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렉스 콕스 Alex Cox

주연
미구엘 산도발....베니
Miguel Sandoval....Bennie
알렉스 콕스....프랭크
Alex Cox....Frank
로버트 위즈덤....르로이
Robert Wisdom....Leroy
앤드루 쇼필드....호텔 직원
Andrew Schofield....Desk Clerk
이사벨 암푸디아....조세피나
Isabel Ampudia....Josefina

1.

사업상 리버풀을 방문한 미국인 미술상인 베니와 영국인 미술상인 프랭크는 아델피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기다리지만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음식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직접 저녁을 찾아 먹기로 마음먹은 두 비즈니스맨은 리버풀 곳곳을 누비지만 프랭크가 채식주의자인 탓에 알맞는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군요. 그러다가 두 사람 모두에게 맞는 그럴싸한 식당을 찾으면 베니가 발작을 일으키거나 식당문을 닫히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고요. 그러는 동안 그들은 점점 호텔에서, 아니 리버풀에서 멀어져 갑니다. 식당을 찾아 로테르담, 홍콩, 도쿄까지 흘러들어가던 그들은 마침내 뉴 멕시코의 황량한 사막에 도착하는데...

2.

현대 대도시는 어딜가나 다들 비슷합니다. 비슷비슷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비슷비슷한 아스팔트 거리들을 사이에 두고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편하죠. 토론토에 가서 싼 값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거기가 뉴욕이나 시카고라고 우길 수 있으니까요. [엑스 파일] 팀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캐나다 구석에 박혀 있으면서도 미국 곳곳을 여행한 척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지요.

그래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종종 엉뚱한 환상에 사로 잡힐 때가 있습니다. 런던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뉴욕이나 파리의 거리로 빠져나올지 모른다고요. 하루면 세상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세상이니 그런 착각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겠죠.

알렉스 콕스는 아마 [쓰리 비즈니스맨]을 만들면서 그런 착각을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삼았을지 모릅니다. 사실 관객들도 그 변화를 눈치채기는 힘들 거든요. 리버풀에서 로테르담으로 가는 과정은 거의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로테르담에서 홍콩으로 바뀌는 과정은 한문 간판 때문에 간신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지만 이게 도쿄로 바뀌는 과정 역시 구분하기 힘들고요.

콕스가 만든 미로는 공간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두 비즈니스맨들은 리버풀에서 길을 잃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말이라는 고약할 정도로 복잡한 세계의 혼란 속에서도 길을 잃고 있습니다. 사실 비즈니스맨들이라는 사람들이야말로 이런 고약스러움의 첨단에 서있는 사람들이겠죠. 휴대폰이나 팩시밀리, 랩탑 컴퓨터와 같은 첨단에 매달리며 그 첨단의 혼란 속을 질주하지만 정작 그 혼란 자체를 이해하는 건 힘든 사람들 말이에요. 그들은 어떻게 보아도 길잃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필사적으로 음식을 찾아 헤매는 그들의 여정은 일종의 구도처럼 보입니다. 이들이 펼치는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은 우습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브뉘엘의 [부르조아의 은밀한 매력]에서 느낄 수 있는 잔인한 야유는 없어요. 오히려 콕스는 말미에서 그들에게 성찬과 함께 목적지까지 제시해줍니다.

3.

이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이지만 제목은 [쓰리 비즈니스맨]입니다. 이 제목은 '쓰리 킹즈'를 살짝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콕스는 후반부에 한 명의 비즈니스맨을 더 집어넣고 이들을 동방박사로 만들어버리거든요. 정말 이들은 갓 태어난 여자아이에게 선물을 바치기까지 합니다.

이런 결말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쓰리 비즈니스맨]이 일종의 구도 영화라면 종교적 해결책이 상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아주 성공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냥 [고도를 기다리며]에 브뉘엘을 뒤섞은 초현실적인 혼란 속에 그들을 그냥 두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그러나 [쓰리 비즈니스맨]은 여전히 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콕스의 전작인 [죽음과 나침반]에서도 같이 출연한 적 있는 산도발과 콕스의 콤비로 훌륭하고 그들이 지껄이는 대사는 유쾌한 넌센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주 성공작은 아닐지 몰라도 흥미롭군요. (00/07/15)

DJUNA

기타등등

벌써 부천 영화제의 사흘 째를 맞았지만 도대체 영화제 느낌이 나지 않는군요. 지금까지 본 영화들이 모두 구석의 소사구청 소향관에서 상영된 작품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내일은 다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