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린든 처벅 Lyndon Chubbuck

주연
안나 프리얼....릴리
Anna Friel....Lily
몰리 파커....실비아
Molly Parker....Sylvia
브렌다 프리커....베티
Brenda Fricker....Betty
로렌 딘....조
Loren Dean....Joe
줄리 콕스....소피
Julie Cox....Sophie
에이든 영....찰리
Aden Young....Charlie
캐롤라인 케이브....페기
Caroline Cave....Peggy
벤 와인버거....루이
Ben Weinberger....Louie

릴리

[잉글리쉬 브라이드]는 캐나다 역사의 조금 유별난 한 페이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939년 캐나다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부터 6년 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캐나다 군인들과 결혼한 4만 5천 명이나 되는 유럽 여자들이 고국을 떠나 캐나다로 건너 갔습니다. 그 중 93퍼센트가 영국인이었다고 해요.

이들은 캐나다 역사상 가장 이색적인 이민 행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색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죠. 여러분이 당시 유럽에 사는 그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었다면 전쟁으로 얼룩진 모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새 삶을 시작하자는 제안은 상당히 유혹적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는 전쟁 시작부터 참전했었고 이들 전쟁 신부들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지요.

우리의 주인공 릴리도 그런 전쟁 신부들 중 하나입니다. 본국에 엄청 큰 농장을 가지고 있다고 떠벌리는 캐나다 군인 찰리와 결혼해서 캐나다로 건너갔지요. 하지만 릴리를 기다리는 건 벌판 한복판에 선 거의 무너져 가는 작은 농장과 무뚝뚝한 시댁 가족뿐입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굉장히 친숙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릴리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자주 쓰여졌던 미국 서부나 캐나다를 무대로 한 영어권 가정 소설 주인공들 같습니다. 릴리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해가는 시어머니와 시동생의 묘사는 어딘지 모르게 [폴리애나] 같군요. 캐나다가 무대라는 이유로 [애본리]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잉글리쉬 브라이드]는 어린이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릴리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는 조금 더 '성인풍'입니다.

[잉글리쉬 브라이드]의 재미는 전형적인 런던 노동자 계급의 여자 주인공이 무뚝뚝한 캐나다 사람들 사이에서 문화갭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브렌다 프리커와 몰리 파커의 담담한 연기와 안나 프리얼이 보여주는 상당히 외향적인 연기의 대조도 이런 그들의 충돌과 적응 과정을 그럴싸하게 그려내고 있죠.

영화는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특히 찰리가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부터는 그들을 이렇게 얽어놓은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꽤 많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전 이 영화를 꽤 재미있게 본 편입니다. 세 주연 배우들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에 호감을 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주 깊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전체적으로 방향이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이야기도 충분히 깊이 있게 묘사되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요.

아무래도 각본이 전쟁 신부라는 소재에 지나치게 얽혀있었던 게 문제인 것 같군요. 릴리는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자연인이지만 영화는 자꾸 그녀를 하나의 독립된 개인 대신 4만 5천명이나 되는 캐나다 전쟁 신부들의 상징으로 몰고가려 합니다. 그 때문인지 영화는 어디선가부터 필요 이상으로 교과서처럼 변해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홀마크 텔레비전 영화와 아주 비슷한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02/01/08)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각본가 안젤라 워크먼의 어머니도 영국에서 건너온 전쟁 신부였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