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사디 베닝
Sadie Benning

상영 작품
Jollies,
If Every Girl Had a Diary,
Me and Rubyfruit,
Living Inside,
A New Year,
Girl Power (Part 1),
It Wasn't Love,
A Place Called Lovely

1.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말했다죠. "만약 소외된 뚱보 소녀가 캠코더로 걸작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때서야 영화는 성숙한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던 걸까요? 아마도 영화가 더 개인적인 장르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었거나 영화가 자본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더 큰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었겠지요.

2.

코폴라가 무슨 생각이었건,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 중 사디 베닝의 단편들만큼 그 불쌍한 뚱보 소녀의 작품에 가까운 작품은 없을 겁니다. 베닝의 작품이 코폴라가 생각한 '걸작'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고독한 틴에이저의 영상일기에는 웬만한 '걸작'들도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힘이 있습니다.

3.

베닝은 15살이 되던 해인 1989년부터 91년까지 픽셀비전과 캠코더로 이 작품들을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새로 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장난감은 보는 사람의 눈이 시릴만큼 솔직한 자기 고백들을 담아내기 시작하고 이런 오락은 베닝의 예술가로서의 자기 인식이 발전하면서 점점 복잡해집니다.

4.

이 끔찍할 정도로 사적인 느낌이 베닝의 단편들을 끌어가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관객들은 말 그대로 베닝의 세계 안에 감금됩니다. 공간적으로는 베닝 주변의 밀실공포증적인 세계에 갇히고, 정신적으로는 막 성적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이 틴에이저 소녀의 머리 속에 갇히는 거죠. 한시간 조금 넘는 상영시간 동안, 관객들은 베닝의 짜증과 불안, 갑갑함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서서히 공범자가 되어 갑니다.

5.

만약 이 작품들이 그냥 사적인 일기였다면, 이 정도의 재미는 주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더 나갑니다. 베닝이 픽셀비전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터득할수록 그 작품들은 점점 세련되어가고 시도도 다양해집니다. 처음에는 자기 고백을 털어놓는 클로즈업된 얼굴만 있었지만 점점 다양한 편집술과 의식적인 연출이 삽입되지요.

심지어 '문학 작품의 각색'도 있습니다. [나와 루비프룻]에서 베닝은 리타 메이 브라운의 [루비 프룻 정글]에서 몰리와 레오타가 키스하는 장면을 뽑아내 근사하게 연출해냅니다. 배우 한 명과 장난감 카메라 한 대로 그걸 해낸 거죠. 베닝 자신은 몰리의 대사를 하고 레오타의 대사와 지문을 종이에 갈겨쓴 '자막'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이 문제점은 해결되었습니다. 이 종이 조각들은 생각보다 훨씬 무시무시해요. 꿈틀거리는 글자들이 외쳐대는 듯한 느낌입니다.

종이에 쓴 글자들은 베닝의 연출 수법 중 하나로 굳어지는데, 이는 극단적으로 제한된 '제작환경'을 극복하려고 베닝이 끌어들인 여러 도구 중 하나입니다. 제한이 많을수록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뽑아내는 예술가들이 있는데, 베닝도 그 중 한 명인 거죠.

6.

하지만 베닝의 제작환경이 꼭 '제한'만은 아닙니다. 특히 픽셀비전의 사용이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 장난감 카메라에 대해 이미 [나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언급한 적 있습니다. 당시 저희는 알메이다가 이 픽셀비전을 남용한다고 투덜거렸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그러나 베닝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알메이다가 왜 픽셀 비전에 그렇게 매료되었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픽셀과 화면을 거의 레이요그래프 수준으로 만드는 극단적 콘트라스트 때문에 베닝의 영화는 심령사진처럼 기괴하고 강렬한 어떤 것이 됩니다. 픽셀비전의 힘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려면 이후 캠코더 시대와 비교해 보면 됩니다. 심지어 베닝의 예술적 야심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픽셀비전 말기가 바로 이 작품집의 피크니까요. 캠코더 시대에는 어딘가 자포자기한 듯한 실망이 느껴져요. 베닝 자신이 아마 이 업데이트된 무기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7.

이 젊은 친구의 그 뒤 이야기가 자꾸 궁금해지는군요.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뒤로 거의 10년이나 지났잖아요. 누구 아시는 분? (98/11/12)

D&P

기타등등

마지막 질문에 자답하게 되네요. 베닝은 그 뒤에도 꾸준히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고 최근작들은 2회 퀴어 영화제에서도 상영됩니다. 최근엔 Le Tigre 라는 록 그룹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참, 위의 상영 작품 목록은 확실한 게 아닙니다. [나와 루비프룻]이나 [새해]가 포함된 것은 분명한데 나머지는 확신 못하겠어요. 1회 퀴어 영화제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은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