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Kiyoshi Kurosawa

주연
가가와 데루유키....사사키 류헤이
Teruyuki Kagawa....Ryûhei Sasaki
코이즈미 쿄코....사사키 메구미
Kyôko Koizumi....Megumi Sasaki
이노와키 카이....사사키 켄지
Inowaki Kai....Kenji Sasaki
고야나기 유....사사키 다카시
Yû Koyanagi....Takashi Sasaki
야쿠쇼 코지....강도
Kôji Yakusho....Dorobô
이가와 하루카....가네코
Haruka Igawa....Kaneko-san

켄지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중산층 사회의 붕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중국에서 훨씬 싼 값으로 아웃소싱이 가능해지자 그 동안 그 일을 해왔던 양복쟁이 샐러리맨들이 갑자기 고비용 저효율의 애물단지가 된 것이죠. 그들은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에서 밀려납니다. 그런데 그 나이에 그들이 세상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이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대충 모양을 지탱해 왔던 중산층 가족의 붕괴로 연결되지요. 회사에서 돈을 받아오며 가부장 행세를 해왔던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그 권위가 사라진다면 가족은 어떻게 될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럴싸한 회사의 서무과장이었던 사사키 류헤이는 그런 상상은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상태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의 밖에 있지요. 그는 가족에게 해고당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아침마다 길거리로 출근합니다. 새 직장이 필요하지만 자신의 체면에 맞지 않은 직업은 거절하고 사라진 체면의 복권을 노립니다. 그는 길가를 방황하다가 비슷한 처지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는데, 그 친구는 이미 몇 개월 째 실직상태에 적응해서 달인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그는 단순히 가족만을 속이는 게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연기를 합니다. 한 시간에 다섯 번씩 휴대 전화가 울리게 프로그램을 해놓고 전화를 받는 척 하는 거죠.

류헤이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그의 가족은 이미 그의 권위 따위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의 가부장적 권위는 샐러리맨의 체면, 서무과장의 능력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입니다. 아내 메구미는 감옥과 같은 가정주부의 생활에 질식 직전이고, 초등학생인 막내아들 켄지는 아버지나 선생 같은 인간들을 경멸하는 단계를 넘어 무시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나름 반항아처럼 보이는 큰 아들 다카시는 아버지의 울타리를 넘어 스스로의 길을 찾다가 엉뚱하게도 미군에 입대합니다. 네, 여러분은 이 영화를 SF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일본인이 미군에 입대할 수 있는 근미래를 다룬 영화죠. 영화가 보여주는 묵시록적 관점이 이렇게 강한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물론 여러분은 여전히 이 영화를 호러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귀신들이 나오지 않을 뿐이지, 이 영화의 세계는 구로사와 기요시가 꾸준히 그렸던 일본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세계를 구성하는 공포 역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시치미 뚝 떼고 현실 세계를 그리는 척하면서 [도쿄 소나타]는 슬슬 극단으로 갑니다. 초반부에도 조금씩 그런 징후가 보였지만 야쿠쇼 코지의 캐릭터가 등장하면서부터는 거의 베케트 풍의 부조리한 코미디가 되지요. 가족이 타고 있는 일본이라는 배에 구멍을 내 몽땅 침몰 시키려고 작정한 것 같습니다. 권위에 목숨 거는 샐러리맨 가부장, 현실세계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이 막연한 도피만을 꿈꾸는 가정주부, 정치와 역사에 무관심한 젊은 애, 모두 사요나라입니다. 꼬르륵.

그러나 영화는 이들을 진짜로 가라앉히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더 매정한 것일 수도 있지만요. 결국 그들은 제대로 가라앉지도 못한 채 현실 세계로 돌아오고 하향평준화된 세계에 적응합니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부장의 권위는 날아갔지만 그를 대체할 새로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부모 몰래 급식비로 피아노 레슨을 받던 천재 소년 켄지를 그 희망으로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적어도 붕괴직전까지 갔던 가족을 하나로 묶고 영화에 희망을 담아내는 것도 켄지의 음악이지요. 하지만 그 희망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들을 ‘평균적 일본인’으로 만들었던 수많은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09/04/07)

DJUNA

기타등등

켄지의 피아노 선생님은 엄마랑 너무 닮았어요.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는 애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