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니콜라스 렌튼 Nicholas Renton

주연
켄 스코트....아돌프 히틀러
Ken Stott....Adolf Hitler
일레인 캐시디....겔리 라우발
Elaine Cassidy....Geli Raubal
크리스틴 트레마코....에바 브라운
Christine Tremarco....Eva Braun
제이크 우드....에밀 모리스
Jake Wood....Emil Maurice
피터 라이트....하인리히 호프만
Peter Wight....Heinrich Hoffman
그랜트 입스....한스
Grant Ibbs....Hans
다니엘 웹....요제프 괴벨스
Daniel Webb....Joseph Goebbels
엠마 버클리....마그다 괴벨스
Emma Buckley....Magda Goebbels
로버트 푸....그레고어 슈트라서
Robert Pugh....Gregor Strasser
마이클 이브스....하인리히 히믈러
Michael Eaves....Heinrich Himmler

히틀러와 겔리

ITV 텔레비전 영화인 [아돌프 삼촌]에서 '아돌프 삼촌'은 물론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여기서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히틀러 이복 누이의 딸인 겔리 라우발이고요.

이 사람과 히틀러의 관계에 대해 기술하는 건 다소 까다로운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보다는 소문이 더 많거든요. 겔리는 히틀러의 정부였을 수도 있고, 변태 삼촌의 성적 갈취에 시달린 피해자였을 수도 있으며, 자상한 삼촌의 지나치게 친절한 도움을 받았던 평범한 소녀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의 다소 수상쩍은 죽음도 마찬가지죠. 공식적으로는 권총 자살이지만 히틀러의 부하들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소리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겔리의 죽음이 히틀러가 보다 끔찍한 인간으로 변한 전환점이라고도 합니다.

[아돌프 삼촌]은 히틀러의 경력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대신 히틀러와 관계를 맺은 두 여자들인 겔리 라우발과 에바 브라운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에 접근하려 합니다. 이 영화에 따르면 히틀러는 지옥에서 온 악마가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입니다. 단지 카리스마 넘치고 사악하고 폭압적인 보통 사람이지요. 영화는 그가 저지른 악을 인간적 결함과 연결시키려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겔리 라우발과 히틀러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둘이 사디스틱한 섹스를 나눈 사이라는 추측까지는 가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충분히 불쾌한 관계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실제 섹스가 관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죠. 겔리에 대한 히틀러의 집착은 끊임없이 딸의 몸을 더듬으면서 정작 딸의 처녀성이 깨지는 걸 원치않는 아버지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의 집착은 정갈하고 완벽한 아리안족 이성애자 가족 이미지에 대한 그의 외침과 어떤 아이러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돼요. 원래 완벽한 가족 이미지라는 게 은근히 변태스러운 겁니다.

겔리는 히틀러라는 인물을 양파 껍질 까듯 조금씩 벗겨내는 도구입니다. 맨 처음 겔리에게 아돌프 히틀러는 돈 많고 엄청난 인기와 권력을 가진 친절한 삼촌에 불과하지요. 같이 살다보니 삼촌의 위험한 사상과 불쾌한 욕망을 알아차리긴 하지만, 이 비정치적인 아가씨는 그래도 그런 아저씨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어주며 그를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이 달아나기로 한 남자친구가 살해당한 뒤엔 자기가 굉장히 위험하고 힘있는 남자가 파놓은 함정에 갇혔다는 걸 알게 되지요.

영화는 겔리만큼 에바 브라운의 이야기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에바는 45년 베를린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 겔리의 회상을 끌어오는 사람이기도 하죠. 에바는 여자들에 대한 히틀러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이기도 한데, 결과는 조금 더 긍정적입니다. 결국 겔리처럼 자살하긴 하지만 자발적으로 벙커에 들어와 동반자로 죽으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그게 에바에 대한 히틀러의 애착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합니다.

과녁을 정확하게 겨누고 쏘았다면, 이 이야기는 굉장히 강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돌프 삼촌]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겔리나 에바를 통해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에 접근한다는 시도는 좋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의 보다 공적인 면까지 그려내려 하는 거죠. 45년과 30년대 초의 이야기를 번갈아 진행하는 방식은 나쁘지 않지만 과연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가 히틀러의 마지막을 꼭 봐야 할까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몰락]에서 더 정확한 묘사를 볼 수 있는데 말이죠. 전체적으로 [아돌프 삼촌]은 지나치게 산만합니다. 특히 겔리가 죽은 뒤로는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결말까지 몇십 분을 질질 끌어요. 그럴 시간에 겔리의 이야기를 더 보여주면 좋았죠.

그래도 [아돌프 삼촌]은 보는 동안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배우들은요. 켄 스코트는 살짝 과장된 캐리커처로 히틀러를 연기하고 있는데, 오싹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며, 종종 불편하게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일레인 캐시디는 실제 겔리 라우발과 그렇게 닮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설득력있는 동조자/피해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은근히 그런 면이 [펠리시아의 여정]의 이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에바 브라운을 연기한 크리스틴 트레마코의 신중한 연기와 괴벨스를 연기한 다니엘 웹의 경쾌한 모사도 좋습니다. 전체적으로 남자들이 캐리커처를 연기하는 동안, 여자들은 보다 정통적인 방식으로 캐릭터에 접근하는 영화더군요. (06/02/16)

DJUNA

기타등등

IMDb에 따르면 앨런 커밍과 루퍼트 슈얼에게 먼저 역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슈얼의 히틀러는 별 느낌이 없지만 앨런 커밍이 히틀러를 연기했다면 굉장히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