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주연
톰 크루즈....레이 페리어
Tom Cruise....Ray Ferrier
다코타 패닝....레이첼 페리어
Dakota Fanning....Rachel Ferrier
저스틴 채트윈....로비 페리어
Justin Chatwin....Robbie Ferrier
팀 로빈스....오길비
Tim Robbins....Ogilvy
미란다 오토....메리 앤 페리어
Miranda Otto....Mary Ann Ferrier
데이빗 앨런 바쉬....팀
David Alan Basche....Tim
모건 프리먼....나레이터
Morgan Freeman....The Narrator

1.

오길비, 레이, 레이첼

허버트 조지 웰즈의 [우주전쟁]을 각색한 작품들은 대부분 이야기가 벌어지는 시공간을 현대 미국으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그 전통을 만든 건 오슨 웰즈였지요. 그가 1930년대말의 현대 미국으로 무대를 고쳐 만든 라디오극이 너무나도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기 때문에 후대의 각색자들도 그 힘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웰즈의 소설을 현대로 옮기면 상당히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합니다. 웰즈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19세기적입니다. 화성인, 포탄 우주선, 거대한 트라이포드, 미생물 때문에 화성인들이 죽는 결말과 같은 것들은 모두 19세기식 아이디어죠. 웰즈가 이 소설을 쓴 뒤 백 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린 화성과 외계에 대해 훨씬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 함께 SF의 장르 도구들도 발달했고요. 그렇다면 예방주사도 맞지 않은 화성인들이 대포알을 타고 지구로 날아와 멀미와 세균에 시달리다 죽어버렸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어떻게 21세기 초의 미국에 이식할 수 있을까요?

스필버그는 이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그는 될 수 있는 한 설정의 디테일들을 잘라냈습니다. 그는 웰즈의 소설에서 유명한 도입부와 결말을 따와 모건 프리먼이 읊는 나레이션으로 영화 양쪽 끝에 삽입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영화는 어떤 설명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우린 그 외계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들이 인간들을 납치하는지도 모르며 왜 그렇게 구차스러운 방식으로 지구를 공격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잘한 선택이었어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게 서툰 설명을 시도하는 것보다 낫죠.

물론 그래도 문제는 남습니다. 트라이포드는 근사한 영화적 소재니까 그냥 넘어가 준다고 해도, 미생물 때문에 외계인들이 멸망했다는 설정은 아무리 노력해도 관대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죠. 조지 팔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도 그냥 전통이니 이해해달라고 우물거리는 것 같습니다.

2.

스필버그의 영화는 허버트 조지 웰즈 테마 파크와 같습니다. [이티]와 [미지와의 조우]의 드라마나 감동은 꿈도 꾸지 마세요. 이 영화는 그렇게 물렁한 영화가 아닙니다.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은 순전히 관객들에게 불쾌한 체험만을 제공해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도 피상적인 드라마는 있습니다. 슬슬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책임감도 없고 하는 짓도 꼭 애같은 부두노동자가 외계인의 침공 속에서 살아남은 동안 뒤늦게 부모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성장한다는 거죠.

뻔한 이야기죠? 미국 재난 영화에서는 거의 공식적인 설정입니다. 하지만 이 스토리에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주인공 레이 페리어가 자신의 체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건, 그건 이 영화에서 그렇게까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건 트라이포드를 탄 외계인들의 공습이 일어났고 그게 무척 무섭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캐릭터 설정도 드라마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따라가는 세 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관객들이 겪는 감정들을 최적화하기 위해 선택되었죠. 레이는 보호본능과 책임감을, 로비는 분노를, 레이첼은 절망감과 공포를 대표하는 식입니다. 이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감정들을 최대한으로 표출하면 영화는 일단 성공한 것입니다.

영화의 나머지는 모두 실시간 체험입니다. 아까도 말했잖아요. 웰즈 테마 파크라고요. 우리의 주인공들은 외계인의 트라이포드와 죽음의 광선에 쫓기고 차를 훔치고 폭도들에게 폭행당하고 물에 휩쓸려가는 시체들을 발견하고 화성인에게 납치당합니다. 스필버그는 유머와 드라마, 과학적 설명들을 다 지워낸 채 순수하게 그 끔찍한 체험만을 관객들에게 제공해줍니다. 심지어 그는 스펙터클까지도 어느 정도 포기합니다. 이 영화에는 최근들어 재난 영화의 의무로 굳어진 '명승지 파괴하기'가 없습니다. 평범한 피난민이 겪으면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은 보여주지 않아요. 스필버그의 목적은 구경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외계인들에게 쫓기는 피난민에게 관객들이 최대한으로 감정이입하게 돕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인디펜던스 데이]보다 [싸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이 영화에서 스필버그는 톰 크루즈를 할리우드 액션 스타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라면 반대죠. 이 영화에서 중요시되는 톰 크루즈의 이미지는 화려한 남성성이 아니라 익명성과 친근함입니다. 그는 투명하고 빈 그릇과 같아서 관객들은 별다른 어려움없이 그에게 감정을 맡깁니다.

톰 크루즈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우는 다코타 패닝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절실한 감정은 모두 이 배우의 커다랗고 아름다운 파란 눈에서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패닝은 정말로 끔찍하게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고 그런 이 아이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강렬해 보입니다. 관객들은 패닝의 공포에 동조하면서 그와 동시에 톰 크루즈의 캐릭터가 느끼는 보호 욕구를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되지요.

팀 로빈스는 후반부에서 원작의 목사와 병사를 반씩 섞은 듯한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데, 자꾸 [미스틱 리버]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떠올라서 패닝과 함께 있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움찔하게 되더군요.

4.

[우주전쟁]은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영화지만 감상에 몇가지 제약이 따릅니다. 일단 웰즈의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어처구니없는 안티 클라이맥스에 실망할 겁니다. 드라마와 유머를 포기하고 건조한 체험에만 영화 전체를 투자하는 스필버그의 방식에 반발하는 평론가들도 많지요. 이 모든 건 취향과 선택의 문제입니다. 저보고 묻는다면,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은 것을 이 영화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고 하겠지요. (05/06/30)

DJUNA

기타등등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의 외계인 침공엔 지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혹시 이 모든 건 오래 전에 포기한 계획이 실수로 부활한 결과가 아닐까요? 침공한 외계인들이 그렇게 무방비였던 것도 그들이 계획의 주체가 아니라 실수로 부화한 결함있는 부속품이어서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수백만년 전에 있지도 않은 도시를 파괴하기 위해 무기들을 심었다는 설정은 어떻게 설명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