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필립 하스 Philip Haas

주연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메리 팬튼
Kristin Scott Thomas....Mary Panton
숀 펜....롤리 플린트
Sean Penn....Rowley Flint
앤 밴크로프트....산 페르디난도 왕자비
Anne Bancroft....Princess San Ferdinando
제임스 폭스....에드거 스위프트 경
James Fox....Sir Edgar Swift
제레미 데이비스....칼 리히터
Jeremy Davies....Karl Richter
데릭 제이코비....럭키 리드베터
Derek Jacobi....Lucky Leadbetter
마시모 기니....베피노 레오파르디
Massimo Ghini....Beppino Leopardi

1.

1930년대 말, 메리 팬튼이라는 여자가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 살았습니다. 매력적이지만 아주 젊지는 않고 주정뱅이로 죽은 남편 덕택에 재산이라고는 빚밖에 없는 사람이지요.

여러분이 메리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선택의 폭은 넓지 않습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괜찮은 남자를 만나 빨리 결혼을 하는 거죠. 30년대라는 시대가 그런 선택을 강요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군요. 요새도 메리와 같은 입장에 선 사람들이 가진 선택의 폭은 마찬가지로 좁으니까 말입니다.

다행히도 메리에게는 그런 괜찮은 남자가 있습니다. 곧 벵갈 총독으로 임명될 에드거 스위프트 경이죠. 나이차가 좀 나긴 하고 그에게 별다른 애정을 품고 있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큰 문제일까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은 그렇게 잘 풀리지 않습니다. 우선 미국인 유부남 플레이보이 롤리 플린트가 메리에게 치근대기 시작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스트리아 망명객인 바이올리니스트 칼 리히터가 메리에게 사랑을 고백했고요. 소란은 가슴에 총구멍이 난 시체가 메리의 눈 앞에 쓰러지며 절정에 이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드거 경이 대답을 듣기 위해 곧 이탈리아로 돌아올텐데 말입니다.

2.

[업 앳 더 빌라]의 원작은 서머세트 모옴이 쓴 동명의 중편 소설입니다. 아마 들어보신 분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결코 [인간의 굴레]나 [달과 6펜스]에 비할 작품은 아니니까요.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절판된 상태였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꼭 가치가 없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모옴이 책을 굉장히 많이 쓴 남자였고, 이것과 비슷한 다른 소설들이 무진장 많기 때문에 특별히 튀지 않을 뿐이죠.

[업 앳 더 빌라]는 지극히 모옴다운 서스펜스 물입니다. 상황은 멜로드라마틱하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선택입니다. '자 메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작품의 설정을 들여다보면 그건 꼭 '사랑이냐, 안정된 삶이냐'처럼 보입니다. 지루하지만 안정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에드거 경과 믿을 수 없는 바람둥이지만 꽤 재미있는 롤리 플린트가 양쪽에서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메리의 입장은 거기서 살짝 벗어나 있습니다. 실제로 메리는 지극히 멜로드라마틱해보이는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그건 사랑이냐, 안정이냐와는 큰 상관이 없어요. 오히려 메리의 갈등은 도덕적인 것입니다. 메리가 무엇을 선택하건, 그 기로가 제시하는 문제는 얼마나 옳은 일인가, 얼마나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입니다.

결과적으로 메리는 이틀 동안의 모험을 통해 상당한 '도덕적 성숙'을 이룩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성숙이 이 캐릭터에게 일종의 자립심까지 제공해주죠. 그렇다고 돈까지 덤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 해도 나쁠 건 없는 일입니다.

3.

이런 소설은 어떻게 각색해야 할까요? 벨린다와 필립 하스 부부는 그들이 이전에도 했던 방식을 되풀이 했습니다. 전형적인 마스터피스 시어터 풍의 영국 영화를 만든 것이죠. 피범벅된 시체가 돌아다니는 영화지만 캐릭터들은 정중하고 예의에서 벗어나 있지 않으며 지극히 영국식으로 수다스럽습니다. 30년대 플로렌스의 아름다운 풍광과 영국 상류 사회의 적당한 사치가 범벅이 되어 있고요.

다루어지는 소재를 생각하면 좀 더 멜로드라마틱하고 과장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 영화의 줄거리는 오히려 3, 40년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에 더 잘 어울릴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이 편도 괜찮습니다. 영국 상류 사회의 정중한 예절이 오히려 그런 멜로드라마를 강화시키기도 하고, 선택에 선 주인공을 보다 차가운 머리로 관찰하게도 하니까요. 그냥 서스펜스물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수다스러운 대화 속에 숨겨진 뼈를 찾아내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는 이제는 아주 익숙해진 잉글리시 로즈 역할을 합니다. 숀 펜은 조금은 낯선 30년대 플레이보이 역을 하고요. 둘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커플이지만 화면 상에서는 묘하게 긍정적인 긴장감이 도는군요. 둘 다 좋은 배우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약간 안 어울릴 것 같은 캐스팅의 결과인 듯 합니다.

제레미 데이비스, 데릭 제이코비와 같은 조역들도 훌륭한데, 가장 괜찮은 배우는 역시 산 페르디난도 왕자비로 나오는 앤 밴크로프트입니다. 이 배우가 허영과 위트가 뒤섞인 매정한 대사들을 톡톡 내뱉을 때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00/11/07)

DJUNA

기타등등

왜 영국 사람들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이탈리아를 꿈꾸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저같으면 이탈리아의 변덕스러운 지중해성 기후와 땡볕을 견디느니 그냥 축축한 영국에 남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사정은 늘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기 마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