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안소니 밍겔라 Anthony Minghella

주연
줄리엣 스티븐슨....니나
Juliet Stevenson....Nina
알란 릭맨....제이미
Alan Rickman....Jamie
마이클 멀로니....마이크
Michael Maloney....Mark
스텔라 마리스....마우라
Stella Maris....Maura
빌 페터슨....샌디
Bill Paterson....Sandy
크리스토퍼 로진츠키....타이터스
Christopher Rozycki....Titus
이언 혹스....해리
Ian Hawkes....Harry
데보라 핀드레이....클레어
Deborah Findlay....Claire
데이빗 라이얼....조지
David Ryall....George
아르투로 베네가스....로베르토
Arturo Venegas....Roberto

1.

니나는 얼마 전에 첼리스트 남편(인지 애인인지) 제이미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쥐가 들끓는 방에서 상심에 젖어 있는 니나에게 제이미의 유령이 돌아와요. 니나는 제이미의 유령과 함께 한동안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 마크와 제이미의 귀찮은 유령 친구들과 때문에 둘의 초현실적인 동거는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2.

안소니 밍겔라의 [유령과의 사랑]은 모범적으로 시작해서 모범적으로 끝나는 장르 영화입니다. 영화는 유령 로맨스 장르가 품고 있는 모든 스토리 요소들을 다 끌어쓰면서 한치도 어긋남없이 노선을 따라가지요. 이 영화가 주는 교훈 역시 모범적입니다. 죽은 과거에 집착하는 대신 삶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무리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로맨틱하고 행복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럼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영화의 모든 것을 알아버렸는데?

네, 봐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공식과 교훈만으로 충분하다면 뭣하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야 하나요? 그냥 레너드 말틴 가이드의 영화 해설이나 책 커버만 읽어도 충분할텐데.

3.

아마 가장 훌륭한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일 것입니다. 특히 니나 역의 줄리엣 스티븐슨은 정말로 정말로 훌륭합니다. 이 황당한 유령 이야기를 관객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스티븐슨의 연기 때문이니까요. 경쾌한 희극과 참담한 비극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너무나 일상적인 소소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스티븐슨의 모습은 너무 근사해서 거의 초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너무나 대단한 곡예인데도 불구하고 그 자연스러움 때문에 그 기술적인 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우리는 아무런 의심없이 니나의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스티븐슨의 연기는 알란 릭맨과 마이클 멀로니의 정도를 아는 조연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합니다. 알란 릭맨은 감기에 걸린 듯한 나른한 피곤함으로 유령을 묘사하는데, 매끈하게 연기되어 있기도 하지만 방법론 자체도 어필하는 편이라서 그냥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이클 멀로니의 마크는 가끔 지나치게 귀엽게 군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역시 매력적이고 호감가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4.

이 영화는 안소니 밍겔라의 처녀작입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그랜드 로맨스'에 익숙하신 분들은 이 영화의 소박함과 무덤덤한 유머에 놀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스타일이야 말로 밍겔라의 진짜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과 그의 다음작 [미스터 원더풀]을 보면 대충 그의 선호도가 드러납니다. 일상 속에서 조용하게 전개되는 약간 별난 로맨스 말이에요. 매우 영국적이라고 해야겠어요.

[유령과의 사랑]에서는 소재의 초현실주의가 밍겔라의 무덤덤한 어투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제이미의 친구 유령들이 니나의 집에 모여 앉아 비디오를 보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아주 노골적으로 우스꽝스럽게 꾸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밍겔라는 이 유령들에게 진실함과 어렴풋한 슬픔을 덧붙여서 영화의 유머를 조용하게 한들거리는 그 어떤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황당하게 로맨틱한 이야기를 벌려놓으면서도 결코 현실을 잊지 않는다는 것도 좋습니다. 니나는 통풍도 되지 않는 서쪽방에서 울고만 있는 동화 속의 여자 주인공이 아닙니다. 엄연히 직업과 친구, 이웃이 있는 현실 속의 여성이지요. 도입부에서도 니나는 결코 울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매우 사실적이지요. 슬픔은 일상 속에 묻혀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니까요. 살아있는 사람은 늘 한 감정에만 눌려 지내지는 않습니다.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너저분하게 사방에 흘러넘치는 감정보다야 필요한 부분에만 터져 나오는 슬픔이 더 효과적이니까요.

5.

이 영화에서는 파블로 네루다의 '죽은 여인'이 아주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쓰였다고 말할 수도 있고 또 번역과 알란 릭맨의 엉터리 스페인 어 발음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손상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짧은 시가 주는 감동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첼로 소나타 3번도 근사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니나가 혼자서 첼로 파트를 허밍으로 부르면서 피아노로 이 곡을 칠 때는 그녀의 고독과 상실감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제이미와의 이중주가 될 때는 그들의 사랑을 보다 고전적으로 표현하는 도구가 됩니다.

6.

밍겔라는 이렇게 작은 영화가 더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가 그를 부풀려 놓은 게 오히려 그에게는 안 좋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여간 이 작은 영화로 그의 초창기 향취를 즐기는 것은 매력적인 경험입니다. (99/07/07)

D&P

기타등등

브루노 바레토의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과 이 영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비슷한 스토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