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럭키 맥키 Lucky McKee

주연
아그네스 브루크너....헤더
Agnes Bruckner....Heather
패트리샤 클락슨....트라버스 선생
Patricia Clarkson....Ms. Traverse
엠마 캠벨....앨리스 파술로
Emma Campbell....Alice Fasulo
브루스 캠벨....조 파술로
Bruce Campbell....Joe Fasulo
로렌 버켈....마시 터너
Lauren Birkell....Marcy Turner
레이첼 니콜스....사만다
Rachel Nichols....Samantha
캐서린 콜비....릴랜드 선생
Catherine Colvey....Ms. Leland
마샤 베넷....맥키나우 선생
Marcia Bennett....Ms. Mackinaw
캐슬린 맥키....앤 웨일스
Kathleen Mackey....Ann Whales
안젤라 베티스....숲 (목소리)
Angela Bettis....The Woods (voice)

헤더

2002년작 [메이]로 장르 팬들의 스타로 떠오른 럭키 맥키가 차기작으로 택한 작품은 [더 우즈]. 하지만 패트리샤 클락슨과 브루스 캠벨과 같은 일급 스타들과 훨씬 넉넉한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운명은 그렇게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제작사인 MGM이 소니에게로 넘어가는 동안 개봉작 리스트에서 빠졌고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선반 위에 얹혀 있었지요. 작년까지만 해도 맥키는 이 영화의 개봉에 낙관적이었다던데, 결국 몇몇 영화제를 돌다가 그냥 DVD로 나와버렸네요.

오늘 이 DVD를 봤습니다. 보다보니 왜 이 영화가 정식 개봉을 못 했는지 짐작이 가더군요. 팔기 어려운 영화였어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화여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죠. [더 우즈]는 야심없고 조용하고 느린 영화입니다. 폭력 묘사는 별로 없고 피도 거의 흐르지 않죠. 이 영화가 모델로 삼았을 게 분명한 [서스피리아]처럼 자극적인 영화는 절대로 아니에요. 은근히 불쾌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흐르긴 하지만 이 영화를 무섭게 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군요. 그렇다고 [식 걸]처럼 장르 매력과 무관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맛이 있느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영화의 시대배경은 1965년. 각본가 데이빗 로스가 이 해를 선택한 이유를 지나치게 꼼꼼하게 분석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야기에 어울리는 예스러운 분위기와 세대 갈등을 위해 그럴싸한 연도를 선택했던 것이겠죠. 하여간 우리의 주인공 헤더는 팰번 아카데미라는, 숲 속 한가운데 있는 여자 기숙학교에 들어옵니다. 불친절한 동급생들과 뭔가 숨기는 게 분명한 선생들 사이에서 힘겹게 학교 생활을 하던 헤더는 이 학교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더 불길한 건 헤더 자신에게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요. 그보다 더 불길한 건? 학교를 둘러싼 숲에 뭔가가 있고 이들이 학교를 조종하고 있다는 거겠죠.

노골적으로 [서스피리아]를 차용한 설정이지만, 은근히 M. 나이트 샤말란의 [빌리지]와 닮기도 했죠. "밤에는 절대로 숲에 들어가지 말아라!"라는 경고나, 잠옷 입은 소녀들이 숲 언저리에서 담력 내기를 하는 장면 같은 걸 보면서 [빌리지]를 무시하는 건 불가능하죠. 실제로 [빌리지]의 제작 당시 제목은 [The Woods]였고요. 우연일까요? 우연이겠죠. 원래 비슷한 계획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법이라더군요. [더 우즈]가 제대로 개봉하지 못한 건 [빌리지]의 실패와 두 영화의 유사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 우즈]는 [빌리지]처럼 위태로운 반전을 내세운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는 복잡한 플롯으로 관객들을 혼선에 빠트리는 대신 사전에 깔아놓은 포석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쪽을 택합니다. 그 설정이라는 것이 굉장히 모범적이라 확실히 심심한 구석이 있긴 해요. 숲에는 정령들이 살고 마녀들이 학교들을 지배하고 있죠. 실종된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마녀들의 동기가 무엇인지 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그건 다 지엽적입니다.

이 영화의 드라마가 충분히 다듬어졌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각본은 헤더의 유일한 단짝 친구 마시를 후반부에서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고 있어요. 둘의 관계 묘사도 거친 편이고요. 그에 비하면 브루스 캠벨의 스타성을 등에 업은 헤더의 아빠 조는 지나치게 많이 나오고 있지요. 헤더의 네메시스인 사만다의 캐릭터와 동기가 조금 더 자세히 설명되었다면 후반부의 액션이 더 설득력 있었을 거예요. 조를 끌어들이고 국면 전환을 만들기 위해 헤더가 잠시 학교를 떠나는 것도 그렇게 맘에 들지는 않는군요. 비교적 잘 구축되었던 폐소공포증이 날아가 버리거든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우즈]는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는 자극적인 호러 영화보다 고풍스러운 시골 대저택을 무대로 느긋하게 진행되는 고딕 미스터리에 더 가까워요. 살짝 복고적인 교복을 입은 십대 소녀들과 냉정한 중년 선생들로 채워진 팰번 아카데미의 건물은 무척 매력적이고요. 숲이라는 괴물은 자극적으로 무섭지 않을지 몰라도 영화가 구축해 놓은 세계에 아주 잘 어울리죠.

그리고 전 배우들이 좋았어요. 아그네스 브루크너에겐 안젤라 베티스의 위태로운 개성은 없지만 공감하고 따라가기는 훨씬 좋은 배우에요. 어린 시절 클리어 듀발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외모도 좋았고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도끼를 휘둘러대는 막판의 당당함도 맘에 들더군요. 파리하고 연약한 노처녀처럼 보이지만 속에 섬뜩한 비현실성을 품고 있는 패트리샤 클락슨도 매력적이었고요. 단지 브루스 캠벨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어요. 캐릭터 자체가 순전히 호러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삽입된 미끼더라고요. 쓸모없는 남자들을 몽땅 지워버리고 학교내에서만 드라마를 진행시켰다면 훨씬 잘 먹히는 [여고괴담] 영화가 나왔을 텐데요. (06/10/19)

DJUNA

기타등등

네, 안젤라 베티스가 나오긴 해요. 목소리만요. 헤더의 귀에만 속삭이는 숲의 목소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