했을 것 같습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어디까지가 의도적일까요? 그걸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벤 에임스 윌리엄스가 아주 평면적인 괴물을 그리려 했던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그 사람은 테크닉컬러로 번뜩거리는 (영화는 흑백이지만) 거창한 괴물을 원했을 거고 이 모순적인 요소들도 대비효과를 위해 창조되었겠죠. 당시 관객들이라고 제니를 처벌당해 마땅한 탕녀로만 보지는 않았을 거고요. 하지만 당시의 관객들보다 현대 관객들이 제니의 동기나 행동에 훨씬 쉽게 몰입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새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제니가 그렇게 극단적인 죽음을 맞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 봐요. 제니 헤이거라는 캐릭터 자체가 40년대의 산물이라는 걸 적당히 잊는다면요. (06/10/03)

DJUNA

기타등등

헤디 라마, 조지 샌더스, 벤 에임스 윌리엄스... 40년대 울머 영화 치고는 꽤 화려하죠? 순전히 인맥 때문입니다. 라마와 울머는 동향출신이고 어린 시절 친구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