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베이질 디어든 Basil Dearden

주연
더크 보가드....멜빌 파
Dirk Bogarde....Melville Farr
실비아 심즈....로라 파
Sylvia Syms....Laura Farr
데니스 프라이스....캘로웨이
Dennis Price....Calloway
안소니 니콜즈....풀브룩 경
Anthony Nicholls....Lord Fullbrook
피터 코플리....폴 맨드레이크
Peter Copley....Paul Mandrake
노만 버드....해롤드 도
Norman Bird....Harold Doe
피터 맥너리....잭 배럿
Peter McEnery....Jack Barrett
도날드 처칠....에디 스톤
Donald Churchill....Eddy Stone
데린 네스빗....샌디 유스
Derren Nesbitt....Sandy Youth
존 배리....해리스 경위
John Barrie....Detective Inspector Harris
존 카니....브라이디
John Cairney....Bridie
마가렛 다이아몬드....미스 벤햄
Margaret Diamond....Miss Benham
힐튼 에드워즈....P.H.
Hilton Edwards....P.H.
데이빗 에반즈....미키
David Evans....Mickey
앨런 하워드....프랭크
Alan Howard....Frank

1.

멜빌 파는 막 왕립 변호사의 자리에 오른 명망높은 변호사입니다. 하지만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하기만 했던 그의 삶은 그를 흠모하던 한 동성애자 청년이 유치장에서 자살하자 서서히 무너져 가기 시작합니다. 죽은 청년을 협박하던 협박범들을 찾아 헤매던 그는 서서히 선택을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없이 협박범의 요구를 들어주며 거짓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몰락과 조롱, 비난을 무릅쓰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투쟁할 것인가...

2.

[희생자]는 여러 면에서 용감한 영화였습니다. 1961년이라면 영국에선 (남자들의) 동성애가 아직 불법이었습니다. 이 법률은 67년에 가서야 '21세 이상의 성인 남성의 동성애를 인정'하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바뀌었지요. 하여간 그 당시 동성애자 캐릭터를 정면에 등장시키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었습니다. 실제로 제작당시 받았던 압력도 엄청났고요. 이 영화가 이 정도의 강도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모두 제작진의 필사적인 노력 덕택입니다.

모험을 벌인 사람은 제작진들 뿐만 아니었습니다. 주연 배우 더크 보가드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실제로 그는 그 대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희생자]가 개봉된 뒤, 그는 바닥까지 떨어진 인기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어야 했거든요.

그러나 그 뒤로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과연 [희생자]는 그 동안 세월의 힘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을까요?

슬프게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슬프게도'라는 말을 단 데에는 정말로 '서글픈'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가 비판 대상으로 삼았던 법률은 폐지되었지만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여러 문제는 여전히 날이 선 논쟁의 대상입니다. [희생자]는 좋은 각본과 연출, 훌륭한 배우가 조화를 이룬 잘 만든 영화지만, 이처럼 날이 선 채로 남아서는 안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좀 더 발전을 했어야 했죠. 왜 이 영화가 30년이 훨씬 넘어서 만들어진 [필라델피아]보다 덜 나이브해보이는 걸까요?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3.

그러나 이런 식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닙니다. [희생자]는 40년 전에 만든 영화인 것을 고려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니까요. 이 영화가 지금까지 힘을 잃지 않고 버텨온 건, 시대가 충분히 변화해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어느 정도 시대에 앞서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의심나시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동성애자 캐릭터들을 보세요. 스테레오 타입화된 캐릭터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인종차별을 다루었던 디어든의 전작 [사파이어]보다 훨씬 성공했습니다.

물론 초창기의 정치적 영화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이 영화도 설교하는 투를 완전히 지워내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련된' 관객들이 예상외로 적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역시 그렇게까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지는 않아요. :-( 또 60년대라는 배경을 생각해보면, 이 역시 시대에 뒤떨어졌다기보다는 당시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적합하겠고요.

4.

[사파이어]와 마찬가지로 [희생자] 역시 사회 비판을 영국식 스릴러에 접목시킨 작품입니다. [사파이어] 쪽이 보다 고전적인 퍼즐 미스테리에 가깝지만요.

[희생자]의 각본은 [사파이어]보다 좋습니다. 설명없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입부에서부터 파를 사건 현장에 집어 던지고 다양한 희생자들을 등장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빼어납니다. 문제가 있다면 '구운 청어'로 던져넣은 다른 협박범들의 등장인데, 퍼즐 미스테리의 요소가 그렇게 강한 작품이 아니니, 이런 건 넣지 않는 게 나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무엇보다 훌륭한 부분은 파라는 동성애자 캐릭터를 스릴러의 플롯 속에 밀어넣고 관객들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당시 관객들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몸을 사린 듯한 면도 있어요 (영화 속에서 파는 배럿과 성관계를 맺지는 않았습니다. 파의 아내 로라와의 관계도 상당한 비중으로 묘사되고요.) 하지만 파의 캐릭터에는 고전 비극의 주인공과 같은 위엄과 진실성이 있어서, 이런 자잘함은 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더크 보가드가 기가 막히게 이 캐릭터를 연기해내고 있지 않나요?

5.

[희생자]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그건 [인형의 집]의 수명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의 답과 같습니다. 이 영화가 비판하는 대상이 완전히 사라질 미래에는 [희생자]의 힘도 어느 정도 흐려지겠지요. 하지만, 더크 보가드를 포함한 배우들의 연기나 서스펜스물로서의 가치, 비극의 무게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00/02/27)

DJUNA

기타등등

1. 이 영화는 여성 동성애자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죠. 그건 당시 여성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거예요. :-)

2. 해리스 경위와 브라이디 경사의 콤비는 [사파이어]의 하자드 총경과 리로이드 경위 콤비와 거의 같은 캐릭터더군요. 그들을 그냥 등장시켰어도 괜찮았을 걸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