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한지승

주연
설경구....김상민
김태희....윤진아
서태화....태화
전수경....향미
임하룡....변호사

상민과 진아

다혈질의 유리공예가와 소심한 곤충학자가 불타는 사랑 끝에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사랑만으로 할 수 없는 게 결혼이죠. 2년 뒤에 둘은 이혼했습니다. 누구 탓이냐고요? 영화는 '성격차'라며 은근슬쩍 양비론을 펼치려 하는데, 사실 다 남편 탓입니다. 우리의 곤충학자 김상민씨는 절대로 결혼 따위는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자기도 알았을 거예요. 그런데도 결혼해서 멀쩡한 사람 인생 2년을 날려버렸죠. 왜 그랬을까요? 아마 그 멀쩡한 사람 윤진아가 김태희의 외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혼 할 때까지 그럭저럭 문명인처럼 매너를 유지하던 그들의 관계는 몇 개월 뒤에 파국을 맞습니다. 잃어버린 시계추를 되찾으려는 상민의 짜증나는 요구에 진아가 드디어 폭발하고 만 거죠. 꽝! 여기서부터 영화는 멜로드라마를 버리고 액션 영화가 됩니다. 카 체이스 장면에서부터 와이어 액션까지 안 나오는 게 없어요.

그렇다고 그들의 이야기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장미의 전쟁]처럼 끔찍하다는 건 아닙니다. 둘은 방향부터 달라요. [장미의 전쟁] 주인공들은 몇 십 년의 결혼 생활 동안 서로에 대한 애정을 거의 완벽하게 날려버렸습니다. 남은 건 순수한 증오와 재산에 대한 집착뿐이에요. 하지만 [싸움]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마음 속 어딘가에 감추고 있습니다. 그들의 피튀기는 싸움은 모양을 바꾼 애정표현입니다.

이들의 싸움은 일대일로 주고받는 형식이 아닙니다. 상민은 결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별다른 악의없이 무심한 말투나 습관으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경향이 있죠. 단순하고 직설적인 진아가 그런 전남편에게 폭력으로 대응하는 건 당연합니다. 전 백 번 이해해요. 윤진아만큼 폭력에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저 역시 쉽게 욱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싸움]은 단순하고 얄팍한 영화입니다. 배경이 되는 심리묘사나 설정은 나름 미묘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몽땅 만화처럼 과장되어 있지요. 배우들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깊이를 제거한 캐리커처 연기로 일관하며 대사들이나 액션도 현실 세계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얄팍하지만 신나요. 꽝꽝 부수는 재미가 있죠. 중반을 넘어서면 에너지가 좀 딸리고 결말도 지나치게 얌전하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고 제가 걱정했던 것만큼 심각하게 들쩍지근하지는 않았어요. 아이디어를 조금 더 쏟아붓고 후반에 그렇게 어색하게 주저앉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할 말 분명한 명쾌한 코미디라는 점은 부인하고 싶지 않군요.

아, 김태희 연기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괜찮으니까요. 초반에 나오는 도식적인 멜로 연기가 조금 갑갑하게 느껴지기는 한데, 그 뿐이에요. 그것도 어차피 코미디의 도입부니까 어느 정도는 용납이 되고. 나머지 연기는 잘 조율된 편이고 이전의 싸이언 광고 연기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편이라 이질적인 느낌도 들지 않아요. 여기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보시죠. (07/12/04)

DJUNA

기타등등

1. 음악을 담당한 노영심이 카메오 출연합니다.

2. 노골적인 싸이언 간접광고는 이미 예상하셨겠죠. 하지만 서울우유 간접 광고는 한 술 더 뜬답니다. 아니, 이건 간접광고도 아니에요. 그냥 광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