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몬톤 아라양쿤 Monthon Arayangkoon

주연
핏찬나트 사카콘....팅
Pitchanart Sakakorn...Ting
아파시리 니티브혼....민
Apasiri Nitibhon...Meen
펜팍 시리쿨....파이
Penpak Sirikul...Fai







(스포일러 없이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

팅

[사령-리케의 저주]가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범죄현장검증 재현전문배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인형이나 마네킹을 사용하지만 태국에서는 진짜 배우들을 쓰나봐요. 하여간 배우지망생인 우리의 주인공 팅(저 길고 장황한 태국 이름들이 어떻게 이렇게 짧아질 수 있는지 전 정말 모르겠군요)은 경찰서 부서장의 추천을 받아 일을 시작하는데, 외모가 어느 정도 따라주고 연기도 열심이라 나름 이 세계에서는 인정받는 전문가가 됩니다. 적어도 취재하러 온 신문기자들이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는 유명해진 거죠. 하지만 팅은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최종목표는 진짜 배우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 팅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왕년에 미스 유니버스 2등을 했던 유명한 배우 민이 살해당한 것이죠. 전남편인 자런이 살인혐의로 체포되고 사건재현의 스케줄이 잡힙니다.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유명한 사건이라 여기서 대역만 잘 하면 진짜로 뜰 수도 있어요. 하지만 부서장은 팅 대신 여자 경찰관을 대신 대역으로 쓰려 해요. 팅은 실망하지만 그 실망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 경찰관이 수상쩍은 상황에서 심장마비로 죽었기 때문이죠. 대타로 현장검증에 투입된 팅은 기자들 앞에서 괴상한 경험을 합니다. 갑자기 민의 영혼에 빙의되어 전남편의 무죄를 선언한 것이죠.

현장 검증이 끝나자 팅은 아마추어 탐정이 되어 진범을 찾는 수사를 시작합니다. 민의 영혼이 일러준 방향으로 가다보니 민의 옛 성형외과 의사인 파이가 나오죠.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뻔합니다. 조금 불쾌하기도 해요. 정말 고루한 동성애 편견에 바탕을 둔 이야기거든요.

근데 이야기가 거의 끝날 무렵 갑자기 모든 게 바뀝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팅과 민이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었던 사람(과 귀신)은 사실 진짜 팅과 민이 아니었던 거죠. 이들은 모두 영화배우로, 팅과 민이 관련된 실제 사건을 각색한 영화를 찍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적어도 팅을 연기한 핏찬나트 사카콘은 메이라는 자기 진짜 별명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배우에 익숙한 태국 관객들에겐 훨씬 와닿는 설정이겠죠.

이건 굉장히 위태로운 술수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감정이입하며 따르던 주인공이 갑자기 사라지고 엉뚱한 새 등장인물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으니까요. 하지만 구제하기 불가능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무리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게 영화였다고 해도 팅과 민의 이야기는 여전히 사실이니까 그렇게 허망하게 느껴지지는 않지요. 게다가 이 트릭에는 고유의 장점이 있습니다. 사실과 사실의 재현, 스타와 팬의 관계라는 전반부의 테마가 그대로 확장되어 계승되는 것이죠.

여기에는 영화촬영현장과 관련된 고유의 호러장치들도 있습니다. 영화를 찍는 배우들과 스탭들은 모두 귀신을 보거나 괴상한 현상을 경험하고, 그 귀신들은 실제로 필름에 찍힙니다. 여기엔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도는 '호러영화를 찍는 동안 진짜 귀신이 찍혔어!"식 소문이 첨가됩니다. [사령-리케의 저주]를 실제 살인현장에서 찍었는데, 정말로 영화를 찍는 동안 귀신 사진이 찍혀서 엔드 크레딧에 넣었다는 거죠. 그 귀신사진들이라는 건 모두 로르샤흐 검사 그림들처럼 애매모호하지만 원래 그런 것들은 그런 애매모호한 재미로 보는 거죠.

문제는 결말입니다. 영화는 관객들을 놀래키고 매스컴에 의해 부풀려진 성형열풍과 스타에 대한 갈망에 대해 보다 강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갑자기 엉뚱한 귀신을 등장시킵니다. 나름 국면전환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 때문에 전체적인 이야기 균형이 깨져버립니다. 영화촬영현장으로 무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팅과 민의 이야기는 계속되었잖아요. 하지만 반전 이후로 영화의 스토리는 완전히 단절되어 버립니다. 성형과 스타집착에 대한 주제는 지나치게 노골적이 되었고요.

더 나은 해결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전 팅의 후일담이 궁금했습니다. 만약 진짜 팅이 후반부에 등장해 팅을 연기하는 메이와 연결된다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이야기의 균형도 유지될 수 있었을 겁니다. 팅 역시 스타가 되길 갈망하는 배우지망생이니 원래 하려던 이야기도 계속 할 수 있었을 거고요.

테크닉적인 면에서 [사령-리케의 저주]는 우직하고 단순합니다. 관객들을 무섭게 하려고 온갖 수를 다 써요. 그 때문에 가끔 논리가 위태롭습니다. 예를 들어 민의 귀신은 팅을 자신의 대역으로 쓰게 하려고 여자경찰을 죽이는데, 동정받아야 할 귀신이 이러면 곤란하죠. 얼굴이 새까맣게 타 들어갈 정도로 심하게 변형된 시체들을 보고 심장마비라고 우기는 것도 좀 그렇고요. 거의 비슷하게 노골적인 길을 따르고 있지만 훨씬 효율적이고 무서운 영화인 [샴]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공력이 딸린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령-리케의 저주]의 가장 큰 장점은 영혼과 사후세계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태국의 환경입니다. 그 때문에 뻔한 귀신이라도 은근히 사실적으로 보여요, 종종 귀신들이 장르 안에 갇힌 마네킹처럼 보이는 우리 호러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07/08/27)

DJUNA

기타등등

전 모 극장에서 이 영화를 저녁 시간대에 봤는데, 저밖엔 관객이 없더군요. 무섭지 않은 장면이 나오는 동안에도 등 뒤가 허해서 괜히 소름끼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