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주연
에드먼드 그웬....와일즈 선장
Edmund Gwenn....Captain Wiles
셜리 맥클레인....제니퍼 로저스
Shirley MacLaine....Jennifer Rogers
존 포사이드....샘 말로우
John Forsythe....Sam Marlowe
밀드레드 내트윅....미스 그레이블리
Mildred Natwick....Miss Gravely
밀드레드 더녹....윅스 부인
Mildred Dunnock....Mrs. Wiggs
제리 매서스....아니 로저스
Jerry Mathers....Arnie Rogers
로얄 데이노....캘빈 윅스
Royal Dano....Calvin Wiggs
파커 페널리....백만장자
Parker Fennelly....Millionaire
배리 매컬럼....떠돌이
Barry Macollum....Tramp
드와이트 마필드....그린보우 박사
Dwight Marfield....Dr. Greenbow

1.

온 세상이 금빛으로 물든 버몬트의 어느 가을날, 해리 워프라는 남자의 시체가 역시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작은 숲 속에서 발견됩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특히 은퇴한 선장인 와일즈 노인, 동네 노처녀 미스 그레이블리, 아들 하나 데리고 혼자 살고 있는 제니퍼, 추상화가인 샘에게 해리의 시체는 정말 골칫거리였죠. 모두가 해리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양심의 부침과 실리에 따라 끊임없이 시체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갔으니까요. 덕택에 불쌍한 해리의 시체는 끝도없이 위치를 옮겨가고...

2.

많은 히치콕 팬들에게 [해리와의 트러블]은 귀여운 돌연변이 정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폭력행위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장기인 서스펜스 설정에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듯 하니까요. 심지어 금발 미녀도 등장하지 않고 사건은 화려한 도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시골 동네에서 일어난답니다.

영화는 개봉 당시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긴 히치콕도 흥행 성적에 대해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배우들은 모두 무명이거나 신인이었고, 판권료가 오를까봐 원작 소설도 익명으로 구입했으니까요. 그 결과 영화에 들인 돈은 겨우 1백만 달러 정도였으니 흥행에 깨졌어도 손해볼 이유는 없었던 거죠.

히치콕에게 이건 그냥 가벼운 오락이었을까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가볍고 다루기 쉬운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러나 조금 진지한 실험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아마 그는 순수한 코미디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스미스 부부]와 같은 영화가 있기는 했지만, 그거야 예외 상황이었으니까요.

3.

원인이나 결과가 어떻건, [해리와의 트러블]은 히치콕의 본류에서 그렇게 벗어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반대로 히치콕이라는 남자의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 중 하나일 수도 있죠. 영화가 작고 분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요소들을 연구하기에는 더욱 적절합니다.

[해리와의 트러블]의 코미디는 히치콕이 대상을 다루는 태도에 대한 모범적인 예를 제공해줍니다. 이 영화는 사실 농담 하나로 끌어가는 원 조크 코미디죠. 살해된 것일지도 모르는 시체가 굴러다니는데, 사람들은 모두 그 시체를 귀찮은 가구 정도로 여기는 듯 싶습니다. 지극히 영국적인 내용이지요? 사실 영국을 무대로 했으면 더욱 그럴싸했을지도 모릅니다. 버몬트의 아름다운 풍광을 얻지는 못했겠지만요.

그리고 히치콕은 지극히 영국적인 남자였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영국적인 성향과 헐리웃적인 미국식 테크닉을 교활하게 뒤섞던 남자였지요. 그는 늘 관객들을 사건 속에 몰입시키고 동화시키려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자기 자신만은 그 사건에서 한발 쯤 뒤에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의 영화에 숨어있는 얄미운 유머도 사실 그 때문이지요.

히치콕은 [해리와의 트러블]에서 의식적으로 '미국적 특성'을 제거했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계처럼 정확하게 한가한 페이스를 유지합니다. 극적이고 서스펜스가 넘쳐야 할 장면들도 완벽하게 짜여진 닫힌 구도 안에 얌전하게 결박됩니다.

그 결과, [해리와의 트러블]은 일종의 해부도 구실을 하게 됩니다. 감독으로서의 그의 취향과 태도가 보다 확실하게 드러나는 거죠. 사실 이 영화의 원 조크 코미디는 거의 모든 히치콕 영화의 핵심입니다. '삼가 말하기 understatement'와 진부함을 거부하고 뒤집는 대조말입니다. 히치콕은 이 두 가지를 기둥삼아 그 위에 영화적 화려함을 덧씌웠던 겁니다.

히치콕 영화의 주제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도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광맥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많은 히치콕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이 영화도 지극히 카톨릭적인 죄의 '전이'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부분은 너무 깊이 파지 않는 게 좋겠군요. 원래부터 원작에 있던 요소와 히치콕 고유의 취향을 멋대로 뒤섞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4.

[해리와의 트러블]은 무척 행복한 영화입니다. 심지어 제가 해리여서 그 숲에 죽어 나자빠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행복했을 거예요. 시체를 둘러싼 소동 속에서 두 쌍의 연인들은 맺어지고 영화는 아름다운 해피 엔딩으로 끝나니까요.

버몬트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도 이런 행복한 충족감을 더해줍니다. 해리의 시체를 처리한 네 명의 주인공들이 석양을 등지고 걸어오는 장면같은 걸 보면 밀레의 농촌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풍요로운 성취감이 담겨있습니다.

배우들 역시 기막히게 잘 캐스팅되어 있습니다. 특히 에드먼드 그웬과 밀드레드 내트윅의 조용한 코미디는 훌륭하죠. 셜리 맥클레인이라는 재능있는 배우를 발굴해낸 히치콕의 눈썰미를 칭찬할 수도 있습니다(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맥클레인의 영화 데뷔작입니다.)

버나드 허먼과 히치콕의 첫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이 영화는 중요합니다. 허먼이 이 영화에 제공한 음악은 결코 [현기증]이나 [사이코]에 필적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유쾌합니다. 종종 히치콕은 허먼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블랙 코미디의 배경으로 삼는 얄미운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해리와의 트러블]의 가치를 필요 이상으로 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앞에서 뭐라고 말했건, 결국 이 영화는 가벼운 실험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제공하는 상쾌한 매력을 무시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그것이 히치콕적이라는 것을 무작정 부인하는 일도 시간 낭비일테고요.

5.

히치콕은 샘의 그림이 걸려 있는 야외 전시장 앞을 지나가는 행인입니다. (00/02/09)

DJUNA

기타등등

[히치콕의 대화]에는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번역 탓인지, 트뤼포가 실수한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더블 베드를 요구한 사람은 제니퍼가 아니라 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