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니키 카로 Niki Caro

주연
케이샤 캐슬-휴즈....파이케아
Keisha Castle-Hughes....Paikea
라위리 파라틴....코로
Rawiri Paratene....Koro
비키 휴튼....내니 플라워즈
Vicky Haughton....Nanny Flowers
클리프 커티스....포루랑기
Cliff Curtis....Porourangi
그랜트 로아....라위리 삼촌
Grant Roa....Uncle Rawiri
마나 타우마우누....헤미
Mana Taumaunu....Hemi
레이첼 하우스....쉴로
Rachel House....Shilo
타운가로아 에밀....윌리
Taungaroa Emile....Willie

파이와 코로

[웨일 라이더]의 주인공 파이케아는 심각한 성차별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파이케아는 자신이 부족의 족장이 될 운명을 타고 났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파이케아의 운명을 결정할 할아버지 코로는 파이케아의 죽은 쌍둥이 형제와 조각가가 되어 그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포루랑기를 원망할 뿐, 파이케아의 가능성을 확인할 생각은 하지도 않죠. 파이케아는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이 옹고집 할아버지의 눈 앞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웨일 라이더]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이라는 민족 집단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지극히 익숙합니다. 파이케아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겪는 수난과 모험은, 싸워야 할 대상과 의미가 조금씩 다를 뿐, 어느 문화권에도 존재하지요. 이런 친근함은 어느 정도 의도적이라고 해야할텐데, 그건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그만큼이나 크고 보편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웨일 라이더]가 이처럼 인기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국적인 소재와 전통적인 스토리라인의 적절한 조합 때문일 겁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구미 관객들보다 더 와닿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자들을 주변으로 밀어내고 장남들을 편애/학대하는 이 나라의 가부장적인 시스템과 파이케아의 세계는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가부장적 전통은 여성 구성원들에게 쟁취의 욕구를 불러일으킬만한 매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웨일 라이더]는 전통적인 페미니즘 우화입니다. 유럽계 여성 감독인 니키 카로가 이 이야기에 매료되었던 것도 그 힘있는 페미니스트 메시지 때문일 것이고요. 파이케아는 모범적인 페미니스트 영웅입니다. 조용하고 수줍지만 끈기있고 신념에 찬 주인공이며 폭력과 증오 대신 화합과 설득력을 무기로 선택하지요.

그러나 원작자인 마오리족 남성작가 위티 이히마에라에게 이 이야기의 페미니즘 요소는 일종의 도구에 불과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와 메시지는 페미니즘적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정말로 중요한 주제는 여권이 아니라 마오리족의 전통입니다.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고 자존심과 자의식, 독자성의 기원이지만 그만큼 억압적이고 차별적이기도 한 이 까다로운 대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걸까요? 위티 이히마에라의 해답은 "그들을 박제하지 말고 풀어주라"인 것 같습니다. 모든 모험이 끝날 때, 영화는 죽은 과거의 이미지에 못박힌 미이라인 전통을 버리고 변화와 발전, 타협과 다양성을 용납하는 살아있는 전통을 선택합니다. 심지어 영화는 민족주의의 마지노선이어야 할 것 같은 순수한 혈통에 대한 집착도 포기합니다. 이 주제를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굳건한 전통의 장벽을 넘으려는 파이케아가 아니라 구닥다리 똥고집을 포기하고 변화의 문을 여는 할아버지 코로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영화의 드라마는 단순하고 익숙하지만 효과적인 갈등 구조 위에 서 있습니다. 파이케아는 할아버지 코로를 사랑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인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코로 역시 파이케아를 단순히 무시하거나 멸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손녀를 깊이 사랑하는 평범한 노인입니다. 하지만 그의 꽉 막힌 사고 방식은 그 사랑이 이해와 용납으로 넘어가는 걸 막지요. 영화의 이야기는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낡은 전통의 틀을 부수고 온건한 소통을 하는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이 영화의 정서적 울림은 바로 이 러브 스토리에서 나오죠.

나이 든 전문가들과 싱싱한 아마추어들이 적절하게 섞인 영화의 캐스팅은 거의 완벽합니다. 라위리 파라틴의 진중하고 직설적인 연기와 케이샤 캐슬-휴즈의 '수줍은 소녀' 특유의 미묘한 연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눈여겨보시길. (04/10/11)

DJUNA

기타등등

1. 이 영화에 출연한 마오리 배우들 중 상당수는 약간씩의 유럽계 혈통을 품고 있지요. 여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저야 지금의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에서 순수한 혈통에 목매는 건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요. 결국 중요한 건 생물학적 혈통이 아니라 소속감과 자의식일 겁니다.

2. [웨일 라이더]의 진짜 교훈은 결국 하고 싶은 애들에게 일을 맡기라는 것이 아닐까요? 파이케아가 어린 장금이처럼 몰래 훔쳐보는 동안 코로한테 봉술을 배우는 남자애들을 보세요. 열의가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