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광현

주연
정재영....리수화
신하균....표현철
강혜정....여일
임하룡....장영희
서재경....문상상
류덕환....인민군 소년병
정재진....촌장
조덕현....김 선생
권오민....동구
스티브 태슬러....닐 스미스
Steve Taschler....Neal Smith

여일

1. 다들 아는 영화니까 간단히 할 말만 하겠습니다. 스포일러 많습니다.

2. 우선 [웰컴 투 동막골]이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걸 언급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테크닉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된 작품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하지만 멀끔하게 뽑혀나왔고 특수효과도 괜찮으며 배우들도 좋습니다. [웰컴 투 동막골]은 지금까지 나온 장진 영화들보다 더 '영화'처럼 보입니다. 좋은 일이죠.

3.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살짝 투박한 느낌은 스튜디오 시절의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의 영향도 발견되고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두 인상 모두를 하나로 묶어버립니다. 원래 그 사람의 음악은 조금 더 나이브하고 선율이 강조된 할리우드 영화 음악 같으니까요. 둘 다 이 영화의 순진무구하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한 의도적인 차용이었을 겁니다. 굉장히 인상적인 예술적 선택은 아니지만 타당하죠.

4. [웰컴 투 동막골]은 기본적으로 비정치적인 영화입니다. 적어도 비정치성은 이 영화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메시지입니다. 이 영화의 기본 목적은 동막골이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서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벗겨내어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시도는 인간성과 전쟁에 대한 보편적인 메시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인간성과 전쟁에 대한 보편적인 작품일까? 그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입장과 메시지는 조금 편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간이 아니라 한민족입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미군 조종사인 닐 스미스가 삽입되긴 하지만 그는 대부분 이들의 드라마에서 소외됩니다. 기대만큼 충분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주지는 못하는 거죠.

결국 이 영화는 한민족만의 잔치가 되어 버립니다. 남북한이 이데올로기를 벗고 얼쑤얼쑤 춤추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동막골에서 이들이 벌이는 잔치는 현실적으로 분명히 존재했고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슬쩍 무시해버립니다. 아니, 책임을 모두 남에게 전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외세의 침략이 없었다면 우린 아무 문제도 없이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을 거야'식의 자기기만까지 느껴지는군요.

이런 느낌이 강한 건 영화의 후반부로 이어지는 부분이 무척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선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죠. 민간인 학살이 없는 깨끗한 전쟁이란 꿈입니다. 전쟁 범죄와 민간인 학살은 아무리 명분 좋은 전쟁이라고 해도 일어납니다. 한국전쟁 중 영화가 그린 것보다 더 끔찍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도 일어났었겠죠. 하지만 영화가 그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려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죠. 메시지가 달려있으니까.

이 영화엔 그런 설득력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동막골로 들어온 연합군이 난동을 벌이는 장면은 아무래도 이치가 맞지 않습니다. 일단 명령받은 군인들로서 이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추락한 조종사를 구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마을 사람들에게 "조종사는 어디 있나?"라고 한 번 물어보긴 하던가요? 정신이 없어서 한 동안 못 물어 봤다고 칩시다. 동막골 사람들이 이런 사태에 대응하기엔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설정까지 믿어보자고요. 그래도 "혹시 미국인 찾아요?"라고 물으며 사태를 무마할 만한 상식을 가진 이방인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들이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자고 있는 스미스를 찾아오면 일은 그냥 자동적으로 풀립니다. 아무도 안 다치고 아무도 안 죽습니다. 이 뻔한 해결방법이 등장하지 않는 건 이 영화가 '내부 결속을 위해 외부의 적 만들기'라는 단순한 정치적 해결책을 선택해 그를 위한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안 가는 건 당연합니다.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정직하지 않은 걸요.

5. [웰컴 투 동막골]은 이전에 남북한에서 나온 정치선전 영화들보다 상대적으로 열려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론상 이 영화는 남북한 어느 쪽의 편도 들고 있지 않으니까요. 영화사에서는 한동안 북한 개봉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들도 영화의 특정 대사를 자르지 않는 한 그게 어림없다는 사실은 알았을 겁니다. 그래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겠죠. 적어도 이들은 이 영화가 양쪽 어느 쪽의 심사도 건드리지 않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민감한 정치적/역사적 소재를 다루면서 대립하고 있는 어느 쪽의 비위도 긁지 않는다면 그건 그렇게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죠. 진짜로 좋은 영화라면 양쪽 모두의 신경을 박박 긁어 피가 줄줄 흐르게 만들 겁니다.

[웰컴 투 동막골]이 지금까지 나온 [배달의 기수] 영화들보다 더 깊이있는 작품이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배달의 기수] 영화들이나 [웰컴 투 동막골]이나,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같습니다. 자기네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죠. [웰컴 투 동막골]의 경우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도 추가되는데, 둘이 거의 일치하니 영화가 더 깊어지는 건 아닙니다.

노골적인 반공물인 [피아골]이 [웰컴 투 동막골]보다 전쟁과 인간과 분단에 대해 훨씬 많은 걸 이야기해주는 더 좋은 영화인 이유는 그 보호막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웰컴 투 동막골]은 모든 면에서 지나칠 정도로 안전하게 굴고 있습니다. 종종 관객들에게 아양을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6. [웰컴 투 동막골]은 리얼리즘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무대인 동막골은 수류탄으로 마을 곳간을 폭파하면 팝콘이 떨어지고 날아가는 나비가 비행기를 추락시키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탈영병들과 일탈자들을 위한 꿈의 공간이라도 자체 논리는 필요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동막골엔 그런 논리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장진식 남자 코미디언들과 개성없는 조선 시대 아줌마들이 모여 사는 이 동네는 고유의 생명력을 가진 곳이라기보단 드라마와 코미디를 위한 설정과 무대장치처럼 보입니다.

일단 설정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전 촌장님의 모토인 "뭘 많이 먹여야지"를 충족시킬만한 자급자족 능력이 동막골에 있다고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들의 농작법이 환경친화적이라는 건 더더욱 못 믿겠고요. 당연히 이들이 총이 뭔지도 모르는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설정의 신빙성도 떨어지죠. 마을 밖으로 떠난 아들을 걱정하는 아줌마의 대사를 듣고 있으면 [잃어버린 지평선]보다 [브리 가둔]이 떠오르는 것도 문제. 빈센트 미넬리의 연출 아래 진 켈리와 시드 섀리스가 춤추며 노래 부르는 영화인데도 제가 이 작품을 싫어하는 이유는 순전히 내용 때문인데... 흠,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야할 것 같군요.

그러나 동막골의 가장 큰 단점은 이런 지엽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이 마을의 주민들이 마치 스튜디오 할리우드 시절의 백인 모험담에 나오는 미개척지의 원주민들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일민족의 동포들이 자기 나라 안에서 만나 와락 부비부비하는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입니다.

7. [웰컴 투 동막골]은 여전히 장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흥행성적이 증명해주는 대중적 호소력만 해도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단지 전 그 진실성을 의심해보는 것입니다. 진짜 알맹이가 있는 영화치곤 너무 예쁘고 동글동글하거든요. 아마 한국 역사나 사정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밖에 없는 외국인 관객들은 오히려 이 영화에서 어떤 보편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못 하겠어요.

제가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동의할 수 있는 영화의 진짜 장점들은 비교적 표면적인 것들입니다. 그 중 가장 호감가는 건 역시 강혜정이 근사하게 연기한 여일의 이미지겠죠. 솔직히 영화가 끝난 뒤에 제 머리에 남은 건 강혜정의 사랑스러운 미소와 그 사람이 익살스러운 강원도 사투리로 풀어대는 대사들뿐입니다. (05/09/05)

DJUNA

기타등등

말 한마디도 안 통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미식축구의 그 복잡한 룰을 다 가르쳤다니, 닐 스미스는 커뮤니케이션의 천재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