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토드 헤인즈 Todd Haynes

주연
조나단 리스-마이어즈....브라이언 슬레이드
Jonathan Rhys-Meyers....Brian Slade
유안 맥그리거....커트 와일드
Ewan McGregor....Curt Wild
토니 콜레트....맨디 슬레이드
Toni Collette....Mandy Slade
크리스찬 베일....아서 스튜어트
Christian Bale....Arthur Stuart
에디 이자드....제리 디바인
Eddie Izzard....Jerry Divine
에밀리 우프....섀넌
Emily Woof....Shannon
마이클 피스트....세실
Michael Feast....Cecil
자넷 맥티어....나레이터
Janet McTeer....Narrator
미코 웨스트모얼랜드....잭 페어리
Micko Westmoreland....Jack Fairy

1.

[벨벳 골드마인]이 다루고 있는 세계는 저랑 전혀 상관없고 별 관심도 없는 곳입니다. 사실 70년대 글램 록에 대한 제 지식은 가믈란 음악에 대한 지식보다 짧습니다. 그나마 익숙한 몇몇 이름들도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고요. 예를 들어 저한테 데이빗 보위는 배우이지 가수는 아닙니다.

제가 이 영화에 충분히 몰입할 수 없었던 이유를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것은 취향보다 시대적 차이의 결과일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 세계를 의도적으로 '진지하게' 다루었다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보기는 참 재미있지만 말입니다.

2.

대충 이런 이야기입니다. 70년대에 한참 날리던 양성애자 가수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공연 때 가짜 암살 쇼를 연출한 뒤 사라집니다. 십 년 뒤 영국인 기자 아서 스튜어트는 슬레이드 암살 쇼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 하며 70년대의 그 번쩍거리던 시대를 회상합니다. 여기엔 열광적인 슬레이드 팬이었던 그의 개인적인 회상도 녹아들게 되지요.

이런 식의 이야기를 끌고가기 위해 토드 헤인즈는 정말 이상할 정도로 뻔뻔스럽게 [시민 케인]을 표절합니다. 인터뷰로 한 사람의 삶을 재구성하는 플롯만 가지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몇몇 장면은 '나 표절이오!'라고 외치고 있거든요. 특히 토니 콜레트가 연기한 맨디 슬레이드가 나오는 장면은 [시민 케인]을 비디오로 보면서 하나하나 베낀 것이 분명합니다.

당연히 이 영화를 독립적인 진지한 영화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아마 아서 스튜어트가 나오는 80년대 부분의 진지함을 의도적으로 죽여서 영화 전체의 통일감을 조성하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정말 내용이 없습니다.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에는 케인이라는 거대하고 인상적인 인물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화장발 잘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케인은 적어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잘 알고 있었지만 슬레이드는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시류에 밀려 흘러가기만 합니다(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타락한 악마 취급을 받는 토미 스톤은 슬레이드보다 훨씬 긍정적인 인물입니다. 적어도 자기가 무얼 하는 지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봐도 이 경박함과 얄팍함은 의도적입니다. 헤인즈 자신도 글램 록(알지도 못하면서 이 단어를 쓰고 있자니 정말 불편하군요)에 매료되어 젊은 시절을 지냈다고 하지만,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이야기의 얄팍함을 눈치 못챌만큼 순진한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아마 이 영화의 얄팍함은 당시의 경박함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수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극 중에서 맨디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우린 그 때 신나게 잘 놀았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생각해보면 헤인즈가 진짜로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는 겉보기처럼 아서가 아니라 맨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맨디는 이 영화에서 가장 생각이 또렷한 인물입니다. 자신이 지나온 그 신나는 세월이 반짝거리는 환상에 불과했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맨디밖에 없지요.

3.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로커들을 주인공으로 한 Y물 만화들, 그 중에서도 별로 좋지 않은 것들만 모아 짜깁기 한 것 같습니다. 사실 별 흥미가 없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는 관심을 끌 만한 진짜 캐릭터 따윈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광고 문구에도 나와 있듯이) 스타일입니다. [벨벳 골드마인]은 스타일 면에서는 정말 본 때를 보여줍니다. 야하고 반짝거리고 얄팍하고 생각없고 요란하며 정말로 정말로 근사한 허상을요. 사실 정말 재미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헤인즈는 한 마디로 막 나갑니다. 구식 초현실주의와 서커스적 스펙터클, 뮤직 비디오들을 뒤섞으며 그는 '그 옛날의 신나던 시절'을 다시 즐기는 것 같습니다. 종종 너무 비약이 심해서 위태로울 정도지요. 예를 들어 오스카 와일드를 들먹이는 도입부는, 아무리 이 영화가 와일드식 유미주의를 예찬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좀 정도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이 천박한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는 너무 좋습니다. 비주얼은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멋있고 대사는 종종 배꼽 떨어질 정도로 웃기며 이 모든 것들은 멋들어진 (그러나 공허한) 지버리쉬로 장식되어 번쩍거립니다.

앤드류 먼로나 샌디 파웰과 같은 일류 장인들에 의해 헤인즈의 환상은 멋들어지게 살아납니다. 특히 파웰이 디자인한 의상들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4.

조나단 리스-마이어즈는 예쁘고 화장발/옷발/화면발 모두 잘 받으며 노래도 곧잘 합니다. 캐릭터는 재미없고 연기는 뻣뻣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연기나 캐릭터가 아니라 어떻게 화면에 예쁘게 나오는가입니다. 그것만 따진다면 이 배우는 자기 일을 했습니다.

유안 맥그리거가 연기한 커트 와일드는 리스-마이어즈의 슬레이드보다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캐릭터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더 재미있는 배우이기 때문일 겁니다.

토니 콜레트는 이 영화에서 가장 배우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하긴 콜레트가 연기한 맨디가 가장 3차원적인 캐릭터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크리스찬 베일은 아서 스튜어트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연기합니다. 하지만 그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헤인즈가 아서라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엔 어딘가 놀려대는 듯한 느낌이 숨어 있어서 베일이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99/07/24)

DJUNA

기타등등

유안 맥그리거가 바지를 벗어 아랫도리를 드러내는 부분은 아마 개봉 때엔 잘려나가거나 뿌옇게 처리되겠지요. 하암, 하긴 걔 누드는 너무 봐서 이제 신기하지도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