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카펜터 John Carpenter

주연
로디 파이퍼....나다
Roddy Piper....Nada
키스 데이비드....프랭크
Keith David....Frank
멕 포스터....홀리
Meg Foster....Holly
조지 '벅' 플라워....떠돌이
George 'Buck' Flower....Drifter
피터 제이슨....길버트
Peter Jason....Gilbert
레이몽 생 자크....길거리 전도사
Raymond St. Jacques....Street Preacher

1.

해고당한 탄광 노동자 나다는 일자리를 구하러 대도시에 흘러들었다가 교회에서 해적 방송을 풀어대고 이상한 선글래스를 만드는 무리들을 만납니다. 엉겁결에 그들이 만든 선글래스를 쓴 나다는 지금까지 자기가 그가 보아왔던 것이 세상의 진짜 모습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돈많은 부자들은 모두 해골같은 모습의 외계인들이고, 광고판과 잡지들은 인간들을 세뇌시키는 메시지로 그득한 게 아닌가요? 당연히 나다는 외계인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에 가입하고...

2.

잘 차려입은 여피들은 모두 외계인들입니다. 돈들은 '나는 너희들의 신이다'라고 속삭이며, 광고판들은 '복종하고 생각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텔레비전 연속극들은 지구인들을 세뇌시키고 무력하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심지어 환경공해도 지구 환경을 자기네들 몸에 맞게 변형시키려는 외계인들의 음모입니다!

[화성인 지구정복]을 특징짓는 것은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보는 사람들의 얼을 빼게 만드는 막시스트식 세계관입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1980년대 당시의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카펜터의 비판인 모양이죠. 하여간 대학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나누어주던 의식화 교제들에 실렸을 법한 세계관이 헐리웃 액션 영화 속에 자상하게 재현되어 있는 걸 보면, 친근감마저 느낄 지경입니다.

결코 세련된 비판은 아닙니다. 남들이 하는 말들을 용감하게 되풀이 했을 뿐인 비판 자체도 그렇게 독자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요. 하지만 영화의 우직스러운 태도에는 꽤 강한 힘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정서적인 힘이지요. [화성인 지구정복]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카펜터 특유의 그 싸구려 액션 영화 냄새가 훼방놓지 않았더라면, 비판이 조금 더 세련되었었더라면, 영화는 정말로 꽤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3.

액션 영화로서 [화성인 지구정복]은 그저 그렇습니다. 초반부는 너무 느리게 흘러가고 기억에 남는 액션도 없습니다. 이 영화의 팬들은 나다와 프랭크의 기나긴 주먹싸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프로 레슬링 팬이 아닌 저같은 관객들한테는 너무 깁니다(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주인공 나다를 연기한 로디 파이퍼는 정말 프로레슬러 출신입니다.)

SF로서는 더욱 원시적입니다. 50년대식 외계인 지구침략 영화에서 스토리와 편집광적 주인공을 그대로 따온 것에 불과하니까요. 단지 레드 컴플렉스의 소산이었던 공식이 마르크시즘과 결합하자 꽤 재미있는 기형적 결과가 나오긴 했어요.

4.

[화성인 지구정복]은 영화의 메시지에 뿅갔던 10여년 전의 대학 서클 학생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기엔 너무 생각이 없으니까요.

반대로 많은 카펜터 팬들은 이 영화를 카펜터의 실패작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과연 이 작품이 [뉴욕 탈출]과 같은 작품에 비해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전 [뉴욕 탈출]보다 [화성인 지구정복] 쪽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IMF 이후 시대의 우리 관객들에겐 [화성인 지구정복]이 예전보다 훨씬 더 어필하는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해적 방송에 나오는 아저씨가 하는 음울한 소리들은 요즘 텔레비전에서도 꽤 자주 들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죠. (99/12/26)

DJUNA

기타등등

[화성인 지구정복]이라는 출시제는 결코 좋은 것도 아니고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외계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밝히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대기에 일산화탄소와 메탄 성분이 많고 더운 곳이라면 결코 화성은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