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피터 닥터 Pete Docter
밥 피터슨 Bob Peterson

주연
에드워드 아스너....칼 프레드릭슨
Edward Asner....Carl Fredricksen
크리스토퍼 플러머....찰스 먼츠
Christopher Plummer....Charles Muntz
조던 나가이....러셀
Jordan Nagai....Russell
밥 피터슨....더그/알파
Bob Peterson....Dug/Alpha
들로이 린더....베타
Delroy Lindo....Beta
제롬 렌프트....감마
Jerome Ranft....Gamma
존 라젠버거....공사장 십장 톰
John Ratzenberger....Construction Foreman Tom
데이빗 케이....뉴스 영화 아나운서
David Kaye....Newsreel Announcer
엘리 닷터....어린 엘리
Elie Docter....Young Ellie
제레미 리어리....어린 칼
Jeremy Leary....Young Carl

(스포일러 천지입니다.)

러셀과 칼

[업]의 프롤로그는 아마 올해 여러분이 극장에서 보실 수 있는 가장 가슴 아린 러브스토리일 것입니다. 모험가를 꿈꾸는 수줍은 어린 소년이 동네의 버려진 집에서 자신과 똑같은 꿈을 품고 있는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둘은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그 버려진 집을 사서 평생의 보금자리로 삼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남미 어딘가에 있다는 파라다이스 폭포로 가는 모험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그런 모험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평생을 동물원 직원과 풍선장수로 일하면서 그들은 서서히 늙어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가 죽고 남편은 이 가혹하고 끔찍한 세계에 홀로 버려집니다.

보면서 [월-E]가 생각나더군요. [업]도 생기발랄하고 주도적인 여자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수줍고 작달막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남자 주인공 칼 프레드릭슨은 정말 평생 동안 배우자를 바꾸지 않는다는 새처럼 행동하지요. 미래의 아내 엘리를 처음 만난 뒤로 그는 늘 아내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곳에서 남은 평생을 보내고 아내의 어린 시절 꿈을 평생 같이 꾸면서 그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요. 보다보면 뭐 이런 남자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단순하고 헌신적인 삶에 부러워질 수밖에 없죠. 그런 행복도 아내가 죽은 뒤로 끝납니다만.

초반 10분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프롤로그는 끝났다고 할 수 없어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늘 현재 진행형의 드라마와 공존하고 있지요. 엘리는 이 영화에서 직접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제3의 주인공이고 프롤로그의 테마는 영화가 끝날 무렵까지 계속 순환주제처럼 반복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뒤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후에 벌어지는 스토리 전개가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풍선에 매달린 집이 그려진 포스터와 예고편을 본 사람들은 풍선에 매달린 집이 하늘에서 벌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식 모험담을 그리기 마련이지요. 그런 모험이 끝나면 노인은 드디어 목적지인 파라다이스 폭포에 도착할 것이고요.

하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식으로 흘러갑니다. 집이 풍선에 매달려 휙 날아갑니다. 만세! 하지만 폭풍우가 한 번 훅 불자 그들은 이미 파라다이스 폭포 근처에 와 있습니다. 벌써 비행이 끝난 거예요. 그 뒤에 칼 프레드릭슨과 어쩌다 그의 비행에 동참하게 된 야생 탐험대 소속 어린 소년 러셀이 벌이는 모험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풍선에 매달려 엉성하게 떠 있는 집을 질질 끌면서 아내 엘리가 그림으로 그려 지정해주었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갑니다. 비행의 해방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에게 이런 스토리 전개는 실망스럽죠. 왜 이들은 날지 않고 땅바닥에 붙어 기어 다니는 겁니까?

하지만 여기에는 완벽한 논리가 서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 관객들이 기대했던 스토리야 말로 앞뒤가 맞지 않죠.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칼 프레드릭슨의 집은 풍선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모험의 시작인가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칼에게 이것은 모험의 끝입니다. 그는 지금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풍선에 매달린 집을 타고 아내가 꿈꾸던 이상향을 향해 날아가는 78세의 노인네. 이것은 거의 완벽한 자살의 이미지입니다. 파라다이스 폭포를 향해 자신의 평생이 담겨 있는 집을 질질 끌고 가는 노인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노년과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까지 칼의 상황은 모험이 아니라 모험을 필요로 하는 문제의 시작입니다. 갑갑함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감정이고 [업]은 그 감정을 거의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진짜 모험은 칼이 4미터가 넘는 알록달록한 새 케빈과 칼과 엘리의 롤모델이었던 모험가 찰스 먼츠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칼과 찰스 먼츠는 각각 노년의 다른 모습을 대표합니다. 칼은 삶의 의욕을 잃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힘없는 노인입니다. 찰스 먼츠는 젊은 시절의 집착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입니다. 칼에게 과거는 죽었고 현실은 무의미하며 미래는 없습니다. 찰스 먼츠는 모든 게 과거뿐입니다. 칼이 해 없는 사회의 잔여물이라면 먼츠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연쇄살인마입니다. 그는 자식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입니다. 그가 자기가 지금까지 죽인 희생자들이 쓰고 있었던 게 분명한 비행 모자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에는 오싹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 희생자들은 대부분 먼츠와 그의 비행선을 보며 모험과 비행을 꿈꾸었던 그의 팬들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찰스 먼츠의 존재를 정치적인 상징으로 이해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말하는 기계를 목에 단 충성스러운 개들에 둘러싸인 채 자신의 망상을 수호하고 그를 깨뜨릴 것 같은 모든 존재들을 가차없이 파괴하는 이 늙은 남자의 모습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합니다. 그렇게 보여서 그렇게 보인다고 말하는 게 뭐가 그렇게 큰 잘못이겠습니까.

여기서 칼과 먼츠를 갈라놓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케빈으로 형상화됩니다. 아직도 20세기 초 백인 사냥꾼의 약탈꾼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지 못한 먼츠에게 케빈은 자신의 명성을 되찾아 줄 희귀한 사냥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먼츠를 영웅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세상 속에서 서서히 늙어가며 변화를 체험해온 칼의 입장은 훨씬 유연합니다. 처음에 그는 케빈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린 소년 러셀과 교우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환경론적인 접근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칼과 먼츠의 대립은 낡은 생각을 고수하는 늙은이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적응한 늙은이의 대결이 됩니다.

[업]은 수많은 아이러니로 구성된 영화이고 칼과 먼츠의 관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별 관심도 없었던 새 한 마리 때문에 영웅으로 떠받들고 존경했던 모험가 먼츠와 목숨을 걸고 대결하는 칼의 이야기는 척 봐도 친부살해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내 엘리와 평생 동안 꾸어왔던 꿈을 단칼에 잘라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상관없습니다. 이제 그에겐 새로운 삶의 목표와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아내 엘리를 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죽은 사람을 사랑하는 보다 나은 방법을 발견한 것이죠. 아직 남아있는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고, 살아있는 사람들(그리고 동물들)과 교류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은 [업]이 제시하는 노년의 세 번째 모습입니다.

여기서부터 지금까지 짐처럼 질질 끌려 다니던 집은 여분의 무게를 쓸어버리고 다시 날아오릅니다. 드디어 관객들이 극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기다려왔던 미야자키 하야오식 비행 액션이 시작된 것이죠. 시들어가는 과거의 꿈과 죽음의 갈망은 순수한 삶의 에너지로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관절염에 시달리고 느리지만 칼은 더 이상 삶의 벼랑 끝에 선 늙은이가 아닙니다. 이제 그는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동굴 속에 갇혀 있던 먼츠의 비행선 [모험의 정신]호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과거의 기억을 담은 칼의 집은 추락하는 먼츠를 따라 서서히 구름 밑으로 사라집니다. 전 이 영화가 집이라는 상징을 사용하는 방식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결하고 명쾌하면서도 놀랄 만큼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그것은 여전히 풍선에 매달린 집이며 관객들에게 억지로 그 의미들을 강요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09/07/31)

DJUNA

기타등등

1. 1.85:1 영화입니다. 영화의 소재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선택이죠.

2. 단 한 번만 보실 생각이라면 큰 상영관에서 2D 자막판을 보시길 권합니다. 3D도 재미있긴 하지만 2D 쪽이 남미 자연의 화려한 색상을 더 잘 살리고 있어요. 이순재의 더빙은 좋은 편이지만 번역 과정 중 대사의 날카로운 맛이 많이 날아가버립니다.

3. 러셀은 픽사 최초의 아시아인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아이의 모델은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단편 [구름 조금]의 감독인 피터 손이라고 하죠. 아마 모델이 몇 년 동안 동고동락한 동료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개인화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4. 사람들에 따라 평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 먼츠의 말하는 개들에게 호의적입니다. 전통의 현대화랄까요. 통역 목걸이의 활용은 지금은 지루해진 동물의 의인화 테크닉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더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우리와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적 존재이면서 여전히 이질적인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죠. 데이빗 브린의 [업리프트] 시리즈에 나오는 돌고래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