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가이 매딘 Guy Maddin

주연
파스칼 뷔시에르....줄리아나 코셀
Pascale Bussières....Juliana Kossel
셜리 듀발....아멜리아 글랜
Shelley Duvall....Amelia Glahn
프랭크 고신....케인 볼
Frank Gorshin....Cain Ball
앨리스 크리지....제퍼 에클스
Alice Krige....Zephyr Eccles
R.H. 톰슨....아이작 솔티 박사
R.H. Thomson....Dr. Isaac Solti
로스 맥밀런....매튜 에클스/피터 글랜의 목소리
Ross McMillan....Matthew Eccles/Voice of Peter Glahn
나이젤 위트미....피터 글랜
Nigel Whitmey....Peter Glahn

줄리아나와 피터

가이 매딘의 [황혼의 얼음 요정 Twilight of the Ice Nymphs]의 원작은 크누트 함순의 소설 [판]입니다. 하지만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기대하지는 마시길. 함순의 소설이 조금 까다롭게 읽히는 판타지이긴 하지만 매딘의 영화처럼 정신없이 몽롱하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막 감옥에서 풀려난 피터 글랜이라는 남자가 고향 만드라고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피터는 배 안에서 만난 신비스러운 여인에 반하지만 어부인 남편을 잃은 제퍼의 연인이 됩니다. 한편 섬에서 타조 농장을 운영하는 피터의 동생인 아멜리아는 최근에 한쪽 다리를 잃은 과학자 솔티 박사를 사랑하는데, 솔티는 피터가 반한 여인인 줄리아나를 데리고 등장합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한 여름 밤의 꿈]을 연상시킵니다. 숲의 이미지는 함순의 원작에도 등장하지만 매딘이 시도한 것도 함순의 소설을 제대로 영화화하는 것보다는 자기만의 [한 여름 밤의 꿈]을 창조하는 것이었겠지요. 철물 공장을 개조한 스테이지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된 뿌연 화면 속에서 환상적인 주인공들이 꿈처럼 몽롱한 사건들과 마주치는 이 영화는 [셜리 듀발의 동화극장] 버전 [한 여름 밤의 꿈] 같습니다. 셜리 듀발이 이 영화에서 아멜리아로 출연한 것도 그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매딘이 창조하고 싶었던 것도 가짜 셰익스피어 대사들의 캠피한 느낌과 동화 각색 텔레비전 시리즈의 얄팍하고 플라스틱 냄새나는 인공 무대의 분위기가 아니었을까요?

영화는 몽롱하고 졸립니다. 매딘은 극도로 양식화된 캐리커쳐들이었던 그의 이전 영화 주인공들보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인물들을 그리고 싶어했다고 하지만 관객들이 그들의 열정과 고통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그러기엔 이들의 행동이 너무나도 불분명하고 흐릿해요. 그의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셜리 듀발, 앨리스 크리지, 파스칼 뷔시에르와 같은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캐릭터의 흐릿함에 특별한 무언가를 더 해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건 매딘이 양식화된 캐릭터들을 더 잘 다룬다는 반증일까요? 하긴 우리가 그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받아들이며 즐겼던 것도 그들이 극단적으로 평면적인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니까요.

[황혼의 얼음 요정]이 매딘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합니다만, 이 영화는 매딘의 가장 인기있는 영화도 아니고 가장 매딘다운 작품도 아닙니다. 단지 매딘 특유의 어처구니없는 분위기가 순화된 버전에 불과한 듯 해요. 게다가 대사가 많은 영화는 아무래도 이 남자의 장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가짜 무성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종종 배우들의 긴 대사에 갇혀 굳어버리거든요. (03/07/22)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크레딧에는 주인공 피터 글랜을 연기한 나이젤 위트미의 이름이 없습니다. 감독과 싸우고 나간 뒤 이름을 지워달라고 요구했다나 봐요. 이 배우의 목소리는 로스 맥밀런이 모두 더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