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훌리오 메뎀 Julio Medem

주연
엠마 수아레스....크리스티나
Emma Suárez....Cristina
카르멜로 고메스....마누엘/이그나시오/페루
Carmelo Gómez....Manuel/Ignacio/Peru
아나 토렌트....카탈리나
Ana Torrent....Catalina
체마 블라스코....마누엘
Txema Blasco....Manuel
카라 엘레얄데....일레고리/루카스
Karra Elejalde....Ilegorri/Lucas
클라라 바디올라....마달렌
Clara Badiola....Madalen

크리스티나와 페루

훌리오 메뎀의 첫 장편인 [젖소]는 라이벌 관계인 두 바스크 지방 가문의 3대에 걸친 애증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2차 카를로스 전쟁에서 시작되어 스페인 내전 중에 끝나니 반 세기가 넘도록 고약한 앙금을 쌓아왔던 거예요.

그렇다고 이들이 몬터규가와 캐퓰릿가처럼 원수지간이었던 건 아닙니다. 괜히 자잘한 이유들이 쌓이고 쌓이는 통에 조금씩 악연이 유지되었던 거죠. 1번 가문의 가장이 카를로스 전쟁에서 총맞아 죽는 동안 2번 가문의 가장이 죽은 척 해 전쟁터에서 빠져 나오고, 집안 1번 아들과 집안 2번 아들이 통나무 쪼개기 대회의 라이벌인 동안 집안 1번 딸이 집안 2번의 아들과 덜컹거리는 연애를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이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바스크 지방과 스페인의 근대사를 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동네 문화에 대해서도 조금 익숙해져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은근히 뒤에서 드라마를 만들어주는 외적 요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바스크 지방에서 자치권을 쟁취하기 위해 어떤 정치세력과 연합했는지 알지 못한다면 후반부의 아이러니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저야 어느 정도 예습을 하고 봤지만 그래도 많이 놓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감흥이 덜했다면 그 때문일 겁니다.

위에서도 대충 말했지만, 이 작품은 노골적인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두 집안 사이의 담이 높지는 않아요. 아니, 노골적인 스토리 자체가 있는지나 모르겠어요. 우린 두 집안의 이야기를 큰 무리없이 따라가긴 하지만 개별 스토리들을 하나의 분명한 단선으로 연결하지는 못합니다.

구체적인 스토리보다 영화를 잘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런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는 2번 가문의 할아버지인 마누엘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역할 없이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로 등장하는 젖소들 역시 마누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고요. 탈영병이며 예술가인 마누엘이 욕정과 폭력, 전쟁이 부글거리는 거친 바스크 지방 사람들의 드라마를 말없이 바라보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침묵하는 신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전체적 의미가 어찌되었건, 영화는 은근히 인상이 강합니다. 개별 드라마들이 강하고 전체를 묶는 시적 분위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려 애를 쓰지 않아도 쉽게 끌려가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메뎀의 이후 영화들이 더 맘에 들지만 말입니다. (02/02/11)

DJUNA

기타등등

1. 영화에 나오는 통나무 쪼개기 경기 장면처럼 황당하게 드라마틱한 스포츠 묘사는 드물지 않을까 싶군요.

2. 엠마 수아레스와 카르멜로 고메스는 훌리오 메뎀의 세번째 작품인 [대지]의 주연 배우들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