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켄 로치 Ken Loach

주연
킬리안 머피....데이미안
Cillian Murphy....Damien
패트릭 딜레이니....테디
Padraic Delaney....Teddy
리암 커닝햄....댄
Liam Cunningham....Dan
올라 피츠제랄드....시니드
Orla Fitzgerald....Sinead
로저 앨럼....존 해밀턴 경
Roger Allam....Sir John Hamilton
윌리엄 루안....고간
William Ruane....Gogan
존 크린....크리스
John Crean....Chris

데이미안과 테디

서구 좌파 지식인이 20세기 초를 회상하는 방식은 한국 사람들이 80년대를 회상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목표와 주적이 분명했고 세상을 바꿀 희망도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당시엔 지식인들이 좌파가 되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였죠. 심지어 어네스트 헤밍웨이처럼 영 체질이 아닌 사람들도요. 켄 로치가 이 시대로 다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의미있는 주제 탐구의 목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당시를 회상하는 게 그냥 좋고 편한 거죠.

로치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다룬 역사는 아일랜드 독립투쟁입니다. 시대배경은 1920년. 아일랜드 남부 지역의 게릴라 항쟁이 일어나고 결국 그것이 휴전과 자치권 허용으로 이어지던 때죠. 영화의 주인공 데이미안과 테디 형제는 IRA에 가입해 영국군과 맞서 싸우다가 협정 이후 길이 갈라지게 됩니다. 이상주의자 데이미안이 반쪽짜리 협정에 반대하며 항쟁을 계속하는 동안 현실주의자인 테디는 조약을 받아들이고 그 테두리 안에서 독립을 쟁취하려 하죠.

전통적인 '운명이 갈라놓은 두 형제' 이야기죠? 가족간의 애증이 정치적 갈등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시대극에서 자주 사용되는 장치입니다. 로치도 이 장치를 아주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아무리 그들의 길이 갈린다고 해도 두 사람이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선택은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왜 로치는 아일랜드 항쟁을 선택한 걸까요? 단순히 독립투쟁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는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실패한 사회주의 혁명으로 보고 있어요. 부활절 봉기를 주도했다 처형당한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널리의 이름과 그의 연설이 노골적으로 인용되는 것도 당연하죠. 로치가 아무리 데이미안과 테디의 입장을 공평하게 전달하려 노력한다고 해도 그는 데이미안 편입니다. 그에겐 테디는 단순히 보다 신중하게 조국의 독립을 이루려는 현실주의자가 아니에요. 영국으로부터 떨어져 사회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는 진정한 혁명의 목표를 파괴하는 배반자죠. 그는 테디를 동정하고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랜드 앤 프리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말이 참 많습니다. 로치는 시대물을 다룰 때 유달리 말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는 이 장르를 정치와 역사에 대한 직설적인 토론을 집어넣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이치엔 맞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극도로 정치적인 상황에 말려든 정치적 인간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하잖아요. 단지 후반부에 접어들면 로치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캐릭터들과 그들의 행동이 저울질되고 갈등이 조금 도식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전히 전개되는 드라마는 감동적이지만 그래도 도식적이라는 점은 어쩔 수 없죠.

영화가 진짜로 빛나는 장면들은 오히려 그들이 완벽한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불가능할 때입니다. 전 그 중에서 특히 데이미안이 밀고자 두 명을 처형하는 장면을 뽑고 싶어요. 그는 자기들을 고발한 밀고자들을 처형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고민합니다. 그 중 한 명은 국외자인 영국인 민간인이고 다른 한 명은 억지로 협박당한 동료죠. 의무감과 연민이 머릿속에서전쟁을 일으키는 동안 그는 엄청난 고통에 휩싸이고 그 고통은 킬리안 머피의 근사한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됩니다. 마침내 동료를 처형하러 가는 그가 내뱉는 황량한 대사 "I hope this Ireland we're fighting for is worth it"는 정말 폐부를 찌르죠. 그래서 생각해 보는 거예요. 이런 내적 갈등이 영화 후반까지 이어졌다면 형제의 마지막 대면이 얼마나 근사해졌을까. (06/10/27)

DJUNA

기타등등

켄 로치가 영화의 제목을 빌어온 노래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로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