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이 워드 베이커 Roy Ward Baker

주연
잉그리드 피트....카밀라
Ingrid Pitt....Carmilla
마델라인 스미스....엠마 모튼
Madeline Smith....Emma Morton
피파 스틸....로라
Pippa Steel....Laura
케이트 오마라....페로도 선생
Kate O'Mara....Mme. Perrodot
키어스틴 베츠....첫번째 흡혈귀
Kirsten Betts....1st Vampire
피터 쿠싱....스필스도르프 장군
Peter Cushing....General von Spielsdorf
조지 콜....로저 모튼
George Cole....Roger Morton
퍼디 메인....의사
Ferdy Mayne....Doctor
더글러스 윌머....요아킴 폰 하르톡 남작
Douglas Wilmer....Baron Joachim von Hartog
던 아담즈....백작부인
Dawn Addams....The Countess
존 핀치....칼
Jon Finch....Carl
하비 홀....렌튼
Harvey Hall....Renton
존 포브스-로버트슨....검은 옷의 남자
John Forbes-Robertson....Man in Black

카밀라

현대 흡혈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영문학의 선조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브램 스토커가 쓴 [드라큘라]이고 다른 하나는 셰리단 르 파누가 쓴 [카밀라]지요. [드라큘라]가 남성 흡혈귀의 모델을 제시한 작품이라면 [카밀라]는 여자 흡혈귀들의 모델을 제시한 작품이죠.

[카밀라]는 유명한 후배인 [드라큘라]만큼 영화 장르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매혹적인 작품이지만, 야심찬 대작인 [드라큘라]에 비하면 비교적 소품이고 가볍거든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소재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룬 최초의 흡혈귀 소설입니다. [드라큘라]는 내용과 설정을 많이 바꾸지 않고 다른 매체로 옮길 수 있었지만 [카밀라]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레즈비어니즘을 빼면 시체인 소설이잖아요. 문자 매체로는 여전히 우아한 오락으로 남지만 영상으로 옮기면 사정이 달라지지요.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카밀라]는 서서히 영화쟁이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어느 정도 검열이 완화되었기 때문에 이 타락한 빅토리아 시대 소설을 영화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여건이 조성된 것입니다.

최초로 각색을 시도한 사람은 로제 바댕이었습니다. 유명한 [피와 장미]가 그 작품인데, 사실 말이 각색이지, 카른스타인이라는 고유 명사와 여자 흡혈귀 아이디어만 살짝 빌려온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원작에서 주요 테마였던 동성애는 분위기만 이용했고요. IMDb에 따르면 그 다음에 [La Maldición de los Karnstein]이라는 스페인/이탈리아/영국 합작 영화가 나왔던 모양입니다. 내용 요약을 읽어보면 [피와 장미]보다 훨씬 원작에 가까운 듯 해요.

그 다음에 나온 영화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뱀파이어 연인들]입니다.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작품이죠. 70년대 이후 수없이 쏟아져 나온 레즈비언 흡혈귀 영화들의 직접적인 시조니까요. 하긴 70년대 당시만 해도 영화 속의 레즈비언들은 반 이상이 흡혈귀였잖아요?

[뱀파이어 연인들]도 원작과 꽤 충실한 편입니다. 소설 줄거리는 다들 아시죠? 스티리아에 사는 영국인 부녀의 집 근처에 마차 사고가 일어납니다. 마차에 타고 있던 엄마는 생명이 달린 중요한 일이라고 떠나면서 병약한 딸 카밀라를 그 집에 맡겨놓죠. 딸인 로라와 카밀라는 곧 친한 사이가 되지만 알고 봤더니 카밀라는 주로 로라 또래의 여자들을 노리는 흡혈귀였습니다.

영화도 대충 비슷한 줄거리를 따라갑니다. 단지 하르톡 남작이라는 흡혈귀 사냥꾼이 여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여자 흡혈귀를 죽이는 프롤로그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소설에서는 후반부에 자세히 소개되는 스필스도르프 장군의 조카딸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조카딸은 딸로 바뀌었고 이름이 로라가 되었습니다 (덕택에 주인공 이름이 엠마로 바뀌었고요.) 덕분에 미스터리가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상관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비밀은 아니었으니까.

카밀라가 엠마네 집에 와서 겪는 일들은 원작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노출이 조금 더 심해지고 야해졌죠. 원작에서는 수더분한 아줌마 형이었던 가정교사 마드므와젤 페로도는 섹시한 브루넷으로 변신해 카밀라의 애인이 됩니다. 렌튼이라는 집사가 나와 카밀라의 음모를 잠시 방해하다가 운나쁜 최후를 맞고요. 나중에 하르톡 남작이 다시 등장해서 장군과 함께 카밀라 사냥에 나섭니다.

원작에선 가볍게 묘사되었지만 영화에서는 이상하게 강조된 부분도 있습니다. 소설엔 초반에만 잠시 나오는 검은 옷의 남자가 영화에서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주 등장하고 있지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이에요.

카밀라와 로라

[뱀파이어 연인들]에서 현대 주류 동성애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공정성'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 영화에 레즈비어니즘이 등장하는 진짜 이유는 늘씬한 '해머 베이브'들에게 잠옷같은 야리야리한 옷을 입혀놓고 가끔 나체를 노출시켜가며 뒹굴게 하기 위해서니까요. 충분히 관객들이 즐겼다 싶으면, 정장 차림의 엄숙한 이성애자 남자들이 나타나 레즈비언 흡혈귀를 처단하고 이전의 질서를 회복합니다. 동성애 이미지의 착취와 호모포비아가 당연하다는 듯 얽혀있는 거죠.

이런 영화들이 종종 그렇듯, [카밀라]의 야한 장면들은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귀엽기까지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카밀라가 목욕하는 동안 엠마가 카밀라의 옷을 입어보는 장면을 들 수 있죠. 엠마는 그 옷을 입기 위해 코르셋까지 벗어야 합니다. 그 옷은 코르셋을 입고 입으면 모양이 안난다나.

슬슬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해볼까요? 아무리 [뱀파이어 연인들]이 밝히는 영화라고 해도, 셰리단 르 파누의 원작이 지닌 핵심까지 버리지는 않습니다. 흡혈귀가 희생자에게 느끼는 '사랑과 비슷한 감정'은 소설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의 카밀라는 어떻게 보면 소설 속의 카밀라보다 더 동정적으로 묘사됩니다. 적어도 엠마에 대한 카밀라의 사랑은 진짜입니다. 사랑의 성취가 여자 친구와 한 관에 눕는 거라는 게 좀 걸리지만요. 종종 원작보다 훨씬 더 정곡을 찌르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엠마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자 카밀라가 짓는 그 수치심과 서글픔이 뒤섞인 표정과 같은 건 원작엔 없습니다.

칭찬해주어야 할까요? 억지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전문적인 레즈비언 흡혈귀 착취꾼이었던 장 롤랑도 그 정도 예의는 차릴 줄 알았습니다. 꼭 예의만도 아닙니다. 아무리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라도 로맨스 없이 섹스와 노출만 넣는다면 재미가 없을테고 관객들의 위선 또한 고려해야 할테니까요.

이쯤해서 해머 베이브들의 여왕이며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인 잉그리드 피트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뱀파이어 연인들]이 아직까지 컬트 영화 행세를 하는 데엔 피트의 존재감 덕도 클테니까요.

카밀라의 최후

저에겐 미스 캐스팅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가진 카밀라 이미지에 잉그리드 피트가 맞지 않기 때문이죠. 저에게 [카밀라]는 열광적인 틴에이저 로맨스입니다. 카밀라도 십대 후반의 캐릭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영화를 찍을 때 피트는 벌써 삽십대 초반이었습니다. 결코 엄마가 건강을 걱정할 만큼 여려보이지도 않으니 스토리와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머 영화사에서 의도했던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엔 그런 가녀린 틴에이저 배우가 어울리지 않았을 겁니다. [뱀파이어 연인들]과 같은 영화엔 피트와 같은 사람의 성숙한 섹스 어필이 필요했을지도 몰라요.

슬슬 글을 맺을 때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이 영화를 온갖 방법으로 놀려대며 페이지를 채웠지만, 이번에 다시 보면서 이 작품이 제가 기억하고 있던 영화보다 훨씬 그럴듯해 보여서 조금 놀랐습니다. 아마 처음 보았을 때는 맘에 든 원작 소설에 지나치게 집착했었던 모양이에요. 전에 보았던 때보다 그럴 듯 해보인다고 거친 구성과 속보이는 의도가 무시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뱀파이어 연인들]도 세월이 흐르다보니 슬슬 '고전'의 무게를 얻은 듯 합니다. 그게 아무리 '캠피'한 의미의 고전이라고 해도요. (01/09/10)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는 최근에 MGM 미드나잇 무비 시리즈의 하나로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DVD 소문이 없군요. 보통 반대이기 마련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