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안 소프틀리 Iain Softley

주연
헬레나 본햄 카터....케이트 크로이
Helena Bonham Carter....Kate Croy
라이너스 로치....머튼 덴셔
Linus Roache....Merton Densher
앨리슨 엘리엇....밀리 실
Alison Elliott....Millie Theale
샬로트 램플링....모드 이모
Charlotte Rampling....Aunt Maude
마이클 갬본....라이오넬 크로이
Michael Gambon....Lionel Croy
엘리자베스 맥거번....수잔 스트링햄
Elizabeth McGovern....Susan Stringham
알렉스 제닝즈....마크 경
Alex Jennings....Lord Mark

1.

헨리 제임스의 소설 [비둘기의 날개]에서는 제임스 독자들에겐 아주 익숙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돈많고 순진한 미국 젊은이가 유럽으로 여행갔는데, 돈독이 잔뜩 오른 유럽인들이 야수처럼 그 젊은이를 노리고 있는 거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소설에서 돈독 오른 야수는 가난한 사교계 여인인 케이트 크로이와 그녀의 애인인 머튼 덴셔이고, 순진한 미국인 젊은이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미국인 상속녀 밀리 실입니다. 케이트와 머튼의 계획은 간단합니다. 머튼을 돈많고 명짧은 이 백만장자 아가씨의 연인으로 만든 뒤 여자가 죽으면 유산을 차지한다는 것이었죠.

밀리가 주인공인 소설이었다면 결말은 뻔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케이트와 머튼입니다. 그 결과 이야기가 살짝 달라지죠. 이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냉혈한도 아니고 악한도 아니거든요.

차라리 이들이 그냥 악당이었다면 모두가 좋았을 겁니다. 밀리는 행복하게 죽었겠고 케이트와 머튼은 돈을 챙겨서 랄라거리며 남은 평생을 즐겼겠지요. 하지만 이들이 그만큼 매정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설은 서글픈 도덕극으로 방향 전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2.

가끔 우리는 영화에서 각색자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 소설이 영화로 각색될 때,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는 사람은 감독이 아닌 각색자일 때가 많습니다.

이언 소프틀리가 감독한 [비둘기의 날개([도브]라는 제목은 쓰지 않겠습니다. 너무 싫군요.)]도 이런 경우에 속할 듯 합니다. 이 작품은 소프틀리의 다른 작품인 [해커즈]나 [백 비트]보다는 아미니의 전작들에 더 가깝습니다. 특히 아미니가 윈터보텀을 위해 각색한 [쥬드]의 각본을 보면 대충 아미니의 개성을 구별해낼 수 있죠. 줄거리와 캐릭터만 남겨놓고 작품 전체를 대범하고 현대적으로 뜯어고치는 그의 능란한 솜씨 말이에요.

[쥬드]가 하디 순수주의자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비둘기의 날개]도 제임스 순수주의자들을 기겁하게 만들 요소가 다분합니다. 아마 더 노골적으로 원작을 뜯어고친 [여인의 초상]이 비슷한 시기에 나오지 않았다면 이 작품도 꽤 논쟁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 거예요. 영화는 제임스의 소설보다 훨씬 도발적이고 야하며 멜로드라마틱합니다.

[쥬드]와 마찬가지로 아미니의 각색은 대충 납득이 갑니다. 섹스 신을 삽입하면 현대 관객들에게 훨씬 쉽게 두 주인공의 열정을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시대 배경을 십년 정도 늦추어서 주인공의 행보를 더 편하게 만들 수 있다면 역시 나쁠 것 없죠.

하지만 아미니가 한 가장 큰 원작 개조는 케이트, 밀리, 머튼의 삼각 관계의 의미를 살짝 바꾼 것입니다. 영화 속의 케이트는 원작의 케이트보다 훨씬 덜 야무진 사람이며 밀리에 대해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애정은 어느 정도 진짜입니다.

그 결과 영화의 삼각 관계는 더 복잡해지고 풍요로워졌으며 연기하기도 재미있어졌습니다. 특히 두 여자 주인공들이 그렇지요. 밀리는 이제 단순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아니, 결말에 가면 오히려 유일한 승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케이트 역시 덜 악당같으며 고민도 많아졌고 공감도 쉬운 주인공으로 변화했습니다. 밀리 역의 앨리슨 엘리엇에게도 좋은 역이었지만 헬레나 본햄 카터에겐 굴러들어온 보물이나 다름 없었죠. 아미니가 충실하게 원작을 옮기기만 했다면 본햄 카터가 이처럼 빛나는 연기를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겁니다.

3.

그렇다면 감독인 소프틀리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큰 공헌은 세 배우한테 연기할 공간을 제공해주었다는 것이겠지요. 그건 아주 중요합니다. 이 영화를 끌고가는 진짜 엔진은 주연인 세 배우들이니까요.

소프틀리의 MTV 성향이 머천트-아이보리 시대극과 만난 결과는 비교적 생산적입니다. 소프틀리는 자신의 MTV 경향을 조심스럽게 누르고 있지만, 영화에 불안한 젊은이들의 열정을 담아 올릴 때는 그의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비주얼은 아름답습니다. 특히 영화가 보여주는 베네치아의 정경은 새롭고도 아름답습니다. 샌디 파웰의 아름다운 의상을 잊어서는 안되겠고요. (00/06/02)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는 지난 2년 동안 [비둘기의 날개]라는 멀쩡한 제목을 달고 시사회를 가졌었습니다. 왜 막판에 [도브]라고 제목을 바꾸어 달았는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