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찬욱 Chan-wook Park
미이케 다카시 Takashi Miike
프루트 챈 Fruit Chan

주연
이병헌....영화감독
Byung-hun Lee....Director
임원희....테러리스트
Won-hee Lim....Terrorist
강혜정....피아니스트
Hye-jeong Kang....Pianist
염정아....여배우
Jung-ah Yum....Actress
하세가와 교코....교코
Kyoko Hasegawa....Kyoko
와타베 아츠로....의붓아버지/편집장
Atsuro Watabe....Stepfather/Editor
양천화....칭
Miriam Yeung Chin Wah....Ching
바이 링....메이
Ling Bai....Mei
양가휘....리
Tony Leung Ka Fai....Lee

'Cut'

'Cut'

박찬욱의 [Cut]은 잘나가는 영화감독과 그의 피아니스트 아내가 정신나간 엑스트라에게 납치되면서 시작됩니다. 엑스트라는 아내를 피아노 앞에 묶어두고 감독에게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5분마다 아내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그건 감독이 너무 착해서랍니다. 돈많고 잘생기고 재능있고 예쁜 아내까지 있는 복많은 사람이면서 착하기까지 해? 이런 불공평한 일이 있나. 결국 이 말도 안되는 논리 속에서 감독은 억지로라도 자신의 악마성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Cut]은 불쾌하고 사악한 코미디입니다. 네, 이 영화는 우선적으로 코미디예요. 무시무시한 협박범/납치범인 엑스트라는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임원희입니다. 캐스팅부터 결코 진지하기만 할 수는 없죠. 납치범의 요구와 영화감독의 응수는 신체절단과 살인이라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쿡쿡 웃음이 나올 정도로 웃깁니다. 물론 그 웃음은 굉장히 기분 나쁩니다.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는 육체적 폭력과 그를 배경으로 한 캐릭터들의 붕괴는 어떻게 봐도 결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우린 이 에피소드를 얄팍하고 추잡한 코미디로 봐야 합니다. 보고 있으면 화가 나요. 꼭두각시 캐릭터들을 지옥에 빠뜨리고 키득거리는 야비한 신의 뒷모습이 보인달까요.

전체적으로 [Cut]은 굉장히 강렬한 서스펜스물입니다. 결말이 다소 사족처럼 보이긴 하지만 코미디와 비극, 호러와 스릴러가 짜증날 정도로 높은 밀도로 압축되어 있지요. 엉덩이로 이름 쓰는 유치한 코미디와 호러 영화 사상 가장 끔찍하다고 할 수 있는 흡혈 장면이 이웃하고 있고요. 이병헌, 임원희, 강혜정의 연기도 영화의 내용에 맞게 격렬하기 그지없습니다(그 중 제게 가장 소름끼쳤던 배우는 영화 대부분 피아노 앞에 묶여있기만 했던 강혜정이었답니다). 여러분은 이 에피소드를 싫어할 수 있지만 적어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무관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때문에 비교적 느릿느릿하고 나른하게 전개되는 뒤의 영화들에 비해 지나치게 튀어 보이지만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전 정말 신체절단 묘사가 안 나오는 박찬욱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Box'

'Box'

미이케 다카시의 [Box]는 의붓 아버지를 동시에 사랑하던 쌍둥이 자매의 일그러진 질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교코는 어렸을 때 의붓 아버지와 쌍둥이 누이 쇼코와 함께 유랑 서커스의 멤버였습니다. 의붓 아버지가 쇼코를 편애하자 교코는 쇼코를 위험에 빠트리고 그 때문에 쇼코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지요. 17년 뒤, 소설가로 성장한 교코에게 이상한 초대장이 날아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Cut]과는 달리 [Box]는 조용하고 우아한 영화입니다.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식의 청결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지요. 미이케 다카시의 기존 영화들을 염두에 두고 그를 섭외한 제작자들이 이 몽환적인 영화를 접하고 굉장히 당황했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비교적 명확한 내러티브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두 작품과는 달리 [Box]는 불가해하고 모호합니다. 이야기 자체야 어렵지 않지만 현실과 꿈이 뒤섞인 이야기를 이치에 맞게 정리하려고 하면 막혀버리고 말죠. 하긴 그럴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Box]는 [Cut]과 다른 의미로 불쾌한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의붓아버지와 쌍둥이 자매의 관계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더군요. 근친상간적이고 페도파일적인 분위기보다는 이들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남녀관계가 더 기분 나빴어요.

'Dumplings'

'Dumplings'

프루트 챈의 'Dumplings'는 가장 중국적인 호러 소재들 중 하나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인육 만두 말이에요. 이 영화에서는 메이라는 요리사가 태아 고기를 썰어 만두를 만들지요. 텔레비전 배우인 주인공 칭은 메이의 만두가 회춘의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메이의 집을 방문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그 고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난 뒤에도 회춘에 대한 갈망은 멈출 수가 없지요.

[패왕별희]의 원작자인 릴리언 리가 각본을 쓴 'Dumplings'는 [쓰리, 몬스터]의 세 편들 중 가장 장르 호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태아 고기라는 혐오스러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걸 공포와 연결시킬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단지 이 소재를 통해 나이가 들면서 남편의 사랑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젊음에 대한 집착을 보여줄 뿐이지요. 장르팬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덕택에 이 영화의 드라마와 캐릭터들은 은근히 재미있어집니다. 특히 나이 든 여자들에게 젊음을 되찾아 주고 임신한 틴에이저 아이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불법 여신과도 같은 존재인 메이는 흥미롭습니다. 메이가 음식 재료로 삼는 태아에게 보이는 이상한 애정은 역겨운만큼 매혹적이기도 해요. 보통 호러 영화라면 괴물들의 아지트여야 할 메이의 낡은 아파트는 딸을 강간하는 아버지와 젊은 여자들과 놀아나는 남편들이 부글거리는 남자들의 세계로부터 여자들을 보호해주는 일종의 은신처이기도 합니다. 이 모순적인 감정들을 이어가며 영화가 창출해내는 '독특한 맛'은 예상외로 강하군요.

(이런 말은 해선 안되지만, 메이가 만드는 태아 만두들은 정말 맛있어 보였답니다... :-/) (04/08/04)

DJUNA

기타등등

저번 [쓰리]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가장 무국적인 영화는 한국 영화더군요. 그게 꼭 좋거나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