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J. 리 톰슨 J. Lee Thompson

주연
헤일리 밀즈....길리
Hayley Mills....Gillie
호르스트 부흐홀츠....코친스키
Horst Buchholz....Korchinsky
존 밀즈....그레이엄 총경
John Mills....Superintendent Graham
이본느 미첼....아냐
Yvonne Mitchell....Anya
안소니 도슨....바클리
Anthony Dawson....Barclay
멕스 젠킨즈....필립스 부인
Megs Jenkins....Mrs. Phillips

1.

폴란드인 선원 코친스키는 영국에 사는 여자 친구 아냐와 말다툼을 벌이다 그만 그녀를 총으로 쏴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모든 과정을 옆집에 사는 소녀 길리가 다 보고 있었지요. 길리는 살인 흉기인 권총을 훔치고, 코친스키는 유일한 목격자인 길리를 쫓습니다. 한편 길리의 증언이 거짓말이라는 걸 눈치챈 그레이엄 총경은 아이한테서 어떻게든 진실을 짜내려고 하고...

2.

가끔 [순풍 산부인과]에서 미달이가 '충성'에 매달리는 걸 보고 배꼽 잡을 때가 많아요. 어렸을 때는 또래 아이들의 그런 순진한 논리를 지독하게 혐오했었지만, 그 순진함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몸소 체험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은 그런 모습이 꽤 귀엽게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단순무식한 윤리법칙을 나이들어서까지 끌고다니는 미숙한 어른들까지도 귀엽지는 않습니다만(슬프게도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타이거 베이]의 스토리를 끌어가는 동기 중 하나도 그런 어린아이다운 '충성'입니다. 거리의 윤리에 익숙한 12살 소녀와 역시 그보다 정신적으로 나이를 더 먹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남자 어른 사이의 정서적 계약관계지요.

이들을 엮어내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미달이와 이모들처럼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니까요. 아이는 그를 감옥으로 보낼지도 모르는 유일한 목격자고 남자는 쫓기는 살인자입니다. 모두 서로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죠.

이들의 충성 관계는 이 피터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타협으로 시작합니다. 코친스키가 길리를 죽이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유달리 착한 남자여서가 아니라 그런 원시적 계약 관계가 그의 욕구를 효율적으로 막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종류의 '충성'이란 우리의 조상들이 신피질을 얻기도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원초적인 것이거든요.

시작이 어떻건 간에, 이들의 과정은 '우정'으로 발전합니다. 영화의 재미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지요. 우정이라는 감정이 원래 계약 이유를 망각하고 이들의 행동을 뒤틀어버리는 겁니다. 특히 후반을 보세요. 길리와 코친스키 모두 코친스키의 안전을 원하지만, 그들이 '우정'에 갇혀서 하는 모든 행동들은 코친스키의 몰락만을 가져 옵니다. 아마 사건이 종결된 뒤, 그들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생각했을 거예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계입니다. 어쩔 수 없는 한계지요. 우리가 이런 감정들을 예찬하는 것도 인간이 덜떨어진 동물이라는 잔인한 진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책이 아닐까요.

3.

노엘 칼레프의 원작 소설에서 총을 훔친 꼬마는 원래 남자아이였답니다. 영화 초기 기획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대충 영화를 봐도 길리한테는 남자아이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시작부터가 그렇지요, 총에 대한 갈망 자체가 남자아이답잖아요?

주인공이 갑자기 성전환하게 된 건 순전히 그레이엄 총경 역을 연기한 존 밀즈네 집에 놀러갔던 J. 리 톰슨이 밀즈의 딸 헤일리가 노는 걸 보고나서부터였습니다. 헤일리가 그 역에 딱 맞다고 생각한 톰슨은 주인공을 당장 여자아이로 고치고 헤일리를 주인공 역에 캐스팅했다는군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남자아이 역을 여자아이한테 주는 건 쉬운 일입니다. 그 반대가 힘들지요.

게다가 그 간단한 터치로 영화가 훨씬 더 복잡미묘해지기도 했습니다. 원래 스토리에선 소년은 그냥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평범한 소년이 우발적인 범죄자와 얽히는 과정 역시 비교적 단순했고요. 하지만 주인공이 성전환되자 일상 탈출의 욕구나 어린아이다운 우정과 같은 원래의 동기를 그대로 담으면서도 12살이라는 위태로운 나이를 사는 소녀와 범죄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정서적 교류를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길리의 모험에는 위태로운 로맨스의 흔적이 담겨있고 그 때문에 사건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4.

헤일리 밀즈를 빼면 [타이거 베이]를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타이거 베이]를 빼면 헤일리 밀즈의 경력을 이야기할 수 없죠. 많은 아역배우들이 그렇듯, 밀즈에게도 이 처녀작이 가장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밀즈가 보여주는 연기는 연기 경력이 전무한 꼬마의 연기라고 볼 수 없을 만큼 훌륭합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노련한 어른 배우들은 밀즈에 비하면 맥이 빠질 지경입니다. 심지어 아버지 존 밀즈도 딸과 함께 있으면 빛을 잃습니다.

밀즈에게 이 영화는 빛나는 경력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디즈니 사가 밀즈를 발탁해서 [폴리애나]와 같은 히트작들을 만들어낸 것도 이 영화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밀즈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디즈니 가족 영화가 아니라 영국에서 찍은 보다 진지한 드라마들입니다. 디즈니가 없었다면 오히려 더 좋은 성인 배우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봐요. (00/01/30)

DJUNA

기타등등

아냐가 코친스키의 바다에 대한 갈망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 강한 기시감을 겪었습니다. [파니]에서도 부흐홀츠의 캐릭터는 똑같은 질병을 앓고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