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진표

주연
설경구....한경배
김남주....오지선
강동원....그놈 목소리
김영철....김욱중
최정윤....아나운서

오지선과 한경배

박진표의 [그놈 목소리]는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아이디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공소시효가 지난 유괴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아 영화를 만든 뒤, 그걸 대국민 홍보물로 이용해 범인을 잡겠다는 것이죠. 너무나도 실용적이고 명확한 목표가 아닙니까? 그래요. 극영화를 이런 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는 겁니다.

영화가 소재로 삼고 있는 건 1991년에 일어난 이형호 어린이 유괴사건입니다. 유괴되었던 소년은 44일 뒤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지만 그 동안 꾸준히 협박전화를 걸어 부모와 경찰을 우롱했던 범인은 지금도 잡히지 않았죠.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의 AD였던 박진표는 직접 이 사건을 다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놈 목소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는 이형호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많은 허구 장면들이 삽입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납치된 소년 한상우의 아버지가 저명한 방송국 앵커로 설정되어 있다는 거겠죠. 수사과정의 디테일도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윤색되었음이 분명하고요. 그리고 영화의 결말은 절대로 허구입니다. 강한 인상을 남기긴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심지어 영화가 비교적 윤색을 하지 않았던 범인의 외모도 목소리 연기를 한 강동원에 맞추어 살짝 변형되었습니다. 영화 속의 범인이 훨씬 키가 커요.

결과가 어떠냐고요? 그게 별로 안 좋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의 범인을 잡으려면 될 수 있는 한 사실에 충실하는 게 좋죠. 차라리 그러려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스타들을 기용해 만든 재현 드라마도 그만한 가치는 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직접 다루지 못하는 영역을 탐구할 수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 '팩션'이 되어 버리자, 관객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영화에서 과연 어느 부분까지 사실일까요? 밖으로 나가 범인을 잡으려면 어디까지를 참고해야 할까요? 영화의 허구가 너무나도 노골적이기 때문에 (설경구의 엄기영 앵커 성대모사부터 그래요) 관객들은 그냥 얌전히 속지도 못합니다.

영화의 허구도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당시 사건에 무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형사들을 놀려대는 희극적 터치는,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살인의 추억]과는 달리 그냥 생뚱맞고 어색하며 전체 스토리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성공을 위해 친구를 '팔아먹은' 방송 저널리스트의 고민도 가장 중요한 실제 유괴사건과는 따로 놀고요.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허구는 그냥 허구 같습니다. 연기부터 대사, 심지어 사건 전개를 알려주는 자막까지도 인공적이에요. [죽어도 좋아]나 [너는 내 운명]의 날 느낌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겐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전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굉장히 걱정했습니다. 과연 2시간 동안 이 이야기를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전 아주 편안하게 영화를 보고 나왔고 생각만큼 강한 분노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네, 마지막 장면은 확실히 셌어요. 하지만 결말만으로 영화를 평가할 수는 없는 법이죠. 물론 이 영화의 진짜 결말은 이형호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불만족스러운 완성도가 문제겠습니까. (07/01/23)

DJUNA

기타등등

중간에 [살인의 추억]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대사가 하나 나와요. 왜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