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사이먼 웰즈 Simon Wells

주연
가이 피어스....알렉산더 하디겐
Guy Pearce....Alexander Hartdegen
사만다 멈바....마라
Samantha Mumba....Mara
제레미 아이언즈....우버-몰록
Jeremy Irons....Uber-Morlock
시에나 길로이....엠마
Sienna Guillory....Emma
필리다 로....와칫 부인
Phyllida Law....Mrs. Watchit
마크 애디....데이빗 필비 박사
Mark Addy....Dr. David Philby
오메로 멈바....케일렌
Omero Mumba....Kalen

(스포일러가 있지만 신경 쓸 사람이 있기나 할는지...)

몰록과의 대결

[타임 머신]의 감독 사이먼 웰즈는 원작자 허버트 조지 웰즈의 증손자입니다. 아마 사이먼 웰즈가 [타임 머신] 계획을 밀고 나갈 수 있었던 데엔 그의 족보도 한 몫 했겠죠. 슬프게도 지금 비평가들은 바로 그 같은 족보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는 중인 모양입니다만.

이번 [타임 머신]은 50년대에 만들어진 조지 팔 버전보다는 원작에 살짝 덜 충실합니다. 기본 골격은 같아요. 시간 여행자가 80만년 뒤의 미래로 가서 일로이와 몰록이라는 두 종으로 퇴화된 인류를 만난다는 거죠. 하지만 영화는 앞에 프리츠 라이버식 도입부를 추가합니다. 우리의 시간 여행자 알렉산더는 약혼녀가 총에 맞아 죽자 타임 머신을 만들어 역사를 돌리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역사 보존'의 함정에서 벗어날 정보를 얻기 위해 미래로 간다는 동기가 여기에 있는 거죠.

영화는 '역사 보존 법칙'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아뇨, 도입부에만 쓸 뿐 중간에 대충 잊어버린답니다. 뒤에 엄연히 역사를 고치는 주인공 이야기를 하면서 '역사 보존 법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일로이와 몰록은? 이 영화에서도 일로이는 퇴화된 인류가 아닙니다. 조지 팔 버전에 나오는 벙거지 가발을 쓴 히피들도 아니고요. 아직도 현대 영어를 제2외국어로 구사하는 갈색 피부의 '원주민'들이죠. 보고 있으면 왜 이들이 몰록에게 계속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무력해보이지도 않으니까요.

몰록은 조지 팔 버전보다 사납고 무시무시합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허버트 조지 웰즈의 비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나중에 등장할 제레미 아이언즈의 캐릭터 '우버-몰록'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거든요. [토론토 스타]의 평론가는 이 영화를 [Beneath the Planet of the Apes]의 속편이라고 이죽거렸던 모양인데, 그러고 보면 우버-몰록의 설정은 꽤 비슷한 구석도 있습니다.

이렇게 설정을 깔아놨으니, 당연히 영화는 우리의 주인공이 일로이 족을 몰록의 압제에서 구출해내는 줄거리로 흘러갑니다. 네, 조지 팔 버전도 그랬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우버 몰록이 자연스럽게 타도해야 할 악당 노릇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 단순해집니다.

조지 팔의 영화에서도 그랬지만, 사이먼 웰즈의 [타임 머신]에도 허버트 조지 웰즈의 비전은 찾기 힘듭니다. 몇 가지는 제작비 때문이겠지만 (웰즈의 비전과 일치하는 일로이족을 그릴 수 있게 제작비를 팍팍 지원해주는 회사는 없겠죠) 진짜 이유는 웰즈의 비전을 따르기엔 이들이 겁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8천만 달러나 돈을 들였으니 어떻게든 본전 뽑는 영화를 만들어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머리에 꽉 박혀 있었음이 분명해요. 결국 창의적이고 시적이며 훌륭한 아이디어가 겁쟁이 장사꾼들에 의해 밋밋하고 지루한 재활용 스토리로 떨어지고 마는 거죠.

이 영화는 조지 팔 버전 보다 나을까요? 글쎄요. 조지 팔 버전의 순진맹충한 느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더 똑똑한 영화는 아니에요. 주제를 더 잘 다룬 것도 아니고 팔 버전처럼 순진무구한 매력도 없습니다.

있는 건 괜찮은 특수 효과입니다. 타임 머신의 시간 여행은 훌륭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멋지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네킹 장면은 팔 버전에 대한 오마주로 느껴지더군요) 스탠 윈스턴의 몰록 족들도 훌륭하고요. 얼굴은 조금 굳어 있지만 이들의 쿵쿵거리는 공격에는 굉장히 강한 힘과 질량감이 느껴지더군요.

그러나 이 정도의 특수 효과만으로 영화의 질을 변호할 수는 없을 듯 하군요. 이번 [타임 머신]의 리메이크는 그냥 건너 뛰어도 될 듯 합니다. 물론 여러분이 가이 피어스의 열성팬이어서 그래도 봐야한다면 막을 수 없지만요. (02/03/18)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알렉산더는 아인슈타인이라는 특허청 직원과 편지 왕래를 주고 받으며 타임 머신의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 않나요?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이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하다고 주장한 사람인 걸요.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의 우주는 허버트 조지 웰즈가 가상했던 우주보다 시간 여행이 훨씬 불편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