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소리 후미히코 Fumihiko Sori

주연
쿠로키 메이사....벡실
Meisa Kuroki....Vexille
타니하라 쇼스케....레온
Shosuke Tanihara....Leon
마츠유키 야스코....마리아
Yasuko Matsuyuki....Maria
카키하라 테츠야....타로
Tetsuya Kakihara....Taro
모리카와 토시유키....키사라기
Toshiyuki Morikawa....Kisaragi
오츠카 아키오....사이토
Akio Ôtsuka....Saito
박로미....타카시
Romi Pak....Takashi
사쿠라이 타카히로....료
Takahiro Sakurai....Ryo

벡실

2067년.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독점하게 된 일본은 국제사회가 그 기술을 우려하고 제재를 가하자, UN을 탈퇴하고 쇄국정책을 시작합니다. 그 후로 10년 동안 단 한 명의 외국인도 일본에 들어간 적이 없죠. 심지어 위성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일본 열도를 둘러싼 레이스라는 이름의 안테나들이 모든 정보를 막기 때문이지요. 10년뒤, 일본에서 뭔가 수상쩍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미국 특수부대 SWORD가 잠입작전을 시도하지만 그만 함정에 빠져 몰살당하고 타이틀롤인 주인공 벡실만이 간신히 탈출에 성공합니다. 마리아라는 여자가 이끄는 도쿄의 저항조직에 의해 구출된 벡실은 그 동안 일본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되지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요? 정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죠. 첨단기술을 보유한 선진국가가 쇄국정책을 시도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기술을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이런 식의 정책을 고수한다면 순식간에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중반 이후 마리아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 설정은 말이 됩니다. 마리아의 설명이 이치에 맞기 때문이 아니라 기반이 되는 사건이 너무나도 황당무계하기 때문에 '첨단국가의 쇄국'이라는 사건의 황당함이 덜 튀어 보이는 거죠. 얼마나 황당하냐고요? 이것만은 확실히 말해두죠. 이 영화는 절대로 하드 SF가 아닙니다. 근미래설정과 그럴싸해 보이는 하드웨어들에 속지 마세요.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벡실]에서 일본은 지금의 탈레반보다 몇 천 배 더 위험한 악당국가예요. 다이와 중공업이라는 일본의 거대 기업이 전세계 로봇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데다가 10년 동안 폐쇄된 국경 안에서 뭔가 심각한 음모를 꾸미고 있지요. 게다가 영화가 끝날 무렵 일본에 닥친 운명은 꽤 과격하다고 할 수 있거든요. 이런 이야기에 주인공까지 미국인 여성이니 일본 애니메이션의 설정치고는 좀 괴상해보이죠.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본다면 그 차별성은 별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일본과 일본인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른 일본 영화들과 특별히 차이가 날 게 없어요. 엄청 비장한 가미가제 정신으로 충만해 있지요. 타이틀 롤은 벡실이지만 진짜 계획을 짜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들이고요. 그리고 일본에 대한 이 영화의 '과격한' 묘사에는 별다른 정치적 의미나 반성이 없습니다. 그냥 SF적 설정일뿐이죠.

그래도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을 섞어놓고 갈등과 대립을 묘사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영화는 그 기회도 완전히 날려버립니다. 일단 이 영화의 미국인들은 전혀 미국인 같지 않아요. 말투, 행동, 사고방식이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 식이에요. 그나마 구별 가능한 건 외모인데, 이것도 좀 황당합니다. 이 영화에서 일본인 단역들은 모두 평균적인 일본인처럼 생겼어요. 하지만 미국인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생겼답니다. 그래도 인종 구분이 가능하지 않냐고요? 그렇지도 않아요. 일본인 주인공들 역시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생겼거든요. 전 저항조직의 리더 마리아가 외국인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는데, 일본인이더군요. 나중에 벡실이 '마리아와 그녀의 민족'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SF액션물로서도 영화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일단 주인공을 잘못 골랐어요. 벡실에게는 어떤 특별한 능력도 없고 자기만의 개성도 없습니다. 이 캐릭터의 특별한 기능은 단 하나. 귀가 달렸다는 거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벡실은 액션을 하는 대신 마리아나 동료들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냥 들어줍니다. 나중에 저항조직의 공격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아요. 포스터에 척 입고 나와준 전투 수트의 기능도 변변치 않고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액션의 기회가 있느냐... 그럴 리가요. 그 사람들은 벡실이 들어주는 동안 이야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남은 장점은 이 영화의 테크놀로지적 측면이죠. 이 영화는 모션 캡처를 활용한 3D 애니메이션을 2D 스타일로 만든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같은 제작진이 [애플시드] 영화에서 사용했고 그밖의 수많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나 게임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이죠. 글쎄요. 전 아직 이게 그렇게 와 닿지가 않습니다. 캐릭터들의 동작은 뻣뻣하고 표정은 굳어있어서 그냥 어색한 인형극처럼 보여요. 차라리 [폴라 익스프레스]처럼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면 섬뜩한 매력이라도 풍기겠는데, 이 경우는 그냥 서툰 2D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죠. 이 기술이 무르익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나 봅니다. (07/10/24)

DJUNA

기타등등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SWORD를 스워드라고 표기하죠? 이게 보편화된 단어라고 우기는 것도 좀 우습잖아요. [벡실]의 일본 성우들도 다들 소드라고 발음하는 것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