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강석범

주연
이범수....정승필
김민선....유미선
손창민....김형사
김뢰하....박형사
이한위....주정남
김광규....백부장
표영호....생기
지대한....일근
임세호....삼봉
양배추....달식
최재원....오정구

정승필

500억대 자산관리사인 정승필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공금을 들고 튀었을 수도 있고, 보험금을 노린 약혼녀에게 살해당했을 수도 있고, 원한을 품은 자에 의해 납치되었을 수도 있으며, 우발적인 살인의 희생자일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은 무한하며 이들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잘만 다룬다면 이것들을 모두 묶어서 [라쇼몽] 풍의 코미디를 만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 모든 가능성들은 등장하기 전부터 죽어버립니다. 관객들은 정승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는 일이 급해서 뛰어들어간 철거 건물의 화장실에 갇혔습니다. 그가 볼일을 보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자물쇠로 문을 잠궈버린 거죠. 하필이면 그는 휴대전화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저 위에 언급된 아이디어들은 제시되지만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데 무슨 관심이 가겠습니까.

그래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기본 목표는 여전히 유효해요. 영화가 의도하는 것은 정승필 실종사건을 심지로 삼아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비밀과 속내를 폭로하고 그를 통해 온갖 종류의 소동을 유발시키는 것입니다. 진상이 드러나 있으니 미스터리의 힘은 떨어지지만 그 빈 자리에 정승필이 화장실에서 겪는 수난을 추가할 수 있죠.

그러나 이 목표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소동을 채울 수 있는 재료가 있을 경우에나 가능한 것입니다. [정승필 실종사건]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전혀요. 이건 거의 시나리오 작가의 악몽입니다. 그럴싸한 것 같아서 일단 시작은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쓸만한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고 그런데도 빈 자리는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속극 작가라면 중단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막장으로 흘러도 끝날 때까지 가야죠.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만 두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승필 실종사건]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신기하죠.

그 결과물은 공허합니다. 충무로와 TV판의 중견배우들이 잔뜩 캐스팅되어 이야기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긴 하는데, 원래부터 없는 가능성이 그런다고 생겨날 수는 없죠. 그들이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멍청하고 재수없는 인물들이라는 점도 배우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영화는 마치 유사와 같습니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더 깊이 모래 속으로 빠져듭니다. 보고 있으면 정말 슬퍼집니다. (09/09/25)

DJUNA

기타등등

고 장자연씨가 요가강사로 출연합니다. 다시 한 번 명복을 빕니다. 다음 생에서는 이 같잖은 나라에서 태어나지 말길.