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홍현기

주연
이두일....구창식
류현경....곽선주
김익태....조을상
강인형....심수교
안내상....소부장
손병호....피사장

창식과 선주

[물 좀 주소]의 이야기는 블랙 코미디로만 그릴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신세가 다들 세트로 맞춘 것처럼 처량한데, 그 처량한 신세가 하나의 테마로 규격화되어 있단 말이죠.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남자주인공 구창식은 풋내기 채권추심원입니다. 실적은 바닥이고 추심원이면서도 빚에 쫓기고 있죠. 그가 영화 내내 부도 난 중소기업 사장 조을상과 딸을 혼자 키우는 비혼모 곽선주를 쫓아다니는 동안, 스피드머니 컨설팅의 풋내기 직원 심수교가 빚을 받으러 그를 쫓아다닙니다. 이 영화 속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빚을 지거나 빚을 받으러 다니고 있고 오로지 빚을 통해서만 존재합니다. 거의 디스토피아 SF 같죠.

그래도 영화는 이 세계에서 빚을 테마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합니다. 연애도 하고 사회비판도 하고 액션도 조금 하고 코미디는 많이 하지요. 전 이중에서 연애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가능성이 좋았어요.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약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 채무자들의 로맨스는 충분한 독기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네, [물 좀 주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 물렁물렁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네들이 만든 인물들에 대한 동정심이 너무 크다보니 그들에게 아주 잔인한 짓도 못하게 하고 아주 끔찍한 일도 당하지 못하게 하지요. 독기가 가장 중요한 장르를 다루면서 늘 목표 지점 몇백 미터를 남겨두고 멈추어 서는 겁니다. 조금 갑갑해요.

영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코미디 역시 충분히 살아있는 편은 아닙니다. 아무리 침침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코미디는 어느 정도 에너지를 품고 있어야 하죠. 그게 부족해요. 설정이나 대사들도 무난하기만 한 편이고 종종 코미디를 억지로 쥐어 짜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전문 작가가 한 명 정도 투입되었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배우들은 좋은 편이지만 그들의 최고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기엔 대사가 약하고 연기지도가 심심해요. 그래도 각자의 기본기가 있고 캐릭터 자체에 내장된 절실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것까지 날아갈 수는 없지요. (09/05/27)

DJUNA

기타등등

이창동 감독이 시사회에 왔더군요. 감독 홍현기가 조감독 출신입니다. 봉하 마을에서 막 올라왔다고 하던데 아마 영화 끝나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겠죠. 슬픈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