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틴 캠벨 Martin Campbell

주연
크리스 오도넬....피터 개럿
Chris O'Donnell....Peter Garrett
로빈 튜니....애니 개럿
Robin Tunney....Annie Garrett
빌 팩스턴....엘리엇 본
Bill Paxton....Elliot Vaughn
스코트 글렌....몽고메리 윅
Scott Glenn....Montgomery Wick
이자벨라 스코룹코....모니크 오베르틴
Izabella Scorupco....Monique Aubertine
테무에라 모리슨....라술 소령
Temuera Morrison....Major Rasul
스튜어트 윌슨....보이스 개럿
Stuart Wilson....Boyce Garrett
오지 데이비스....아지즈
Augie Davis....Aziz
스티브 르 마퀀트....시릴 벤치
Steve Le Marquand....Cyril Bench
벤 멘델슨....말콤 벤치
Ben Mendelsohn....Malcolm Bench
니콜라스 리....톰 매클라렌
Nicholas Lea....Tom McLaren
로잔 세스....아미르 살림 대령
Roshan Seth....Colonel Amir Salim
알레한드로 발데스-로친....아심 상사
Alejandro Valdes-Rochin....Sergeant Asim
로드 브라운....알리 하산
Rod Brown....Ali Hasan
알렉산더 시딩....카림 나지르
Alexander Siddig....Kareem Nazir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1.

피터 개럿

[버티칼 리미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참 심심한 일입니다. 영화의 장점과 단점이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전 지금도 어떻게 하면 무성의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만큼 글의 길이를 늘릴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줄거리 소개부터 하죠. 피터 개럿은 자신과 누이 동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매달린 자일을 끊어버린 끔찍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후 3년 동안 산을 멀리하던 그는 우연히 누이 동생이 억만장자 엘리엇 본의 K2 등정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본의 만용으로 등반대가 산중에 고립되자, 피터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를 끌고 K2에 오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렇게 뻔할 수가 있나!'입니다. 도입부만 보면 마지막 장면까지 다 짐작할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들도 너무 뻔해서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요. 액션에서부터 캐릭터까지, 영화는 너무너무 안전하며 그만큼이나 철저하게 공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미 해본 컴퓨터 롤 플레잉 게임을 다시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진부할뿐만 아니라 억지스럽기까지 하지요. [공포의 보수] 리메이크도 아니면서 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니트로글리세린을 들고 가는 걸까요? 이 영화의 악역인 엘리엇 본은 도대체 머리에 뭘 품고 있는 인간일까요?

아무래도 이게 산악 영화의 한계인 듯 합니다. 등산이라는 액션과 산이라는 배경은 비교적 제한적인 드라마밖에 허용하지 못하나 봐요. 다시 말해 안이하게 덤벼들다가는 정말로 안이한 영화밖에 만들지 못하는 장르란 말이죠.

다행히도 액션의 폭은 드라마보다 넓습니다. 엉터리 수학을 동원해 말한다면, 산은 타고난 3차원의 무대지요. 아무리 2차원적인 캐릭터들이 던져져도 산은 입체적인 무대 공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련한 전문가들이 끼어든다면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나올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버티칼 리미트]는 그런 전문가들을 상당히 많이 품고 있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액션 묘사는 좋습니다. 하지만 밋밋한 스토리와 괜찮은 산악 액션이 결합한 결과, [버티칼 리미트]는 공장생산된 기성품 비슷한 영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2.

[버티칼 리미트]의 스토리에는 꽤 미묘한 윤리적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복잡하지는 않지만 좀 미묘하지요.

이건 생존 수학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으로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K2에서 세 사람이 조난 당했습니다. 더 많은 희생이 따를지도 모르는데 꼭 그들을 구하러 가야 하는 것일까요? 동료들을 죽이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이 질문이 미묘한 이유는 정답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 정답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세요. 만약 구조대를 보내지 않았다면 생존자 세 명만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구조대를 보내 난리를 치자 여섯 명이 죽었지요. 인명 손실이 두 배나 됩니다! 여섯 명이 죽을지 모르지 않았냐고 우길 수도 있지만 니트로글리세린을 짊어지고 K2를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의 사고는 당연하잖아요. 자기네들이 무슨 스파이더 맨입니까?

그러나 우린 계산대로 행동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우린 계산 결과를 알면서도 바보 같이 구조대를 보내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괴로워합니다. 아니, 산을 오르는 일 자체가 바보스러운 일일 수도 있지요. 계산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산에 오르지 않는 것이 목숨을 부지하는 훨씬 현명한 방법임을 알 겁니다. 괜히 올라가서 자기와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보다는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에게는 특별히 강한 도덕적 잣대가 제공됩니다. 영화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한 피터와 애니의 아버지는 이상적인 산악인이며,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엘리엇 본은 나쁜 산악인입니다.

당연한 게 아니냐고요? 둘이 한 행동은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생존 수학말입니다. 누군가 죽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 살아야지요. 엘리엇 본이 구출되어 돌아왔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는 어리석고 충동적이고 잔인하고 약한 남자지만 '악당'은 아닙니다.

하지만 [버티칼 리미트]는 '산악인'들에겐 보통 사람들보다 높은 기준이 요구된다고 주장하는 듯 합니다. 일종의 산악인 찬가지요. 그건 육지 잠자리들을 놀려대는 선원들의 자부심과 비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러게 올라가기는 왜 올라가'라고 투덜거리고 싶은 욕구를 막을 수 없지만 말입니다. (01/01/26)

DJUNA

기타등등

전 등산은 질색입니다. 어린 시절에 입은 정신적 외상의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산 좋아하는 부모 밑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며 자란 분들은 대충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미성년에서 벗어난 이득 중 하나는 어른들을 따라 툴툴거리며 산을 오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저 같은 사람들의 부족한 직접 경험을 보충해주기 위해 [버티칼 리미트]와 같은 영화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